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일본을 다녀오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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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일본을 다녀오고 나서
  • 신희섭
  • 승인 2014.06.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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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오키나와를 여행할 기회가 생겨서 다녀왔다. 일본에서도 남단에 있는 섬인 오키나와의 여행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몇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일본 본토와는 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고 미군기지가 주둔하고 있는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특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지만 이곳의 여행은 개인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전체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한국이 과연 국제무대에서 어디까지 성장하고 어떤 위치에 오르게 될지는 모른다. 지금보다 더 성장하면서 더 중요한 역할을 국제사회에서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은 몇 나라들을 배우고 이들을 뛰어 넘어야 한다. 그 중에 한국이 넘어야 할 국가에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 있다. 개인적인 짧은 여행이었지만 받은 교훈은 너무나 컸다. 개인적 교훈 몇 가지를 나누면서 일본에 대한 소감과 의미를 한 번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오키나와 여행을 통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사람들의 문화가 한국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 중에 만난 일본인들에게서 받은 인상이라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좀 더 일반화가 가능하겠지만 여향이라는 일상적인 부분에서 얻은 것이라 크게 잘못 된 정보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이가 났던 부분에서 첫 번째는 기다림의 문화이다. 일본인들을 보면서 느낀 가장 큰 부분은 기다리는 것에 대한 익숙함이다. 방문했던 리조트의 식당은 부지런한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일찍 식당에 갔는데도 40분을 기다리라고 지배인이 이야기 했다.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자리의 여유는 충분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지배인은 한 팀씩 입장을 시켰다. 그 사이에 나온 손님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리의 여유는 계속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보니 식당 안에는 자리가 있었는데 지배인은 식당이 수용하고 식사에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정도의 인원만을 받으면서 그 다음 팀을 조절하여 안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편안한 식사를 만들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몰리는 손님들을 모두 자리에 안내했다면 그 많은 인원들은 시장바닥과 같은 곳에서 아비규환을 이루었을 것이다.

기다리는 아침식사는 3일 동안 계속되었다. 리조트의 조식식당은 기다리라고 하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그저 일상화된 기다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과거에 다녀왔던 대부분의 여행지들은 식당에서 자리를 먼저 내주었다. 식당은 늦은 시간에 몰린 손님들로 혼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고 떠 밀려나온 식당들에서 식사한 기억은 지금 없지만 불쾌함은 지금도 남아있다. 기다리게 하는 것이 호텔의 전략일지 모르지만 이 과정에서 눈여겨보게 된 것은 기다리는 것을 사람들이 잘 참아낸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여행자의 느긋함일 수도 있지만 기다리는 것에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것은 확실히 무엇인가에 계속 쫓기듯이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지하철을 무리하게 뛰어내리는 사람들과 꺼져가는 신호등의 점멸등을 빨리 뛰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전력질주를 하는 사람들에 익숙한 입장에서 기다림을 요구하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두 번째로 인상적인 부분은 디테일의 문화이다. 일본인들이 원래 세밀한 것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자주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키나와에서 직접 접하면서 느낀 것은 생각이상이었다. 이것이 오키나와만의 특수한 것은 아니다. 마트에서 산 대부분의 물건이나 따로 방문한 음식점들에서 공통되게 느낀 것이었다. 마트에 가면 아주 세밀한 것 까지 챙기는 일본 상업정신을 볼 수 있었다. 하다못해 반창고 중에는 손톱부분을 덥기 위해서 만들어진 커버 형 밴드가 있었다. 또 찹쌀떡 선물상자 안에는 상자와 떡이 붙어서 안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떡을 자르라고 칼을 넣어놓기도 했다. 이러한 사소한 것들을 챙기는 것은 어쩌면 일본제품을 팔기 위한 일본인들의 상업적 정신인지 모른다. 하지만 디테일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은 일본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를 잘 반영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한 발 더 나간 생각으로 보인다. 모든 차이는 원론이 아닌 디테일에서 난다는 점에서 일본의 디테일에 대한 집중은 일본이 여전히 강력한 국가의 위치에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의 차이점이자 가장 놀라운 점은 사과를 하는 일본의 문화이다. 일본은 먼저 사과를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과거보다 조금 변화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이 이해하기 어려운 먼저 사과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1970년대에 일본 생활을 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일본의 지하철에서 여자가 힐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으면 밟힌 사람이 먼저 미안하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 밟은 사람입장에서는 더 미안하다고 하게 되고 두 사람은 큰 말다툼 없이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번 여행에서 직접 경험했다. 둘째 딸아이가 뛰다가 다른 일본 아이와 부딪쳐서 넘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먼저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 아이와 아이 부모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우리 가족은 연신 사과를 했고 경미한 사고는 큰 문제없이 마무리 되었다. 한국에서도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만 챙기지는 않지만 피해를 입고 먼저 사과를 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거나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일본이 가진 좁은 사회와 화합하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사회가 더 큰 갈등으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둔 듯했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으로 네 번째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좀 더 신뢰를 구축하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 여전히 급행료라는 것이 있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으면 먼저 우선권을 가지고 사회적 재화를 선취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윗선을 대고 누구 빽을 대면 유명한 종합병원에 입원실과 수술실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은 항상 다른 누군가 내 자리를 새치기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를 한다.

일본에서 방문한 음식점이나 시설들은 예약명부에 작성하고 그 명부 순대로 입장하게 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갑갑해서 물어보면 목록을 보여주고 지금 몇 번째 인지를 알려주었다. 작은 경험이지만 순서를 보여주는 이 행동으로 인해 늦어지는 것에 대해 항의할 방법은 없게 되었다. 누구나 순서를 따른 다면 그것에 불만을 제기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아무도 급행료를 내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추가비용은 발생하지 않는 법이고 나만 뒤로 처진다는 불안감도 줄어드는 법이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이 물론 일본의 본 모습만은 아닐 수도 있다. 일본인들은 ‘혼네(본심)’라고 해서 속마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같은 인간으로서 일본인들의 본심이 과연 인간본성에서 얼마나 다르겠는가?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일본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본인들은 일본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후대에 전수했을 것이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살아남으면서 사무라이들은 사무라이대로 평민들은 평민들대로 살아남는 법을 만들고 터득했을 것이다.

감정적으로 일본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냉철하게 일본이 운영하는 방식에서 배울 것들을 찾을 필요가 있다. 1970년대에 있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미쓰이라는 재벌회사의 대외 영업부장이 아버지 사망 후 장례식을 다 치르고 사표를 냈다고 한다. 그가 사표를 낸 것은 아버지가 하던 우동 집을 승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하던 일을 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기 때문에 이제 그 일을 하기 위해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재벌회사의 대외영업부장 자리를 포기하고 아무도 알아줄 것 같지 않은 작은 우동가게에서 우동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전통을 지키고 세밀한 것에 집중하려는 정신이 장인들을 만든다. 이런 장인들이 모여서 일본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일본은 하부구조에서 저력이 강력한 나라이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만들어 내는 일본인들이 1990년대 잃어버린 경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저력에 있다.

상징적으로 삼성이 소니를 넘어서고 쿠쿠 밥솥이 일본의 코끼리표 밥솥을 넘어선 현 시점의 한국은 더 많은 부분들에서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서 어떤 문화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고민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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