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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저 인터뷰] 특허전쟁?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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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저 인터뷰] 특허전쟁?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 이아름 기자
  • 승인 2014.05.23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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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웃음에 한 번, 조리 있는 말솜씨에 또 한 번! 정우성 변리사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풍긴다. 그의 말 속에는 세상의 다양한 이면을 담은 논리들이 녹아 있다.

특허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요즘이지만, 특허전쟁의 저자인 정우성 변리사는 특허 보다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한민국이 특허출원 세계 5위 안에 들지만, 그 누구도 대한민국을 특허강국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를 꼬집는다. 특허 개수보다는 질 높은 특허, 이를 상용화하는 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문적이기만 한 특허서류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고객의 눈높이를 맞췄다. 영업 대신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정우성 변리사.

변리사로서의 본연의 업무를 가장 중요시 여기면서도, 비전문가이지만 부모의 마음을 담아 육아지침서를 펴낸 특출한 인물이다.
 

 

특허보다 경영이 중요!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이 이슈화 되면서 특허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됐다. 우리나라는 국제특허출원 세계 5위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특허강국이라는 평가를 듣지 못한다.

그 이유에 대해 정우성 변리사는 “특허출원 횟수가 아닌, 질 높은 특허를 사회에서 어떻게 상용화 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허를 아는 사람들은 결코 우리나라의 특허들이 질적으로 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업이든 연구조직, 대학이든 조직이 보유한 특허가 무엇인지 조직원들이 잘 모르고 있는데서 문제가 시작된다.

회사 내에 특허라는 지식이 있지만, 그 지식이 유통되지 않아 결국 특허는 페이퍼에 불과하게 된다.

“페이퍼에 불과한 특허”

2012년 구글이 모터롤라를 인수했을 때, 세간의 시선은 더욱 특허로 쏠렸다. 모터롤라가 보유하고 있던 특허 건수가 무려 1만 6천여건에 달했으니, 세상의 주목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정우성 변리사는 다른 이면을 강조했다. 모터롤라가 비록 수많은 특허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을 못했기 때문에 망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똑같은 현상을 두고도 판단을 달리한 것이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도 특허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국가와 기업이 특허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중성을 가진 특허. 권리를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양자를 동시에 고려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정우성 변리사는 강조한다.
 
특허권을 가진 권리자만 옹호했을 경우,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기업의 생태계가 건강하지 못하게 된다. 기술의 공유, 누구나 응용할 수 있는 영역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허란? 특허서류이다

정우성 변리사에게 특허란? 특허문서라고 정의된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변리사의 업이고, 이는 특허에 관해 모든 것을 글로 쓰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엉터리로 정리하면 그 아이디어도 엉터리로 전락해 버린다.

‘특허는 특정인에 대해 새로운 일정한 권리, 능력을 주거나…’로 특허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하면, 고객(특허권자)은 끝 모를 환상에 사로잡힌다.

 
아이디어를 독점할 수 있는 권리는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긴다. 게다가 많은 전문가들도 그 기세에 합세한다. 시쳇말로 특허 권리인은 ‘갑(甲)질’에 사로잡혀 협업 불가, 협상불가 입장을 고수하기 마련이다.

정우성 변리사는 “특허는 최소한의 수단이 돼야지, 특허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허는 협업을 배제하지만, 발전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협업을 추진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특허 자체가 결과가 돼서는 안된다”

특허의 본질을 잘 이용하려면 특허를 이용하는 사람의 역량이 중요하다. 그동안 특허 자체에 목적을 둬 왔다면 이제는 특허를 도구로 삼아 발전적인 그림을 그려야 할 때이다.

그래서 특허는 때때로 중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요치 않게 여겨야 한다. 기업은 자금과 투자, 시장, 신뢰, 역량 등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특허만 강조하다 보면 회사가 잘못된 비즈니스를 해 버려 회사의 존망이 달라지기도 한다.

특허를 바라보는 시선이 기술과 법리로만 고찰된 것이 이러한 문제를 양산한 이유 중 하나다. 특허에 기술과 권리 단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과 결합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놓치지 말아야한다.
 

실력으로 승부하자

정우성 변리사는 변리사시험 합격한 후, 고생이 굉장히 심했다고 한다. 2002년 변리사시험 합격 후 2003년 한 특허사무소에 취직했다. 수습기간 중에는 일을 배우는 입장이라 가장 먼저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무던히도 열심이었다.

몇 달 후에는 특허법인으로 이직했지만 일관되게 비슷한 일을 많이 하면서 ‘일을 너무 성실히 하다 보니 인생을 즐겁게 살지 못 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젖어들게 됐다. 게다가 이 무렵, 일본어학원에서 현재 아내와의 만남도 시작된 시점이어서 더욱 자유가 필요했다.

2004년 여름 갑작스럽게 개업을 했다.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했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개업이 필수였다.

그러나 모아둔 돈도 없고 고객도 없는 상태에서 개업을 했으니 사무실 운영이 어려운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지출은 많은데, 한 달 수입은 고작 20만원에 불과한 때도 있었다. 그래도 직원들의 월급은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아서라도 단 한 번 늦춘 적이 없었다.

“학연, 지연 등 갖가지 인맥을 동원하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해 보자”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영업 없이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결심이 굳세었다. 물론 처음에는 접대를 원하는 고객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정우성 변리사만의 업무 스타일을 고객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대신, 고객이 접대를 원할 때는 사주가 원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원하는 요구에 관해서는 일사천리로 해결해 줬던 것이 영업과 접대 없이 서로간의 신뢰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 됐다.

정우성 변리사는 “지금까지 고객에게 전문적인 능력과 일로 접근해 왔다”며 “접대를 하면 제 인생 스타일도 구기고, 돈도 제값을 못 받게 된다”고 말했다.

실력으로 보여주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변리사는 고객의 대리인으로서 지시를 받고 일을 하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전문적이고 복잡한 분야라 고객이 온전히 이해를 하고 지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비스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느 날, 정우성 변리사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면서 종래의 것과 다른, 고객을 감동시키는 서비스를 받고 서비스의 본질에 대해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고 한다.

고객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감동시켜줄 서비스는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특허서류의 차별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제 특허서류는 정말 쉽습니다. 즉, 고객이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특허는 전문적이고 난해한 것이라고만 받아들이던 고객들이 그가 쓴 특허서류를 보고 내용을 직접 이해하고,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뜻을 밝혔다.
 

최소규모 ‘1인 사무소’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정우성 변리사는 강남에서 6년째 사무실을 운영하다 피할 수 없는 풍파를 맞이한다. 정 변리사의 특허사무소는 4~5명의 직원을 거느린 소규모였지만, 같은 건물에 있는 다른 특허사무소는 모 대기업의 일을 맡아 하면서 나날이 규모를 확장해 나갔다.

자신들의 사무실 확장을 위해 정 변리사의 사무소를 빼던가, 자신들이 이전하겠다고 건물주에게 으름장을 놓았던 것. 같은 업종끼리 지켜져야 하는 상도덕이 무참히 짓밟혔지만, 인테리어마저 원상복구를 해 놓고 사무실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남생활을 청산하고 판교에 새롭게 들어선 타운하우스에 입주했다. 방 5개 중, 2개는 사무실로 나머지는 집으로 사용했다. 그동안 강남으로 출근하던 직원들은 사무실이 판교로 이전되면서 하나둘씩 떠나 결국 정우성 변리사 혼자만 남아, ‘1인 사무소’를 열게 됐다.

상황이 이러니 자신의 업무는 물론 관리직 직원이 하는 모든 업무를 혼자 도맡을 수밖에! 어찌 보면 체면을 구기는 인생 최대 ‘위기’었지만 오히려 그의 인생은 이를 계기로 풍요로워졌다. 이때가 2010년 가을 무렵이었다.

“관리업무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이다”

자연스럽게 관리직 업무를 하게 되면서 업무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합리적으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갔다. 더불어 생긴 이점은 관리직 업무를 꿰뚫고 있기 때문에 직원 채용시, 다양한 인력풀에서 유능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무실과 집을 겸하면서,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농밀해졌다. 도로에서 버리는 출․퇴근 시간과 퇴근 후 술자리 등을 가지지 않으니 시간적인 여유가 늘어났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가족과의 거리는 밀접해졌다.

업무와 가정의 일이 명확하게 분류돼 있지 않았지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는 오후 4~5시경은 정 변리사의 공식 퇴근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있는 시간에는 일을 할 수 없어, 새벽 3~4시에 일어나 업무를 처리하고 저서를 쓰곤 했다.

“2년 반 정도의 재택근무, 시간이 농밀해 졌다”

특히 이 기간 동안 변리사 업무에서 요구되는 정확, 신속이라는 강박관념을 버릴 수 있었다. 1인 시스템 하에 기존의 신속, 정확성을 충족시키기에도 역부족이었지만 여유를 가지면서 고객에게 더 헌신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특허전쟁, 나는 아빠다 등 3권의 책 저술”

 
당시, 책도 3권이나 저술했다. 2010년 펴낸 ‘특허전쟁’은 특허의 중요성이 부각되던 시점에 일반인들이 어렵지 않게 특허에 관해 이해 할 수 있도록 사례를 모아 풀이한 책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알아야 하는 점, 특히 대기업 중심이 아닌 중소기업 정도의 능력이 있는 독자층을 상대로 저술했다. 이 책은 각종 매스컴과 독자, 변리사업계에서도 신선하면서도 좋은 평가를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발간한 ‘세상을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는 2012년 문화체육부 우수 교양서적으로 꼽히기도 했고, 육아 비전문가로서 펴낸 ‘나는 아빠다’는 2013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이 추천하는 휴가철 읽기 좋은 책으로 선정됐다.

너무나도 많은 육아전문서적들이 일반 부모에게 슈퍼맨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저술한 책으로, 다음 달 부터는 한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육아이야기를 펼쳐 나가게 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직설적으로 말해 한 번 망해보고 이룬 일이다. 어수선한 욕망을 버리고, 판교를 갔더니 오히려 소중한 경험들로 인생을 채울 수가 있게 된 것.

변리사 상당수가 어느 정도 연차가 차면, 미국로스쿨을 수료하고 미국변호사가 되거나 MBA과정, 아니면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등 소위 대단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넓은 세계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의 발현이자, 명예욕도 크기 때문이다. 정 변리사가 망하고 나서 깨달은 것은 넓은 세계는 바로 내 옆에 있는 것이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긍정적인 마음, 슬럼프 없는 수험

정우성 변리사가 기억하는 수험기간은 금전적인 어려움을 빼면,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오히려 낙천적인 마음으로 즐기면서 공부를 했기에 단 한 번의 슬럼프도 겪지 않았다.

1998년 겨울 군 제대 후 정우성 변리사가 마주한 세상은 예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상위권 대학만 나와도 성적이나 스펙 없이 대기업 취직은 무사안일이던 시대는 가고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과 교수님의 취직추천서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하지만 친한 후배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그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시험이 없을까?”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에 발걸음 한 정우성 변리사는 유독 변리사시험 합격수기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시험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것.

정우성 변리사가 중학교에 입학했던 때, 그는 가족 중 가장 현자의 위치에 섰다. 몹시 가난했던 집안 사정 탓이 컸다. 조금 더 배운 사람이 더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생계를 책임지면서 수험을 함께 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았다.

 
1999년도 10월경 고등학교 학원 강사와 과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시험공부를 시작했지만, 계획에 없던 낭패를 당하고 만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지고 만 것이다. 가방에 든 무거운 수험서가 더 큰 화를 불러왔다.

시험공부를 시작한지 채 한 달이 지났던가, 1999년 가을 그는 허벅지 뼈가 3조각이 나는 큰 사고를 당해 병원신세를 면치 못했고, 퇴원을 하니 해가 바뀌어 있었다. 시험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 그해 시험 불합격은 예고돼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불운’의 기운을 떨쳐 내고 다시 시험공부를 시작해 그 다음해 1차에 합격했다. 인생에 있어 최대로 공부를 했다고 자신했던 그는 2차시험에서도 ‘합격’을 예감했다고 한다.

“내 인생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견문이 부족하다”

2차시험을 치른 후 수험서를 모아 라면박스 안에 넣고 봉한 후, 그는 한 달 반가량의 일정으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비행기 표는 12개월 할부로 마련했다.

그렇게 인생을 살찌우는 여행길 동안 마냥 행복한 순간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PC방에서 확인한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과락으로 불합격을 하고만 그는 그해 12월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다시 시작한 시험공부. 자신의 문제점과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재점검한 결과, 인간 복사기에 버금가는 능력자에 비해 암기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과감히 암기를 포기했다. 암기를 포기하니, 통설이 아닌 소수설도 접하게 됐다.

여러 번의 회독 등 반복학습을 통해 예상한 문제에서는 70% 이상의 답안을, 예상치 못한 문제에서도 60% 이상의 답안을 적어 낼 수 있는 실력을 만들고자 했다. 돌출문제에 좌지우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과락의 아픔이 한 번 있었던 그에겐 고득점보다는 과락 없음으로 목표가 설정됐다. 시험 날 긴장하지 않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예상치 못한 문제에서도 당황하지 않게 돼 차분히 답안을 적어갈 수 있는 강점이 된다는 분석이었다.

정우성 변리사의 전공은 전자공학이지만 2차 선택과목에서 자신의 전공과목 대신, 행정법을 선택했다. 법은 고득점은 불가능하지만 기본이 있으면 과락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공과목을 선택하면 전공에서는 고득점을 노릴 수 있겠지만 다른 과목에서 과락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필수과목 중 민사소송법이 가장 어려운 반면, 가장 재밌었던 과목으로 꼽았다. 여러 교수들의 책을 보면서 똑같은 한 사건에 대해서도 다르게 얘기하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고 한다. 해석의 다양성을 즐겼던 것이다.

2002년 2차시험에서는 합격은 물론, 마치 수석이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또 12개월 할부로 비행기표를 마련해 이번엔 동남아 여행을 떠났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사아, 베트남, 태국 등 배낭여행 중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행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한국조폭을 만나 어쩔 수 없이 일찍 귀국했다고.

“공부에만 미치면 부작용이 있기 마련”

각종 고시 수험가에는 ‘능력자’들이 많다.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급 슬럼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우성 변리사는 수험시절, 가급적이면 변리사시험 공부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무리 속에서 공부를 했다. 공부 전에 시집 한 편 정도를 읽거나 자작시를 쓰는 것으로 시동을 걸었다. 다른 사람에게 휘말리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물론 사력을 다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수험기간이란 결코 짧지 않고, 그 기간을 잘 견뎌 나가려면 ‘여유’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합격 후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오만은 버리고, 새로운 출발이라는 관점에서 합격의 기쁨을 즐길 수 있길!

이아름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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