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사의 법원 방문기, 판사의 병원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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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사의 법원 방문기, 판사의 병원 방문기
  • 신진화
  • 승인 2014.09.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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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화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이 구석진 데 놓여 있는 칼럼 나부랭이를 누가 읽어 줄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의무가 되어 있는 칼럼 숙제를 앞에 놓고 법원 홈페이지를 찾았다. 미리 알고 있지 않으면 눈길 줄 일 없는 섹션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클릭수가 상당하다. 수백 개, 천여 개씩. 생각을 해보았다. 난생 처음 법원에 끌려 나가게 된 이들, 이런 곳을 과연 가야만 하는 것인지 서성거리게 된 이들, 어느 하루는 온종일 이 홈페이지에 붙어 앉아 이곳저곳을 파헤쳐보다가 여기에 이르러, 도대체 이곳 사람들은 뭔 생각을 하는 건지, 지푸라기 잡아보는 심정으로 법원칼럼을 클릭했을 것이다.

언젠가 법원에서 일반인들을 초청해 행사를 했을 때 잠깐 구경을 갔었다. 앞에 계시던 분께서 모처럼, 아마도 일부러, 업무와 아주 먼 말씀을 인사말로 꺼내셨다. “여러분, 오늘이 대보름인데, 오곡밥은 잡수셨나요?” 하지만 장내는 이미 술렁이겠노라고 아예 작정을 마친 상태였다. 의문사 했다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목에 달고 계신 아버지, 몇날며칠을 법원 정문에서 보고 또 봐야 했던 성난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어머니들 … 피켓과 주먹들이 강당 천정으로 치올랐다. “지금 밥숟가락이 넘어가냐!!” 행사는 내내 순조롭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대로 선의였으되, 그 선의가 선의가 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곳이 나의 일터다.

1990년 지금의 이 일터를 방청객으로 열심히 드나들던 한 때가 있었다. 지하철 2호선을 나오면 꽃을 가꾸는 비닐하우스들 사이로 드문드문 건물이 보이던 시절이었다. 법원으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불친절하고 울퉁불퉁하던지, 교대역 도착은 암울한 시간의 시작이었다. 법정 내 경위의 작은 눈짓 하나에도 가슴이 덜컥 거리곤 했다. 법복을 입고 이 일터에 출근하게 되면서, 난 그 순간들을 잊지 말자는 다짐을 리스트에 넣었다. 내 법정에 들어오기까지 온통 현기증 나는 거친 길을 걸어왔을 당사자들, 몇 초만이라도 그들이 되어보자! 물론 쉽지 않았다. 나 또한 늘 최악의 컨디션으로 법정 문을 열기 때문이다. 법정은 그런 곳이다.

법정은 멀쩡한 사람들까지도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서로를 만나는 곳이다. 그 무슨 예외가 있겠는가. 불경기가 계속되고, 법률과는 상관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던 의사들도 법원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이들은 스마트하던가? 짐작하시겠지만, 아니다 - 이 ‘역지사지’의 예로 의사분들을 든 점 죄송하다. 제 경험의 누추함 탓이므로 진정 양해를 구한다. -. 동업으로 개원했다가 동업이 깨져 법원에 오시게 된 의사분들, 집요하고 똑똑한 주장을 펼치시지만, 제3자가 보면, 바로 글쎄일 것이다. 할 말은 너무 많으시지만, 사실 그 정도 할 말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갖고 있다.

그 의사분들의 말씀 한 마디를 기다리며 노심초사 안절부절하는 순간이 바로 그 다음 내게 온다. 진료시간에 맞춰 부리나케 가보지만 역시나 가보면 또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은 길어서가 아니라 불확정한 불안 때문에 힘들다. 벽에 붙어 있는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 같은 성경구절이 가슴에 불을 지르고, 옆에 계신 모든 환자분들의 고통과 불안에 함께 휩싸여 어서 이 대열에서 한발짝 옆으로 빗겨설 수만 있다면 그저 착한 양이 될 온갖 준비를 다한다. 의사가 입을 연다. 그 결과가 다행이든 아니든 쉴 새 없이 말하고 싶고 이미 말문이 터져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뻔한 질문을 계속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간호사가 “그건 …” 하면서 나를 잡아끌 태세를 갖추면, 아, 그제서야 ‘문제당사자’가 되어 있는 이 환자를 내가 보게 되는 것이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난 잠시 친절한 판사가 된다. 이른바 초심으로 돌아가 울퉁불퉁한 길을 헤매어 법정에 들어서게 된 오늘 내 당사자들이 되어 본다. 그러나 인간의 반성의 기억이 그렇게 강력하다면 오늘의 법정이 과연 있었겠는가. 얼마 못가 난 또 부족한 수면과 침침한 눈, 꺼칠해진 피부를 달고는 법정의 문을 황급히 열어제낀다. 그러므로 각성과 반성의 빈도수라도 늘리기 위해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꾸 병명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나저나 이런 한가한 상념에나 빠져 있는 판사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또 혀를 끌끌 차고 계실 독자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쭈삣해진다. 얼른 닫아야겠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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