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구에게나 찬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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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구에게나 찬란한
  • 박서우
  • 승인 2014.07.1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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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우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지난달 초에는 긴 연휴를 이용하여 오랜만에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상영 시간표를 뒤적이다가 아동복지시설 유소년 축구팀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짤막한 소개에 끌려, 우연히 임유철 감독님의 ‘누구에게나 찬란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지역사회 복지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저 공을 차는 것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체계적인 축구를 해 봅니다. 그렇지만 축구를 계속하는 것은 아이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당장 아이들을 위한 유소년 축구팀을 만들어 운영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후원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여러 단체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위한 축구 팀 희망 FC가 일단 결성되었지만, 아이들이 팀에서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또 아이들이 품은 축구 선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 유소년 리그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공을 차는 것을 좋아했지만,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제대로 된 축구 교육을 받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지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누구도 아이들에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주지 않았고, 네가 이렇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북돋아 주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겐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영화는 그랬던 아이들이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차분히 담아냅니다. 공을 차는 발에 점차 자신감이 붙습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크게 외치는 목소리와 눈빛에는 절박함과 함께 희망이 어려 있습니다. 희망 FC는 경남 지역 유소년 리그에 참여해 차근차근 승리를 거둔 끝에 마침내 결승전에까지 진출합니다. 영화관을 채운 백 명 남짓의 관객들은 어느새 아이들의 발끝을 따라 움직이며 공 하나 하나에 탄식과 환호를 거듭 내뱉습니다.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이 역경을 딛고 리그 결승전에 진출한다는, 어찌 보면 전형적이고 통속적일 수도 있는 이 이야기가 보는 사람의 눈가에 눈물을 고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가 가진 진실의 힘 때문일 것입니다.

희망 FC 아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찬란한 꿈을 바라보다가, 문득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법원에서 일하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저는 판사라는 직업이 있는지, 그게 무엇을 하는 것인지조차 몰랐었습니다. 유년기의 어느 틈을 헤집어 기억을 꺼내어보면, 중고타이어와 철물이 가득 쌓여있는 풍경만이 선명합니다. 해가 지고나면, 새까만 기름때가 낀 거리에 얹힌 컴컴한 어둠은 유난히 짙게만 느껴졌습니다.

왜 법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작년, 법관으로 선발되기 위해 수회의 면접을 거치면서 그 때마다 받았던 질문이었습니다. 왜, 언제부터 그런 꿈을, 생각을 가지게 되었나요. 켜켜이 쌓인 어둠 속에서 스스로도 정체를 모르던 그것을 그럴듯하게 채색하여 이런 꿈이었노라 꺼내놓기에는 괜시리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몇 번이고 비루먹은 말처럼 대답을 삼켰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사회학자 조은 교수님은 사당동 재개발 철거 지역에 살던 금선 할머니네 가족의 삶을 25년간 채록한 이야기를 담은 저서인 ‘사당동 더하기 25’를 다음과 같은 구절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러나 25년에 몇 년이 더해져도 같은 이야기를 쓰게 될지 모른다. 그 점이 두렵다. 25년이 더 더해져도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가난은 돌고 돌고 또 돌고, 가난을 재생산하는 그 구조에서 개인이 빠져나오기란 이제 정말 힘든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금선 할머니의 증손주 영현이는 사회복지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에도 우물쭈물 말을 얼버무립니다. 그렇지만 조금의 어루만짐만 보태어진다면 영현이도 찬란한 꿈을 꾸고 그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까지 수상하였지만, 개봉을 위한 자금이 부족한 탓에 정식으로 상영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희망 FC 아이들이 마침내 펼치는 찬란한 꿈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길 바라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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