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55 / 정비사업 ‘사업비용’ 들춰보기[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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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55 / 정비사업 ‘사업비용’ 들춰보기[1편]
  • 이용훈
  • 승인 2014.09.05 09:0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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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및 건축시설원가

 

 

 

 

 


이용훈
감정평가사

‘이번 달 가계부 펑크 났어’ 아내는 심각한 문제는 아니란 듯 슬쩍 말을 흘렸지만 이 상황이 꽤 낯선 듯싶다. 월별 가계 수지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게 몇 년 만이라 본인도 좀 놀랐을 것이다. 수입은 월 단위, 지출은 일 단위로 이뤄지니, 내달 지출을 앞당겼거나 계획에 없었던 목돈 지출이 있었을 게다. 요즘 같은 경기, 빠듯한 가계부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자금줄이 신통치 않은 기업 경영자는 명절 앞두고 깊은 시름에 빠진다. 곳간에 막대한 현금을 쌓아둔 대기업 몇 곳 빼면 원활한 자금 집행이 이뤄지는 사업장은 그리 많지 않다. 일회성 혹은 단기성 적자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지만 수지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상황은 다르다. 여기, 예상 못한 지출이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특이한 사업장이 있다. 고정수입에 변동지출 구조이며, 예외 없이 사업 끝날 때까지 지출이 계속 증가하는 정비구역 사업장이다.

정비 사업의 지출예산, 곧 사업비용을 검토하는 일은 조합 임원 몇 사람만 관심을 기울일 문제가 아니다. 조합에서 알아서 해주겠거니 남 일처럼 대하는 조합원은 총회 때마다 놀란 가슴 쓸어 담을 준비를 해야 한다. 사업비용은 다소 얼마라도 늘면 늘지, 줄어들진 않는다. 사업비용 수 십 억 원 증가와 조합원분담금 기 백만 원에서 기 천만 원 증가는 등가다. 정비사업의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조합 임원도 공부할 게 산더미다. 학습량이 떨어지면 시장 통에서 제 값 이상 주고 사 놓고는 떨이로 산거라고 안심시키는 용역업체의 농간에 놀아나기 십상이다. 항목마다 수 천만 원에서 수천 억 까지 판돈 단위가 다른 곳이 정비사업 구역 아닌가. 계주나 총무격인 조합임원이 수백 명 조합원의 호주머니를 잘 지켜야 하는 건, 자신도 조합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의 ‘사업비용’을 원가의 성격에 따라 토지원가, 건축시설원가, 공통비용으로 나눌 수 있다. 철거하기 전 건물을 포함해 사업부지는 토지의 원가를 구성한다. 이들은 종전자산에 해당되고, 생돈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에 기회비용 성격을 갖는다. 그렇다고 기회비용이 고정된 것은 아니다. 조합원으로 참여했던 자가 발 빼버리면 해당 자산의 가치는 토지원가에서 빠지고 공통비용인 현금청산비용으로 계정을 갈아탄다. 사업 초기, 구역 이곳저곳 발품 팔며 용역업체가 조사 측량하는 비용도 토지원가를 구성한다. 요즘 항공 측량 사진 확보가 용이하다. 여기에 현 지적도를 겹쳐 놓고 현장을 돌아보면 난감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 수 십 년 간 남의 땅을 꽤 많이 밟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그 중 하나다. 뒤늦게 사용료 내라고 하기엔 몰인정하다고 손가락질 들을 수도 있다. 이 곳은 후미진 만큼 인정이란 게 아직 남아 있는 공간이다.

‘정비’란 말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개량’을 넘어선다. 주거환경관리 사업 정도가 ‘개량’의 범주에 머무를 뿐, 대부분은 기존 건물을 전면 철거하고 신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건축시설의 원가 우두머리는 단연 건축도급공사비다. 단일 항목으로는 기회비용인 종전자산 평가액을 제외한 실질적 사업비용 중 점유율 면에서 선두주자다. 규모도 기 백 억 원에서 기 천 억 원에 이른다. 공급연면적을 기준한 공사단가로 계약하므로 단가를 몇 만 원만 조정해도 총액의 변동 규모는 수 십 억 원이다. 정비업체나 조합보다 시공업체인 건설사가 이 업계에서 공사계약 건에 대해선 닳고 닳지 않았을까. 만만치 않은 계약상대란 말이다. 계약은 가계약과 본 계약의 과정을 거친다. 최종 계약에 대한 합의가 늦춰지면 쌍방에 부담이다. 조합은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위험, 시공사는 대기기간이 늘면서 전체 공기(工期)가 예상치를 넘어 건설사 내부 자금 압박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공사 진척되는 만큼 가계약 단가로 공사실비를 지급하고 최종 계약 시 정산하는 고육책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이견이 정 좁혀지지 않는다면 공사비 조정신청에까지 이른다.

뉴타운, 재정비촉진구역 내 사업장이 세분되어 비슷한 시기 경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면, 첫 공사계약을 하는 사업장이 자천타천 기준잣대 역할을 하게 된다. 시공사의 브랜드를 비교 요소로 기준공사비와 우리 구역 공사비를 이래저래 재볼게 분명하다. 시공사의 조삼모사 전략에 휘말려 드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윗돌 빼 아랫돌에 괴는 전략은 ‘순진한’ 조합임원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다. 직접공사비는 저렴하게 보이도록 계약을 하고는, 간접공사비로 이것저것 덧붙여 총액이 원안대로 가도록 항목을 조정하는 게 예사 전략이다. 건축물 철거비나 석면 등 폐기물 처리비는 그렇다 쳐도, 기반시설 공사비를 별도 원가로 슬쩍 껴 놓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아파트만 달랑 짓는 공사가 어디 있겠는가. 진입도로나 단지 내 도로 공사는 별 건이 아니라 건축도급공사비에 포함시켜 한 건으로 취급해야 마땅하다. 정비사업비추산액(안)을 들고 조합을 들락거리는 정비업체도 한 배를 타긴 했으나, 용병의 신분임을 잊으면 안 된다. 단계가 진행되지 않으면 수수료 입금까지 하세월(何歲月)이니 은근슬쩍 시공사에 힘을 실어주고 진행을 재촉시킬 요량이면 적당히 눈치 채야 한다. 건축시설에 대한 설계나 감리도 별도의 용역수수료가 지급되며 건축시설 원가의 한 축을 구성한다.

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감정평가가 수행되는 곳이 정비사업 구역이다. 전문관리업자인 정비업체를 제외하면 어느 용역업체보다 이래저래 조합 임원과의 접촉기회가 많다. 조합임원 중 누군가로부터 자신들이 ‘너무 순진했다’고 뒤늦게 한탄하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흥정 한 번 없이 부르는 대로 용역업체에 돈 줘버렸다는 자조다. 물론, 충분히 뒷돈 좀 받을 수 있었는데 제대로 못 찾아먹었다는 탐욕에 근거한 탄식일 때도 있다. 여하튼 용역업체만 수 십 곳에 이르는 정비 사업은 지출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가계부를 대강 볼 수 있는 능력은 수도권, 광역도시,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도시민에겐 고급 상식이 돼 가고 있다. 아마도 분담금 증가액이 대학생 자녀 한 해 등록금 이상인 경우가 많아지면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않았을까.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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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 2015-01-15 13:32:20
정비사업 조합원이 알아야 할 유익한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인 2015-01-15 13:32:20
정비사업 조합원이 알아야 할 유익한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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