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평화학에서 보는 한반도평화 (1)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평화학에서 보는 한반도평화 (1)
  • 신희섭
  • 승인 2014.10.02 1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이번 학기에는 평화학을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안보를 전공하는 입장에서 평화라는 문제를 다루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다. 레이몽 아롱이 국제정치의 본질을 전쟁과 평화라고 했을 때 평화는 전쟁의 부재였다. 전쟁의 부재로서 평화를 보는 것은 다루어야 할 부분이 한정되어있다. 전쟁을 막으면 평화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들에 집중하면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조금은 편하게 평화학 강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강의를 하기 전에 두 가지 질문이 생겼다. 첫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이야기하는데 과연 이들이 이야기하는 평화가 동일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천주교에서는 미사중에 “마음의 평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과연 이 평화는 레이몽 아롱이 이야기한 평화와 같은 것일까? 도처에는 평화라는 용어가 난무하는 데 과연 우리는 평화를 확고한 개념으로 규정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두 번째 질문은 평화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한 가지 가치라고 한다면 과연 사람들은 평화라는 가치를 다른 가치들 예를 들어 자유나 평등이라는 가치만큼 선호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자신의 부를 증대하는 것보다 과연 평화를 더 선호할까? 어떤 면에서 평화는 누구나 꿈꾸고 바라지만 사실 전쟁이나 내란이나 내전과 같은 상황이 아닌 경우 평화는 일상속의 공기와 같은 존재로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지 모른다.

이런 질문을 가지고 평화론의 첫 강의를 시작했다. 그래서 강의는 평화가 어떤 의미인가에서 출발했다. 평화의 개념이 모호한 경우 이것을 바로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평화의 반대쪽에 어떤 개념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의 반대말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학생들로부터 나온 개념들은 불안, 초조, 공포, 혼란, 전쟁, 분쟁, 죽음, 지옥과 같은 용어들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개념들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구분을 좀 해보았다. 불안, 초조, 갑작스러운 죽음과 지옥 등은 개인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심리적 불안들의 반대쪽에는 평화가 정확하게는 평온(tranquility)이 있다. 심적인 혼란이 없는 평정심 즉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무아상태와 가까운 상태가 있다. 반면에 사회적인 혼란과 불안정으로서 이해되는 것의 반대쪽에 있는 평화는 사실은 안정(order)의 의미이다. 따라서 이것의 반대는 정확히는 불안정(disorder)이 있는 것이다. 전쟁과 분쟁의 반대쪽에 있는 평화는 앞서 본 레이몽 아롱이 이야기한 전쟁의 부재로서 평화를 의미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평화라고 막연하게 부르는 것 혹은 막연하게 추구하는 가치는 개인적인 평온함, 사회적인 안정, 국가간의 전쟁의 부재라는 것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추상적 가치를 좀 더 체계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간단한 사고 실험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만약 어떤 정당들이 각각 정책방안으로 성장률 5%를 약속하거나 복지를 통해서 교육과 의료문제를 해결하겠다거나 주택을 100만 가구 공급하여 주택시장의 안정을 가져오는 정책을 제안하였고 다른 한 개의 정당이 평화를 정책의 가장 중요한 방안으로 제시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투표권을 이용해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성장, 복지. 주택공급안정이라는 실질적인 경제 문제가 평화보다 정치적 선택을 당하게 될 것이다. 평화는 중요하지만 다른 가치들이 추구되는 전제로서 중요하기 때문에 평화가 유지된다면 우리는 어떤 다른 가치를 선호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에서 출발한 평화는 1950년대 이후 개념확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평화는 레이몽 아롱이 이야기한 직접적인 폭력의 사용이라는 전쟁의 반대만을 의미하는 ‘소극적 평화’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이 부재해서 사회적 정의가 달성될 수 있는 ‘적극적 평화’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화라는 개념이 개인 간의 관계나 국가내의 사회집단간의 관계나 국가 간의 관계에 확장해서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평화론은 그럴 수 있다고 답하는 것이다.

평화의 의미는 소극적인 것에서 확대되었다. 평화를 가장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폭력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폭력이 부재한 상태라는 개념규정은 다시 그렇다면 폭력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하게 만든다. 폭력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이 있는가 하면 ‘구조적인 폭력’도 있다. 구조적인 폭력은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받게 되는 억압(oppression)과 자신의 의지에 관계없이 받게 되는 차별(discrimination)이 있다.

요한 갈퉁으로 대표되는 스칸디나비아학파의 노력은 평화의 의미를 직접적인 폭력의 부재라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구조적인 폭력의 부재로 확대했고 이렇게 화장된 개념이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로 만들어진 것이다. 적극적 평화는 ‘구조적인 폭력’이 부재한 상황을 평화상태라고 본다. 구조적폭력이 없다는 것은 사회, 경제적 차별이 부재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족적 차별로 인한 사회적 편견과 갈등이 생기는 것이나 양극화와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인해서 생기는 경제적 빈곤과 경제구조의 고착화가 인간 개인의 불안을 가져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적극적 평화이다. 따라서 적극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 경제적 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 소극적 평화가 상대국가의 직접적인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힘에 기반한 억지정책이나 세력균형과 같은 군사력에 관심을 가진다면 적극적평화는 평화의 토대가 되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렇다면 평화개념의 확장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러한 평화개념의 확장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먼저 평화를 위한 조건을 다루게 한다. 그전까지 평화는 전쟁의 부재를 의미했고 그로 인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하였다. 세력균형, 억지, 군사력증강과 군사력의 통제, 핵무기사용과 관련한 전략 등이 소극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면 다문화주의를 포함하는 인권의 문제와 인권운동, 환경과 생태문제, 경제적 빈곤을 해결하고 복지정책을 통해서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문제, 비폭력운동을 전개하는 것과 이러한 것들에 대한 교육 등이 적극적 평화를 구축하는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두 번째 의미는 평화의 전제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적극적 평화로 인해 평화는 단지 국가 간의 관계라는 틀에서 개인의 문제로 전제조건을 확장하게 되었다. 소극적 평화에 주안점을 둘 때 국가를 안전하게 함으로서 전쟁을 막고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인명피해와 무차별적인 파괴를 막는 것에서 적극적 평화는 개인 자신이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게 함으로서 국가안의 개인을 끌어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이러한 논의의 확대 혹은 전제의 변화는 안보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평화가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안보 단위에서 적극적인 의미에서 인간안보로 확대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로서 국가간 전쟁을 막고자 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안보학과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적극적 평화로 확장된 평화학이 만나는 지점이 형성된 것이다.

세 번째 의미는 이론적 입장에서 평화에 대한 시각이 확대되었다. 전쟁과 평화를 다루는 현실주의는 평화를 절대적으로 국가의 문제로 보고 국가의 안전이 확보되면 국가 내 구성원의 안전은 자동으로 확보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평화학이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자유주의의 아이디어가 확대되고 마르크스주의이론이 말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구성주의나 탈근대이론 등의 이론에도 도움을 받아 평화를 이해하는 방식이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처한 조건에 대한 연구는 사회적성인 gender 문제가 평화와 어떻게 엮여있는지를 제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