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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식 밖의 노동이야기 ‘그림의 떡, 단체행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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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식 밖의 노동이야기 ‘그림의 떡, 단체행동권
  • 윤지영
  • 승인 2014.10.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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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대한민국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조합을 통해 사용자와 협상을 하고,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파업이나 피케팅·직장점거 등의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는 의미다. 노동3권을 통해 우리 헌법은 개별적인 노동자는 사용자에 비해 열악한 지위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노동자들로 하여금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협상을 하고 노동조건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강하게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노동자가 쟁의행위를 하면 으레 따라오는 것이 있다. 업무방해죄, 주거(건조물)침입죄, 퇴거불응죄가 그것이다. (이외에도 손해배상, 손배가압류, 방해금지 가처분이 짝을 이뤄 등장하지만 이 부분은 훗날 다루기로 한다) 

당장 공감에서 법률 지원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경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단체로 해고된 요양보호사들이 요양원 1층 로비 일부를 점거했다. 점거라고는 하지만 그 실체는 요양원 1층에 있는 소파와 소파 부근 바닥에 종일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업주는 요양보호사들을 형사 고소했다. 요양원의 업무를 방해했고(업무방해), 요양원이라는 건조물에 침입했으며(건조물침입), 퇴거 요구에 불응했다(퇴거불응)는 것이 그 이유다. 요양보호사들은 졸지에 피의자 신분이 되어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이 싸움은 쌍방의 합의로 잘 마무리되었지만 끝까지 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건국대학교에서 주차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학교법인 건국대학교는 교내 주차시설을 외주업체에 위탁하면서 외주업체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학교법인 건국대학교가 임대인으로서 교내 주차시설을 외주업체에 임대한다는 것이다. 주차장은 학교 소유요, 그 이용자 역시 학교 임직원과 학생들인 마당에 건국대학교가 임대차라는 꼼수를 쓴 이면에는 주차 관리 요원에 대해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여하튼 외주업체의 변경으로 한꺼번에 해고를 당한 주차 관리 요원들이 건국대학교 안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학교는 이들을 업무방해, 건조물침입, 퇴거불응으로 고소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범죄자로 매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릇 헌법상 권리라면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행사했다고 불이익을 받는다면, 어떻게 권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상식 밖의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법률이 쟁의행위를 다루는 방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노동3권을 구체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다. 노조법 제4조는 ‘정당행위’라는 제목 아래 “형법 제20조의 규정은 노동조합이 단체교섭단체교섭·쟁의행위 기타의 행위로서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 적용된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평화적인 쟁의행위는 위법성을 조각하는 정당행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법성을 조각하는 정당행위란 무엇인가. 범죄의 구성요건은 충족하지만 특별히 법령 등에 의하여 벌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평화적인 쟁의행위는 업무방해죄, 주거침입죄, 퇴거불응죄 등의 구성요건은 충족하지만 특별히 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업무방해죄가 될 수 있는가. 업무를 방해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방해 행위를 요건으로 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파업이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가. 노동자는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을 하는 사람이라지만 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즉 채무불이행이 어떻게 범죄가 될 수 있냐는 말이다. 똑 같은 일, 예컨대 화물 운송을 하는 노동자와 개인사업자가 있을 때 노동자가 하지 않으면 업무방해죄가 되고, 개인사업자가 하지 않으면 업무방해죄가 되지 않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것은 강제노동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것 아닌가. 비단 파업뿐만 아니다. 피케팅이나 직장점거는 파업과 달리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속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쟁의행위란 원래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 아니던가. 그러한 쟁의행위를 정당한 권리로 인정한 것이 헌법인데 어째서 우리 법률은 쟁의행위가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고 전제하는 것일까. 대법원도 이러한 모순을 인식하고 판례를 변경한 바 있다.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고,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 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그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 초래’라는 요건은 여전히 불명화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파업이 아닌 쟁의행위는 여전히 범죄로 간주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뿐만 아니다. 쟁의행위라고 하더라도 법에서 정한 요건을 하나라도 갖추지 못한 때에는 범죄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노조법이 정하고 있는 정당한 쟁의행위의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방법이 평화적이어야 하고, 노동조합은 사전에 조합원의 찬반투표 및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목적이 정당해야 하는데 그 목적이라는 것이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법률 규정 및 해석대로라면 철도노조가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반대하며 파업을 하면 목적이 정당하지 못하여 업무방해죄가 되고, 노동자들이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며 쟁의행위를 해도 범죄가 된다. 근로조건에 관한 것에 대해서만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 우리의 법률이 연대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노동조합을 조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조법은 노동조합이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여념하길 바라는 것이다. 근로조건에 관한 것이어도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정리해고가 그것이다. 해고야말로 모든 근로조건의 전제이자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정리해고는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설사 “그 실시로 인하여 근로자들의 지위나 근로조건의 변경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하더라도 그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2006. 5. 25. 선고 2002도5577 판결 등). 

우리 제도와 법률가가 주거(건조물)침입죄나 퇴거불응죄를 대하는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업장은 사용자의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의 일터기도 하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가정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법 해석상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들어오지 마라’, ‘나가라’는 말 한 마디에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일을 하러 회사에 가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파업을 하러 회사에 가는 것은 죄가 된다. 소유권에 대한 집착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소유권이라는 재산권이 절대적인 보호 대상이던가. 대한민국 헌법을 보면, 노동3권에 대한 보장 정도가 재산권에 대한 보장 정도보다 더 강하다. 재산권은 법률로써 그 내용과 한계를 정할 수 있지만 노동3권은 그러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터는 오로지 사용자의 것이라는 태도가 법률가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 재산권 보호에 대한 강박증이 사법부와 검경으로 하여금 사용자의 수족이 되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업무방해죄는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사용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사문화되거나 퇴출 당한 업무방해죄가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주거(건조물)침입죄와 퇴거불응죄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등장했다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공간의 소유자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 “기업이 잘 돼야 나라 잘 된다”는 편견, 홍세화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논리가 우리 사회에 너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러한 의식이 제도로 안착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이여. 형법 공부를 하기 전에 헌법 공부 먼저 하시라.  

<공감 뉴스레터 2014년 10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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