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평화학에서 보는 한반도평화 (3)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평화학에서 보는 한반도평화 (3)
  • 신희섭
  • 승인 2014.10.17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평화의 의미가 지금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 것에는 전쟁이 미친 영향이 크다. 이는 국제정치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1차 대전은 1천 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고 이것은 전쟁의 참혹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려주었다. 이로 인해 전쟁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평화가 획득하고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큰 고통 속에서 배웠다.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 이후 강대국 간의 전쟁이 없었던 ‘100년간의 평화’시기를 보내면서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전쟁에 대한 막연함과 평화의 일상성에 대한 인식은 전대미문의 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이상주의자들의 득세는 전쟁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었다. 1차 대전은 ‘모든 전쟁을 없애는 전쟁’으로서 인류의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동기가 작동했다. 하지만 좋은 동기는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했다. 1차 대전이 평화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면 2차 대전은 전쟁과 평화를 좀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했다.

전쟁은 이제 선한 인간들 사이에 우연적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게 되었다. 같은 세대가 두 번의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선한 인간에 대한 이상주의자들의 주장을 붕괴시켰다. 더 많은 인간들이 권력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향해서 나갔고 그로 인해 희생되었다.

전쟁으로 실제 평화연구가 확립되게 된다. 역시 전쟁은 인류의 스승이었다. 낙관적 전쟁가능성과 막연한 평화에 대한 신념은 냉철한 권력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반성과 국가의 독자적인 논리에 대한 성찰로 대체되었다. 평화는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일구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30년에 걸친 참화 속에서 인류가 배우게 된 것이다.

6천 만 명이나 되는 사망자를 낸 전쟁은 국가 간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으로 현대국제정치학이 탄생했다. 현대 국제정치학은 국내정치의 연장선상이 아닌 국가 간의 관계의 독자성을 이론화하면서 전쟁의 발발과 연계되는 현실주의의 안보학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평화학의 발전도 가져왔다. 레이몽 아롱이 국제정치를 묘사한 대로 ‘평화와 전쟁’ 모두가 학문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2차 대전이후 평화연구가 활발해졌다.1) 우선 평화학은 평화연구소들의 수립으로 연결된다. 미국에서는 테오도르 렌츠(Theodore Lentz)가 세인트 루이스에서 1945년 평화연구소를 세웠다. 오슬로 평화연구소가 1959년 사회연구원의 일부로 출범했다가 1966년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이 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요한 갈퉁의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1966년에는 스웨덴에서 150년간 평화가 지속된 것을 기념하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설립되었다. 1969년 핀란드에서는 탐페레평화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또한 미국에서도 평화학의 전통이 자리를 잡았다. 대표적인 것으로 1957년 미시건 대학에서는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을 창간하였다.

평화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평화개념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평화는 전쟁부재로서의 소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 갈퉁은 직접적인 폭력이 부재한 상태만이 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폭력에서 더 치밀하고 더욱 조직적인 것은 ‘구조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구조적 폭력’이란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인한 차별과 관련된다. 이것이 사라질 때 ‘적극적인 평화’가 구축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조적폭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조적인 폭력’은 사회적 조건으로서 폭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폭력은 사회적 제도와 문화적 특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예제도나 인도의 카스트 계급제도와 같은 것이다. 구조적 폭력은 다시 억압(oppression)과 차별(discrimination)이라는 두 가지로 구성된다. 억압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착취하거나 다른 이의 자기확증(self-affirmation)추구를 방해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없게 함으로서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노예제도에서 노예는 주인에게서 억압을 받으며 그의 삶은 전적으로 주인의 관대함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차별은 특정인들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평등이나 자유 등을 다른 이들과 다르게 부정하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고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사회경제적 접근의 기회가 거부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지 않거나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출산 가능성으로 인해 사회에서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차별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억압과 착취를 받는 것은 직접적인 폭력에 노출되는 것 보다 더욱 체계적으로 개인들이 추구하는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평화를 안정(stability)과 질서(order)로 이해하는 것과 정의(justice)로 이해하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직접적인 폭력이 없는 것은 국가들의 관계에 안정과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반면에 구조적인 폭력이 없다는 것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적극적인 평화는 평화의 개념을 단지 국가 간의 질서로만 이해하던 것에서 개인과 사회적 조건을 다루도록 확장해준 것이다.

냉전이후 인류가 목도하는 것은 전쟁의 부재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이다. 대표적으로 유고의 해체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종간의 대립과 반목에 따른 난민의 발생이나 아프리카 내전으로 인한 기아문제와 최근 질병의 확대문제를 들 수 있다. 또한 선진국가내에서 총기사건 등으로 대표되는 다문화정책의 실패 역시 사회적 조건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21세기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테러리즘 역시 사회구조적 조건에 대한 불만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적극적평화와 관련되어 있다.

적극적 평화의 개념 확장 역시 한반도에 주는 의미가 크다. 한반도는 전쟁방지를 위해 안보가 과도하게 발전해 있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은 전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군사력배치를 보여주며 상비군을 실제 전선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서 운용하고 있다. 경제력에 대비해서 과도한 군사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은 전쟁으로의 복귀를 만들지 않기 위한 억지 전략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에 양극화의 심화와 빈곤층의 확대문제나 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와 함께 고용불안의 문제와 다문화의 확대와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은 평화가 일국간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시 학문적인 이론발전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냉전체제가 다극화되어 가던 데탕트시기에 평화학은 점차 안보학과 수렴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팔메위원회의 공동안보개념을 들 수 있다. 잠재적 적대국가와 동반적으로 안보달성노력을 강조한 공동안보는 이후 유럽에서 협력안보로 발전하였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다자안보대화제도는 이러한 안보개념의 실험장이다. 이런 안보개념의 확대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가 국가간 안보를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평화와 안보를 연결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탈냉전기 들어와서 유엔개발회의(UNDP)가 1994년에 제시한 인간개발보고서에서의 인간안보를 들 수 있다. 인간의 권리인 인권과 국가 주권간의 충돌시에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를 두고 논의가 진행 중이기 하지만 인간안보는 국가를 뛰어 넘어 경제, 사회적인 조건을 구축하는 것이 평화와 안보의 핵심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화학과 안보학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10월 16일

 

각주)-----------------
1) 김명섭, “평화학의 현황과 전망”, 『21세기 평화학』(2002, 서울, 풀빛)에서 평화학의 발전분야를 발췌하였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