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3)-온전한 나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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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3)-온전한 나의 자리
  • 차근욱
  • 승인 2014.10.0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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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저 산 너머 (Über den Bergen)

칼 붓세(Karl Busse)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멀리 찾아가면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아, 남들과 어울려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울면서 되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어린 시절, 저녁 노을이 질 무렵 바람 사이로 보이는 산은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멍 하니 바라보면서 산 너머엔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 보곤 했었다. 그러다 보면 어쩐지 그 산 정상에는 색다른 공기와 신비로운 유적과 근사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뭐, 세상 모든 일이 모두 그렇듯 이런 환상도 결국은 깨지고 말았는데, 그것은 군대에서 였다.

부대의 특성상, 훈련지는 늘 산이었고 그렇게 오른 산의 정상에는 그저 적막만이 있을 뿐이었다. 굳이 더 찾아보자면 모기와 추위와 눅눅함 정도랄까. 내가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것들은 모두 산 아래 있었던 것이다. 산은 산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신없이 강의와 원고 속에서 지내다보면 집이 엉망진창이 되곤 한다. 청소를 할 짬이 도무지 나질 않으니 스스로 보기에 그냥 한숨이 날 때가 있다. 시간이 좀 날 때는 잠을 보충하느라 또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하지만 나름대로 반드시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는 곳이 있으니, 그 곳이 바로 ‘책상’이다.

집에서 보내는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기도 하고, 내가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베이스 캠프’이기도 하니까. 책상 위가 깨끗하지 않다면 도무지 원고를 쓸 마음도, 강의를 준비할 의욕도 생기질 않는다. 그러니 책상은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 정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언젠가 몇 년 전, 일에 치이면서 책상에 앉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충전은 없이 자신이 소모되어 버리는 느낌이 너무 버거워 어디론가 그냥 훌쩍 도망쳐 버리고만 싶은 기분이었달까. 하지만 그런 철없는 생각도, 알 수 없는 삶의 의미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내가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많은 사람들이 고민한다. 과연 지금의 내 자리는 내 자리가 맞는지.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이 길이 아닌데,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의 자리가 자신의 자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가 따로 준비되어 있는 인생이 있던가?

인간은 약하다. 육체도 약하고 마음도 약하다. 쉽게 병들고 쉽게 망가질 뿐만 아니라, 힘들면 도망가고 싶고, 외로우면 울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영웅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 듯, 자신의 자리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낼 뿐이다.

편한 길을 찾고 싶은 마음은 잘못이 아니겠지. 어쩌면 당연한 일일게다. 약하기에 인간일 테니. 하지만 그렇기에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딛을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인간으로 서기 위해, 진정한 내 자리를 찾기 위해.

꿈을 버릴 수가 없어서, 낮에는 온갖 허드렛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던 지난한 몇 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좀 먹먹해 질 때가 있는 기억인데, 그 때는 참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돌아보니 다 필요했었기에 그런 경험하길 잘했다, 라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어려움은 분명 상처였고, 지금도 문득 문득 그 흉터가 가슴 속에서 아려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시간이 지금의 내 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해 준 것 역시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다면, 이 순간이 두렵다면, 걱정하지 마시라. 정상이니까. 그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나 겪는 일일 뿐이다. 적어도 스스로를 포기해 버리고, 되는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대가 그렇듯, 나 역시 그랬다.

요컨대, 파란 하늘을 사랑하려면 폭풍우까지 품어 안아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니까. 자신이 가고 있는 이 길이 자신의 길인지 아닌지, 우리는 늘 불안해 한다. 하지만 가다보면 알 수 있었던 듯 싶다. 그 길이 나의 길인지 아닌지.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는 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일은 없었던 듯 싶다.

꿈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일을 하고 있더라도, 벗어나기 힘든 괴로운 순간 속에 있더라도, 그 모든 경험과 시간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자신의 자리를 찾았을 때, 그 지난 모든 과정이 필요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마련이니까.

적성을 찾고 진로를 따지며 대학에 진학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선 전공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오로지 필요한 것은 일자리라는 것을. 그래서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 꿈도 포기하고, 긍지도 포기하고. 그러다 나중에는 그저 순간의 도피처를 찾아서 방황하는 ‘아저씨’나 ‘아줌마’가 되고 만다. 언젠가는 공허감에 부숴져버릴지 모를 유리심장을 애써 외면한 채로.

경쟁의 끝에 뭐가 있을까? 아니, 애시당초 왜 이토록 경쟁만을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이상하다. 모두가 승리 후의 행복만을 꿈꾸지만 경쟁의 끝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승자도 패자도 각자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상처입은 뒤 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어쩌면 그래서 애닯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기 마련이다. 인생의 기회는 엉뚱한 곳에서 오기도 하는 법이므로. 아무리 혹독한 경쟁이라 할지라도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꿈을 버리지 말 것, 스스로 긍지를 버리지 말 것,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끝까지 믿을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나갈 것.

산 너머에 행복이 있으리라는 것은, 산 너머에 행복이 있기 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어쩌면 산을 넘는 과정에서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자신의 자리란, 그처럼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고민하며 산너머 산을 헤쳐가는 중에만 얻어지는 것은 아닌지. 파랑새의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처음부터 우리 곁에 있었을 게다.

링컨은 40후반까지 8번이나 낙선했고, 2번의 사업 시도도 모두 실패했지만 대통령이 되었다. 에디슨은 1093가지의 발명품을 만들어냈지만, 수 십 만번을 실패했다. 축전기를 발명할 때까지는 5만번의 실패를 극복해야 했었다고도 한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고교 농구팀에 입단을 거절당하자 방문을 걸고 하루 종일 울었었다며 회고했다. "저는 선수생활 중 9000번이나 넘는 슛에 실패했고, 300차례의 경기에서 졌습니다.

제 손에 동점골을 깨라는 기회가 주어진 게 26차례나 됐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평생 수없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슛을 잘 날릴 수 있게 됐습니다" 라고. 톨스토이가 죽은 뒤 그의 방을 정리하던 사람들은 방 안에 빼곡하게 쌓여 있는 실패작들을 보고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셰익스피어도 평생 154편의 시를 썼는데, 성공한 몇 편 빼고는 모두 형편없는 졸작이었다고 한다.

다윈은 ‘진화론’말고 평생 119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프로이드는 650편이나 되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모자르트는 평생 600편이나 되는 곡들을 발표했지만, 대부분 형편없어 사장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돌아갈 자리가 없다면, 앞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돌아갈 자리가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일이다. 내게 허락된 책상이 있다는 축복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일지 모른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더러워진 작업복을 입고 나서야 배울 수 있었다. 진주에도 상처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나는 손이 터지고 갈라진 후에야 깨달았다. 온전한 나의 자리가,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 말고 또 어디 있던가. 비가 내린다. 청소를,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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