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손배소 파기환송’ 아쉽다
상태바
대법원의 ‘손배소 파기환송’ 아쉽다
  • 법률저널
  • 승인 2003.12.03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법시험의 문제 출제오류가 빈발하면서 불합격처분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나마 위자(慰藉)할 손해의 전보책임을 시험을 관리한 국가에게 부담시켜야 할 이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대법원이 1심과 2심에서 인정한 손해배상책임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불합격처분으로 인한 손해배상 논란은 일단 봉합된 셈이다.

지난 27일 대법원은 “행정처분이 항고소송에서 취소되었다고 그 행정처분이 곧바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그 행정처분의 담당공무원이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여 그 행정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될 경우에 비로소 국가배상법 제2조 소정의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는지 판단의 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피침해이익의 종류 및 성질, 침해행위가 되는 행정처분의 태양 및 그 원인, 행정처분의 발동에 대한 피해자측의 관여의 유무, 정도 및 손해의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문제 출제 당시 해당과목의 시험위원들 사이에 정답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었고 객관식 시험이 원래 분쟁의 소지를 일정부분 안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담당 공무원과 시험위원들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법학 과목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고, 정답이 명확한 자연과학과는 달리 법 이론이나 법령의 해석과 관련하여 다양한 견해가 대립되어 재량성이 인정되어야 하는 분야로서 법원 상호간에도 그 판단이 다를 수 있는 등 출제오류의 여부가 불명확한데다 원고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구제조치로 2차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의 손해를 국가가 배상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미치는 파장은 크다. 우선 사법시험 1차시험 문제 오류와 관련해 수험생들의 손배소송이 잇따르고 그에 대한 하급심의 판결도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시험관련 공무원 혹은 시험위원의 고의, 과실로 인한 직무집행상의 국가배상책임을 엄격하게 해석하겠다고 확인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된 손해배상소송이 사법시험 시험위원 위촉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이나 시험위원의 심리적 부담이 한껏 줄어들은 셈이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걸다시피 한 수험생들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제40회 사법시험은 불합격처분취소소송으로 수백명이 구제되고, 시험제도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추가합격자들은 손해배상을 청구함으로써 수험생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자못 의미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년동안 끌어온 소송에서 관련 수험생들의 외롭고 힘든 길을 대법원이 외면했다는 것에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위법한 불합격처분으로 인하여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함에도 대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법리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정책적인 판결이라는 오해를 벗기 힘들 것이다. 현재 계류중인 유사소송에도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오답시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출제 시스템 전과정을 면밀히 재점검해 출제오류가 다시는 도마에 오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동안 속을 끓인 관련 수험생들의 마음고생을 진정으로 보상하는 길일 것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