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행시 축소·폐지, 진단도 처방도 모두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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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행시 축소·폐지, 진단도 처방도 모두 잘못
  • 법률저널
  • 승인 2014.05.3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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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행시(5급 공채) 축소를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공직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민간 전문가 진입이 보다 용이하도록 5급 공채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5대 5의 수준으로 맞춰가고 궁극적으로는 과거 고시와 같이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행시를 통한 5급 공무원을 민간과 5대 5로 맞추겠다는 것은 관피아의 발원지를 도려내고 공직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나아가 일부 ‘기레기’(기자+쓰레기) 언론들도 행시 폐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포퓰리즘 언론’들은 물 만난 고기가 된 듯 근거가 빈약한 보도로 사실을 왜곡하며 가세하고 있다. 마치 행시 선발제도가 ‘공공의 적’이 된 듯 개혁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행시 축소 및 폐지론자들은 한국의 행정 거버넌스가 과거제도형(型)에서 서방형으로 가기 위해서는 행시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국가 발전을 위해 엘리트 인재의 획일적 선발의 필요성은 정부와 관료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경제개발 시대에는 적합한 제도였지만 지금처럼 다양성이 중요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민관 간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 새로운 인재가 항상 영입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이 공직사회를 활성화시키고 관피아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같은 진단과 해법은 결론부터 말하면 틀렸다. 관피아의 적폐(積弊)는 ‘제도’에서 기인하기 보다는 인간 ‘욕망’의 산물로 보는 게 옳다. 관피아는 공직자 선발 이후의 인사관리 문제, 특히 퇴직관료의 처우와 관련된 문제이지 현재의 행시 공개채용방식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민관 유착과 관료 부패 문제는 공무원 채용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엄격한 퇴직 관리에서 그 해법을 찾는 게 정상이다. 관피아 문제는 고위 관료들이 퇴직 후 과거 자신들이 감독하고 규제하던 민간 기업이나 협회에 재취업함으로써 정부 규제의 칼날을 무디게 하거나, 민간 기업과 협회에 유리한 법령과 정책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제도화되고 집단화된 관료 부패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5급 공채의 축소와 민간경력자 채용 확대 방안은 공직의 충원 경로를 다양화하고 개방성과 경쟁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유의미한 것이지만, 이른바 관피아 문제의 척결을 위한 대안으로써는 틀린 해법이다. 5급 공채 폐지론의 논리는 이런 관피아의 문제가 5급 공채에서 비롯된다는 것인데, 5급 공채 제도가 폐지되면 7급 공채 출신이나 민간경력자 출신 관피아가 새로 형성될 것은 자명하다. 관피아나 민관유착 관계가 생겨나는 것은 민간 기업이나 협회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부 규제를 없앰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관료 영입 전략과 퇴직 고위 관료들의 탐욕이 맞물려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민간경력자 채용 확대는 선례가 보여주듯이 ‘회전문 인사’로 오히려 지금의 관피아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정부는 또 5급 공채를 폐지하거나 대폭 줄이고 민간경력자를 채용하면 이번 세월호 사태에서 나타난 관료의 비전문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또한 근거가 박약한 낙관론일 뿐이다. 특별한 유인장치도 없는 마당에 유능한 민간전문가가 공직에 들어 올리는 만무하다. 자칫 민간전문가 채용 확대로 석ㆍ박사 자격을 얻은 소수의 계층만 혜택을 본다면 행정 불신이 더욱 가중되고 ‘피켓티(Thomas Piketty)’의 역풍이 불 것이다. 공직사회도 변화의 흐름에 따라 당연히 개혁되어야 하고 혁신되어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원인과 결과 그리고 이에 대한 처방간의 개연성과 합리성을 가져야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민간의 방식을 공직사회에 주입시킨다고 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은 포퓰리즘 대신 민관유착의 고리를 끊고 공직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이고 정교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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