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2)-창 밖을 보며
상태바
차근욱의 "Radio Bebop" (2)-창 밖을 보며
  • 차근욱
  • 승인 2014.07.09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주 깊은 바닷 속에 커다란 보물상자가 있어. 그 안에는 정말로 진귀하고 놀라운 무엇인가가 들어있지. 넌 그 보물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다고 생각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게 될 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맛있는 커피’다. 강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전국적으로 특강을 하러 갈 때가 종종 있어서 KTX나 고속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그 시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비결은 바로 맛있는 커피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니까.

원래 성격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차창에 스치는 풍경과 더불어 맛있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노라면, 후후후... 이건 그야말로 제법 근사하다. 뭐, 실 오스틴의 연주라도 듣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온 몸이 해파리처럼 나른해 지면서 ‘뭐, 아무렴 어때...’하는 기분까지 든다. 이거 이거,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이동 중에 잠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창밖의 풍경이 아까워 잠들지 못한다. 물끄러미 그 풍경을 바라보는 걸 ‘레알’ 진심으로 좋아하거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이동 시간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한 적도 있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 일상 때문에 1분 1초도 의미 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래서 이동 중에 원고를 쓴다던가, 원고의 교정을 본다던가, 강의 자료를 한번 더 검토한다던가, 아니면 독서를 한다던가하는 일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만 뒀다. 그런 시시한 일을 하기엔 창에 비치는 풍경을 보며 마시는 커피는 소름 돋을 만큼 행복하니까.

정신을 차려보면 대체로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긴 시간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이어폰을 꽃은 채 앉아있는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인가! 싶어 스스로 좀 의아한 구석도 있다. (사실, 별 생각 안하지만.)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한 번도 이동시간이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이었지.

단지 그 순간만은 스스로 힘을 빼고 차근욱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떠해야 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다운 나 자신으로.

누구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을 기해 살아간다. 수험생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고 선생님은 최고의 강의를 해야 한다. 물론, 그래야지. 기본을 지키며 본분에 충실한 인간만큼 가치 있는 존재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쓰고 버리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 자체가 목적인 거니까.

돌아보면 시험공부라는 것이 사람을 참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들 때가 있지 않나 싶다. 수험생활이란 것이 합격한 누군가와 비교당할 때도 있고, 공부 잘하는 누군가와 비교당할 때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럴 때면 자신이 참 못나고 후진 것만 같아, 속상해 마음을 다치기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뭐,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는 그 ‘시험공부’라는 단어가 ‘돈’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또 인생의 배신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그런 마음고생을 견뎌내야 하는 수험생활에서 마주할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의미일 게다. 수험생이든 합격생이든, 있는 그대로의 나다운 자기 자신.

애시당초 수험생활의 시작 동기란 것이 잘먹고 잘살아보자는,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이유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물론,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공직에 뜻을 두신 분들도 계시리라 믿는다.)

여튼 간에 자기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시작한 선택 때문에 스스로 불행해지고 있다면 이율배반 아닌가? 물론 옛 어른들 말씀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하셨으니 행복해지기 위해선 괴롭고 슬픈 것이야 당연한 것이야! 라고 믿고 계시다면 더 할 말은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도전하는 것이라면, 그 과정도 행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런데 그 과정이 괴롭고 스스로 불행할 뿐이라면,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길을 잘못 들었거나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왜 행복해지는 과정은 행복하면 안되는 거지? 꼭 불행해야만 행복해 질 수 있는거야? 정말? 진짜?

지금은 특강 차 타는 버스나 기차에서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학창시절에는 걸으면서 이런 답 없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었다. 뭐, 그 시절에는 화가 나도 걸었고 답답해도 걸었고 고민이 있어도 걸었으니까.

걷는 시간은 보통 2시간에서 4시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참 걷다보면 제법 지쳐서 의문이나 고민 따윈 배부른 소리같이 느껴져 바보 같지만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었다. 요컨대 살아가다보면 아무생각 없이 멍해질 때도 필요한 것이다.

학창시절에 했던 고민 중에 하나가 뭐 이런 거였다. 왜 학자가 되고자 하는 나는 공부가 괴로울까? 하는, 좀 당황스러운 의문이랄까.

그렇지 않겠어요? 피가 끓고 있는데. 책상에 앉아 심혈관계 질환으로 죽을 가능성을 계속 높여가는 것 보다야, 여행도 다니고 미팅도 하고 친구도 만나며 즐겁게 지내는 편이 백배는 행복할테니.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이란 밸런스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100% 불행하기만한 인생은 없는 것처럼 100% 행복하기만한 인생도 없는 법이니까. 중요한 것은 선택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겠지.

생각해 보니 공부를 한다고 그 기간 내내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의 기쁨도 분명 있었고, 목표량만큼의 성과를 일구었을 때의 성취감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수험은 결과인 걸. 그 부담 때문에 과정을 충분히 즐길 수 없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지.

사실 이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데, ‘이번 연재에서 이야기를 잘못 꺼낸 것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어 슬슬 불안해 지고 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하면서.

수험생활의 목표는 물론 합격이다. 강의할 때 늘 강조하는 것이 점수로 연결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잔소리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이 합격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합격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무엇이든 주객이 전도되면 괴롭기 마련이다.

간혹 시험의 결과나 과정으로 인해 방황하는 친구들을 볼 때가 있다. 목표한 결실을 얻지 못한 현실의 괴로움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거나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곤란하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일단 수험에 뜻을 두었다면 우선은 합격해야 한다.
하지만 합격을 위해, 맹목적인 수험생활만으로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합격해야 하기에, 더욱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좋다. 밸런스를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겠지만, 그 수험과정이 불행하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고요함도 필요하다. 가끔은 온 몸의 힘을 빼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진짜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돼 합격이라는 큰 그림이 완성될 테니까.
그렇게 자기 자신다워지는 순간을 맞이할 때, 합격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보다 선명하게 알 수 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보다 명확하게 보일 테니까. 지금의 고민이라는 것도, 사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어서 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행복이니까.

바다 속 보물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을 것 같냐는 물음에, 나는 ‘타임머신 기능이 있는 UFO’라고 대답했다. 이거, 혹시 사회부적응자로 판정되는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뭐, 그렇담 할 수 없지. 자, 여러분들께서는 이 보물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 것 같으신가요?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