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수기> 군청 아르바이트 하며 키우게 된 공무원의 꿈
상태바
<합격수기> 군청 아르바이트 하며 키우게 된 공무원의 꿈
  • 이인아 기자
  • 승인 2014.07.16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직 일반행정직 9급(2009년 합격)

본인의 요청에 따라 실명을 공개하지 않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공무원 시험 준비 계기

벌써 10년 전의 일입니다. 우연히 저는 2004년 대학 2학년 겨울방학에 군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착실하게 대학졸업 잘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는데 목표였습니다.

군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공무원은 참 재미없는 직업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한 달을 다녔는데 어느 날 제 옆 공무원 서기님이 자꾸 저에게 방학 때는 무조건 광주로 올라가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공무원이 제일 편하고 좋은 직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무원 주사님의 월급을 알게 됐는데, 그때 이후로 저는 ‘공무원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물론 호봉이나 근무연수를 생각 안 했지만 여자 월급으로 ‘그 정도 벌면 정말 괜찮겠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무튼 그때부터 저는 정말 공무원이 되고 싶었고 간절했습니다. 군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지나가는 공무원들을 보면 왜 그렇게 다들 멋지고 부러웠던지 모릅니다.

그렇게 저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대학교 3학년 1학기부터 휴학을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집에서 첫째고 모든 게 저를 통해 첫 경험을 하는 부모님은 갑자기 휴학을 하겠다는 큰딸을 엄청 걱정하시고 만류하셨습니다.

공무원 준비를 하는 건 좋지만 대학 졸업을 하고 준비를 하라고 저를 엄청 말리셨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이 너무 급했고 왠지 저는 준비를 하면 반년도 안 걸려서 합격을 할 것만 같았습니다.

부모님을 엄청 설득해 협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3학년 1학기까지만 다니고 2학기 때부터 휴학을 하는 걸로 말입니다. 결국 저는 3학년 1학기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며 학교를 다녔고 결국 3학년 1학기 끝나는 여름방학부터 공무원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제가 너무 부끄럽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왜 그렇게 거만했을까?’, ‘왜 나는 그렇게 헛된 자신감에 차 있었을까?’하고 말입니다.

공무원 시험은 누구나 열심히 하면 합격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하지만 노력 없이 머리만 믿고 하면 절대 합격할 수 없는 시험입니다. 공무원 시험은 수능시험이 아니고 교양시험이 아닙니다. ‘대충 이럴 것이다’, ‘찍어서 맞춰야지’하는 생각을 가지고 대충 공부했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그리고 영어점수가 일정 이상 안 나와 주면 수험기간이 계속 길어지고 1~2점 차이로 떨어지는 상황 때문에 1~3년은 그냥 보내게 됩니다.

♣ 수험생활

저는 ‘2004년 여름방학에 공부를 시작해야지’하고 마음먹었을 때 너무 거만했고 너무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방국립대학에 다녔지만 휴학하기 전까지 과에서 계속 수석을 했고 공부를 별로 안 해도 학점이 잘 나와 줘서 저는 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에서도 다 잘한다고 해줘서 저는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해서 제가 상대적으로 잘하게 보이나봐’라고 겸손한척했지만 그 내면에는 저도 모르게 약간 거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의 수험생활을 알려드리겠습니다. 2004년 8월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2달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공부를 해야겠다’, ‘2달 뒤에는 광주로 올라가서 학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2달이 지난 뒤 광주에 올라가야 했지만 2달만 일을 더 해달라는 사장님의 부탁으로 2달을 더 일을 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지 했는데 정말 그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4달을 일을 하고 12월쯤 광주에 올라갔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그 쓸쓸하고 외로웠던 광주 첫 입성의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시립니다.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고시원에서 살아야 하는 그 쓸쓸하고 외로운 날들. 혼자 광주에 올라가 학원도 알아보고 처음에는 정말 열정적으로 생활했습니다.

아침 일찍 학원에 가서 강의 듣고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공부하고 잠자고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못 갔습니다. 마음이 나태해지기 시작하면서 혼자 있는 게 너무 외롭고 밥도 해먹는 게 힘들고 강의도 몇 번 빠지고 하루에 혼자 하는 공부시간이 세 시간도 안 됐습니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마음이 도저히 잡아지지 않았습니다. 남들 독서실에 앉아 공부하는 주말에도 저는 부모님 뵈러 시골 간다고 내려가고, 눈 오면 눈 온다고 분위기 잡고, 비오면 비 온다고 분위기 잡고, 머리가 조금만 아프면 ‘나는 아프니까 쉬어도 돼’라며 저를 합리화 시켰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저를 제어하지 못했을까’후회가 됩니다. 하지만 그땐 정말 그게 잘 안됐습니다. 매일 저녁에 하루를 돌아보며 후회하면서도 다음날 되면 다시 제자리였습니다.

♣ 공부하며 지쳐가다

그렇게 종합반 2달 코스를 듣고 저는 전남 지방직 시험을 봤습니다. 첫 시험에서 저는 70점을 맞았습니다. 잘 나온 점수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만족을 했습니다. 영어점수 빼면 거의 80점대였으므로 2달 공부해서 이렇게 된 건 정말 대단하다고 저 혼자 엄청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학원에서 잡아주는 방향대로 심화반을 듣거나 종합반을 한 번 더 들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문제풀이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풀이는 쥐약입니다. 저는 그렇게 허공에 탑을 쌓고 있었습니다.

영어는 과락만 안 나오면 된다고 ‘대충 찍자’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4과목만 공부했습니다. 저의 잘못된 공부방법은 점점 수험기간을 늘려갔고 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돈은 점점 떨어져가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계속되는 불합격에 저는 죄를 짓는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은 차리지 못했습니다.

하루에 공부를 3시간도 안 한 거 같았습니다. 2005년, 2006년, 2007년은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던지, 정말 공무원을 많이 뽑았던 해 2008년도에도 저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를 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25살, 해놓은 게 없었습니다. 대학도 3학년 다니다 휴학했지, 합격도 못했지, 부모님께 큰소리 쳐놨는데 저는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2008년 초겨울, 찬바람이 불어오고 수험가에도 찬바람이 불어왔습니다. 2009년도 공무원 감축으로 뽑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숨이 너무 막혀왔습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불안함 때문에 잠을 못 잤습니다. 그때부터 아침에 6시도 안돼서 눈이 떠지고 그렇게 추운 겨울인데도 독서실로 매일 출근해서 스톱워치로 하루 9~10시간씩 찍으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은 정말 벼랑 끝으로 몰리면 안 할 수 없게 되구나’, ‘열심히 하게 되는구나’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동안 저한테 ‘겸손함과 절실함이 부족했구나’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2009년 4월 국가직 시험을 보기 전까지 매일 불안함과 절박함 속에서 살았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가 하면 그것 때문에 너무 불안해서 매일 울었습니다. 그때 누가 저에게 ‘넌 할 수 있어!’ 라는 이말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학원 상담실장님한테 달려가서 ‘저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매달려보기도 했고, 친한 친구한테 매일 전화해서 마음을 위로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절박하고 간절하게 2009년 5월 지방직 시험을 목표로 공부를 했습니다.

코앞에 4월 국가직 시험이 있었지만 5월 지방직 시험을 목표로 공부를 하니 왠지 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4월 국가직 시험을 보기 전까지 너무 문제풀이에만 매달리지 않고 기본서를 훑어보는 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 결전의 날

드디어 4월 국가직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평소대로 일찍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다른 시험 보러 가는 버스 안에서는 잠을 거의 못 잤었는데 4월 국가직 시험날에 아침 버스에서는 잠깐 동안이었지만 잠을 푹 잤습니다.

잠깐 자고 나니 머리가 참 개운해진 거 같았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시험장에 들어가 편하게 시험을 봤습니다. 왠지 느낌이 좋았습니다. 잘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거의 다 문제를 풀고 안 풀리는 문제 몇 개만 별표를 쳐놨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버스에 타서 집에 오는데 ‘나 이러다 한두 문제 틀리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하는데 가산점 포함해서 92점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그때 그 기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국가직 시험은 최종합격할 때까지 기간이 너무 길어 지쳤지만 어쨌든 합격을 했습니다. 최종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나의 길고 길었던 수험생활이 끝이 났습니다. 간절하게 바라고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중간 중간에 찾아오는 시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겨내고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 당부사항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1. 휴학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돌아갈 학교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태해질 수 있습니다.

2. 절박하고 간절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3. 영어를 꼭 정복해야 합니다. 영어만 일정 점수 이상 나온다면 합격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4.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은 절대 안 됩니다. 무조건 노력하면 됩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주문을 자꾸 심어줘야 합니다.

5. 경쟁률은 경쟁률일 뿐입니다. 경쟁률이 100대 1이라서 ‘난 안돼’가 아니라 내가 일정 점수 이상을 맞아주면 합격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공무원 수험생들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합격수기에 소개된 공부방법·교재 등은 글쓴이의 개인의견입니다.

자료제공:정책브리핑www.korea.kr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