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변론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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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변론갱신
  • 위지현
  • 승인 2014.04.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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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법원 인사이동으로 담당 판사가 변경되었습니다. 변론을 갱신합니다. 사건 기록을 살펴보니 종전의 변론내용이 이러이러한데 어떤가요, 맞습니까? 혹시 이외에 종전의 변론내용에 대해 진술하실 내용이 있으신가요?”

2월 말 인사이동을 하는 법원에서 3월은 민사재판에서 변론갱신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달이다(형사재판에서는 공판절차의 갱신이 이루어진다). ‘변론의 갱신’은 법관이 바뀐 경우에 변론을 진행시키기 위해 당사자에게 종전의 변론결과를 진술시키는 것을 말한다. 변론갱신 절차 없이 변론을 종결하여 판결하면 위법한 판결이 되므로, 판사들은 사무가 바뀐 직후인 3월에 재판을 진행하면서 전임 판사가 이미 변론을 진행하였던 사건의 변론을 모두 갱신한다.

이렇듯 변론갱신은 판사들이 소송법상 반드시 유념하여야 하는 절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묘한 긴장과 탐색의 시간이기도 하다. 새로운 재판부로 옮겨 간 판사는 우선 전임 판사가 지정해 둔 재판일정에 따라 해당 사건의 내용과 진행 정도를 파악하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 중에는 재판이 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건들도 있지만, 이미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건들도 있다. 판사들은 재판에 앞서 재판기록을 살펴보면서 해당 사건의 쟁점과 양측의 법률적 주장, 사실관계, 입증 정도 등 법리적 판단을 위한 요소를 중점적으로 검토하지만, 부수적으로 전임 판사와 당사자들 사이에 재판 중 오고 갔을 이야기, 재판의 전반적인 분위기, 당사자들이 재판에 임하는 태도 등을 추측하거나 짐작해보기도 한다. 특히 재판이 시작된 지 오래된 사건일수록 상상력은 더욱 발휘되곤 한다.

판사의 거듭된 주장 정리 및 입증 촉구에도 불구하고 준비서면의 내용이 법률적 주장에 집중되지 못하고 상대방을 헐뜯거나 인신공격하는 데 치우쳐 있는 사건을 보면서는 그 당사자의 감정이 얼마나 격앙되어 있을지, 또한 그 상대방은 얼마나 큰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것인지를 짐작해본다. 소송 초기에는 분명하지 않던 쟁점이 소송이 진행되면서 점차 명료하게 정리되고 드러나는 사건을 보면서는 전임 판사가 재판을 진행하면서 쟁점 정리를 위해 어떤 고민을 했고 그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당사자들에게 어떤 설명을 하였을지 떠올려본다. 오래된 사건의 경우 재판 진행을 지연시킨 요소가 무엇이었는지, 또한 당사자들은 현재 그러한 재판 진행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는 상황일지 혹은 심리적으로 지쳐있는 상황일지 등등을 다각도로 추측해본다. 전임 판사와 당사자들 사이에 재판과정에서 나누었을 이야기를 완전하게 알 길은 없다. 다만 판단의 기초가 되는 재판기록에 의존하여 이전의 재판과정을 머리 속으로 복기해 볼 뿐이다.

재판기록에 의존하여 과거의 재판을 복기해보고 이러저러한 의문과 질문을 품은 채 법정에 들어서면 법대에 다가가 착석하는 판사를 이리저리 살피는 당사자들의 눈길이 느껴진다. 긴장과 탐색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판사는 자신이 담당하게 된 사건의 당사자들을, 당사자들은 자신의 사건을 맡게 된 판사를 살핀다. 사건번호를 부르고 이에 따라 원, 피고석에 들어서는 당사자들은 내가 상상한 모습과 일치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르기도 하다. 한명씩 대면하면서 나의 긴장과 탐색의 시간은 흘러간다.

당사자들은 어떨까? 법원 내부의 인사이동으로 법관들의 사무분담이 일정 시기에 변경되는 것을 특이하게 여기지는 않겠지만, 새로 재판을 맡게 된 판사가 기존에 진행된 재판의 과정을 과연 얼마나 소상히 파악하고 있을지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의구심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본능적으로 당사자들은 재판 중간에 새로 바뀌어 온 판사에게 과거 진행됐던 변론과정을 보다 소상하게 전달하고 싶어할 것이다. 또한 판사가 지금까지 제출한 준비서면과 증거자료를 과연 자신들이 바라는 만큼 잘 파악하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혹시 모를 불안감에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싶은 욕구를 분명 느낄 것이다.

변론갱신절차는 그러한 당연한 욕구를 가질 당사자들로 하여금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거나 증거를 중복 제출하는 등 불필요하게 시간이나 노력을 낭비하지 않고도 안정감을 가지고 연속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재판의 중간에 투입된 판사가 재판을 연속하여 진행할 만큼 기존의 재판과정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지녔다는 점을 당사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당사자들에게 절차적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 판사로부터 이러한 점을 확인한 당사자들만이 얼굴에서 굳은 긴장과 탐색의 표정을 지울 수 있지 않을까.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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