- 정책결정 이론 (2) -

박훈 합격의법학원 행정학 전임

▶ 지난 호에 이어

5. 최적모형(Yehezkel Dror)

(1) 주요 특징

①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임
② 합리적 및 초합리적(직관, 통찰력) 구성요소를 함께 지님
③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 원리
④ 상위정책결정을 포함
⑤ 많은 환류가 내장됨

(2) 광의의 정책결정의 주요 단계

① 상위정책결정(metapolicymaking) : 정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결정
② 정책결정(policymaking) : 실질적인 문제에 관한 정책결정으로 통상적인 의미의 정책결정
③ 재정책결정(repolicymaking) : 정책집행과정에서의 환류에 따라 정책을 변경으로 사후정책결정(postpolicymaking)이라고도 함

6. Allison 모형(Graham Allison)

외교․군사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기존의 분석가들이 사용한 합리모형은 이론적 기초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고 보다 더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이 모형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부정책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데 사용한 합리적 행위자 모형은 심리 및 정치적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약점이 있으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두 가지 대안적 모형인 조직과정모형과 관료정치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1962년 쿠바 미사일 사건에 대한 세 가지 상이한 이론모형을 적용하여 케네디 행정부가 해상봉쇄(blockade) 대안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1) 세 가지 이론모형

1) 합리적 행위자모형

정부활동은 중앙집권적인 통제권과 완벽한 정보 및 가치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자에 의해서 선택된 행위로 간주된다.

2) 조직과정모형

정부를 나름대로의 독자적 영영을 가진 느슨하게 연결된 조직체들의 거대한 집합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활동은 지도자의 신중한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형화된 행동유형에 따라 움직이는 대규모 조직이 낳은 산출물로 이해된다.

광범위한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각각의 조직은 특정 영역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고 있으며 조직간 관계는 반독립적(semi-independent)이다. 특히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의 관할범위는 한 조직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각 조직은 독자적으로 특정 문제에 대한 상이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결국 정부정책이란 이들 여러 조직의 상반된 대안이 최고정책결정자의 조정을 거쳐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환언하면 정부지도자는 각 조직들의 활동을 간섭할 수는 있어도 철저히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조직의 산출물은 주로 표준운영절차(SOP)를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에 급격한 정부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대신 조직학습과정을 통해 점진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3) 관료정치모형

오직 한 가지 전략적 문제에만 관심을 쏟는 단일행위자를 가정하는 합리적 행위자모형과는 달리, 여러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다수행위자를 상정하며 이들의 전략적 목표는 일관된 것이 아니라 국가·조직·개인목표를 모두 고려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정치적 게임은 최고정책결정자와 상당한 권력을 보유한 해당 부서의 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각자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게임에 참여하는 자들은 상당한 권력을 갖고 있으며, 문제를 보는 그들의 관점은 상이하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수적이다. 정책이란 정해진 행동경로를 따라 이루어지거나 혹은 조직의 관행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대안에 대한 옹호자와 반대자가 사용하는 권력과 정치적 수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본다. 이 모형에 의하면 한마디로 정책이란 정치적 게임의 결과로 간주된다.

(2) 쿠바해안봉쇄 사례

1) 합리적 행위자모형 분석

소련의 쿠바 영내로의 미사일 배치에 대한 미국의 해안봉쇄라는 대응을 단순히 주어진 목표에 대한 가치극대화의 측면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쿠바 영내에서 소련이 미사일이 배치되고 있다는 통보를 받은 케네디 대통령은 안전보장이사회의 집행위원회(EXCOM)를 소집하고, 이러한 국가적 위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가능한 대안을 신속히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모임을 통해 여섯 가지 종류의 대안이 제시되면서, 각 대안에 대한 찬반논의가 이어졌다.

① 소극적 방관

② UN이나 미주기구에 의한 쿠바사찰, 케네디와 흐르스쵸프(Nikita Khrushchev)의 직접 면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
③ 쿠바 카스트로와의 은밀한 교섭
④ 쿠바 영내로의 침공. 미사일의 제거뿐만 아니라 카스트로를 권좌에서 축출
⑤ 국지적 공습. 정밀한 공격으로 소련이 배치할 미사일 기지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
⑥ 간접적 군사행동으로서 해안봉쇄

여섯 가지 정책대안 중 여섯 번째 대안이 다른 대안과는 달리 예상되는 손실보다는 이익이 훨씬 큰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해안봉쇄야말로 합리적 관점에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앨리슨의 주장이다.

2) 조직과정모형 분석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에 대한 10월 22일자 해안봉쇄령은 같은 해 10월 14일 U-2 정찰기가 촬영한 쿠바 영내의 미사일 기지 사진이 정책자료가 되어 내려진 정책결정이었다. 그러나 앨리슨은 만일 9월 19일에 소집된 미 첩보회의에서 “소련은 쿠바 영내로 공격용 미사일을 반입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면,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미국의 첩보활동은 왜 실패하였는가? 첩보국은 주로 네 가지 종류의 정보원을 기자고 있었는데, 엄청난 정보를 처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상의 제약 때문에 정책결정을 내릴 시점에 이런 모든 정보를 활용할 수가 없었다. 후에 미사일 기지 건설정보가 계속 들어옴에 따라, 쿠바 서쪽 상공에 대한 특별비행을 지시하는 결정도 CIA와 미 공군 간의 비행을 둘러싼 관할권 싸움 때문에, 10일이나 지연되었다. 또한 대안 채택과정을 보면 EXCOM에서는 대안의 윤곽만 설정하고, 세부적 사안은 당해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에 의해서 구체화되었다.

정책대안 중 대통령의 선호에도 불구하고 공습이 기각된 이유는 미 해군사령부 범례에 의할 경우 쿠바 영내에 설치된 미사일이 이동식으로 분류되어 공습을 통한 제거가 어렵다는 주장이 미 공군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이러한 조직과정에서의 제안이 정책결정의 제약여건으로 작용한 것이다.

3) 관료정치모형 분석

① 쿠바의 미사일기지 발견에 얽힌 정치화 과정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쿠바 영내의 미사일 기지 설치는 케네디 행정부에 불리한 사건이어서 CIA책임자의 보고를 일축하였다. 그러나 2개월에 걸친 CIA 맥콘의 대통령에 대한 끈질긴 설득과 공중정찰위원회에 의한 쿠바 상공으로의 정찰비행 허용은 결국 맥콘의 승리로 끝났다.

② 미사일 기지발견에 다른 이슈의 정치화 과정을 살펴본다. 쿠바 미사일 위기라는 이 문제에 대해 맥나마라 국방장관, 로버트 케네디(케네디 동생) 법무장관, 소렌슨 안보담당 특별보자관이 핵전쟁의 위험성을 줄이기 우해 외교적 해결이라는 온건한 입장을 표명했으나, CIA 맥콘은 강경한 입장을 취했으며, 대통령의 흐르스쵸프에 대한 배신감이 더해져 온건론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③ 대안선택과 관련된 정치를 분석해보면, 처음에 국지적 공습을 선호하던 대통령이 국방장관, 법무장관, 안보담당 특보 등의 반대주장을 받아들여 해안봉쇄 대안을 최종적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3) 평가

① 그 동안 정책분석론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해오던 합리모형의 효용성을 재검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합리모형 일변도에 입각한 정책결정과정 분석이 가져오는 이론과 실재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앨리슨은 두 가지 대안모형을 구안하여, 이들을 하나의 사례에 동시에 적용해 봄으로써 각 이론의 상대적 효용성을 평가해보려고 시도하였다.

② 조직계층의 측면에서 보면 앨리슨 모형은 각각 적용계층이 다르다. 조직체에는 공식적 권위와 기능적 권위(전문적 권위)가 있는데, 공식적 권위는 상위계층으로 올라갈수록 강하고 의사결정상의 적용범위도 넓어진다. 이에 반하여 전문적 지식과 경험에 의한 기능적 권위는 위로 올라갈수록 약해지고 의사결정에서의 적용범위도 좁아진다.

따라서 관료정치모형은 조직의 상위계층에 적용가능성이 높고, 기능적 권위와 SOP가 특징인 조직과정모형은 조직의 하위계층에 적용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합리모형은 조직계층에 따라 큰 차이가 없어서 모든 계층에 적용된다.

③ 앨리슨이 의도한 바대로 실제의 정책결정에서는 어느 하나의 모형이 아니라 세 가지 모형 모두 적용할 수 있다. 해상봉쇄 결정은 합리모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당한 부분을 조직과정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었으며, 조직과정모형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은 정치모형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④ 앨리슨 모형은 원래 국제정치적 사건에 대응하는 정책결정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나, 일반정책의 경우에도 적용가능하고 또 한국의 경우에도 적용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정책결정은 1980년대 중반까지 대통령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압도적이어서 미국에서는 쉽게 적용되는 앨리슨 모형의 설명력이 상당히 약했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진행된 민주화의 결과 그 적용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4) 응용사례 : 식품안전본부 설립의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연구

1993년 12월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식품의약품 관련 전담기구의 설립은 각종 식품의약품의 안전성을 해치는 일련의 사건으로 설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식품의약품안전본부의 설립(1996.4) 과정은 정책과정론에 따른 시기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다. 의제형성의 배경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는데, 하나는 국내에서 빈발한 식품안전성 사고와 논란이었고, 또 하나는 WTO 체제에 따라 시장이 개방되면서 농산물의 안전성과 통과 및 검역제도, 유통기한 등 국내 식품위생제도를 둘러싼 한․미간의 통상마찰이었다. 이러한 국내외적 정책상황은 그 해결책의 하나로 식품의약품의 안전성을 전담 관리할 수 있는 기구를 설립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만들었는데, 보건복지부와 민주자유당은 대안을 만들고 관계부처간 당정협의를 하였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직제령 개정요구안을 총무처에 제출함으로써 공식적인 절차가 개시되었다.

이상의 정책과정을 세 모형을 통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합리모형에 의하면, 식품안전성 논란과 시장개방에 따른 한․미간의 통상마찰을 문제로 인식한 정부가 안전관리 전담기구의 설립이라는 해결방안을 생각하고 조직대안을 개발하고 결과를 추정, 평가하여 식품의약품안전본부를 설립하는 의사결정을 최적대안으로 선택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거시적 관점에서 식품안전성문제와 정부의 목표, 그리고 가능한 조직대안이 정책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전체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여러 부처들의 입장이나 목표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② 조직과정모형에 의하면, 당정협의와 직제령 개정절차에서 보건복지부와 총무처, 재정경제원 등 관계부처들은 쟁점들에 대해서 각 조직의 입장이 반영된 SOP, 프로그램 등을 부처협의에 최대한 반영함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부분적 합리성을 도모하였다.

③ 관료정치모형에 의해서 영향력이 강하고 정책과정을 좌우할 수 있는 참여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대통령은 민생을 책임지고 있는 지위에서 식품안전성을 확보하는 과제가 국민들에게 바로 호소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인식과 정치 일정이 맞물려 의제형성기에는 민주자유당이 6·27 지방선거공약으로 제시하고, 정책결정기에는 4․11 총선에 대비하여 안전본부를 개청하는 등 정책과정에서 분기점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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