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저인터뷰] 변호사 개업이야기 ‘발로 뛰는 변호사 고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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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저인터뷰] 변호사 개업이야기 ‘발로 뛰는 변호사 고윤기’
  • 이아름 기자
  • 승인 2014.04.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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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고윤기 변호사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변호사가 처음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고군분투하던 장면이 오버랩 된다. 개업 후 사건 수임이 전혀 없자, 직접 발로 뛰기로 한 것. 명함 들고 옆 동네 부동산을 다니면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얼마 후 ‘명도소송’ 몇 건을 수임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시민들이 법률정보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제작한 법률만화는 자연스럽게 홍보역할도 톡톡히 하게 됐다. 실제로 법률만화를 보고 변호사를 찾아오는 건수가 점차 늘어났던 것. 개업 1년 후 혼자 시작했던 사무실을 현재는 3층까지 확장해 연수원 동기 변호사들과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정말 ‘발로 뛰는 변호사’, ‘변화를 두려워 않는 변호사’, ‘끊임없이 도전하는 변호사’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2차 불합격 후…다시 1차 시험부터

고윤기 변호사는 독문학을 전공하면서 우연히 듣게 된 법학과 수업, 구체적으로 민법총칙을 접하고 나서 ‘법 공부를 좀 더 해 봐야 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졸업을 앞두고 설렁설렁 초읽기에 들어갔던 법학 공부는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때가 1999년이었다. 1년을 공부하고 1차에 당당히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서 거듭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불합격의 고통이 끝이 아니었다. 2차 재시까지 떨어지자, 어쩔 수 없이 다시 1차 시험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 1차는 가뿐히 ‘합격’ 커트라인을 넘길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빗나갔다.

“자만했던 것이 시험 불합격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법학 기초도 부족했고요.”

연거푸 1차 시험의 벽조차 넘지 못할 때, 고시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불안감’에 괴로워했다. 2차 불합격과는 달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1차 시험에서의 패배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그에게 안겨 줬다. 시험 불합격 소식을 전해 듣고 고등학교 은사님과 술 한 잔 기울이는데, 은사님의 “언젠가는 때가 올 것이다”라는 말씀이 그를 독려했다. 그 말은 지금도 고 변호사의 가슴에 잔잔히 남아있다.

2007년 2차 시험을 치르고 나온 순간, 당시 고 변호사는 합격을 예감했다.
계속된 시험 불합격에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노력했다. 글씨체 연습이 첫 단계였다. 위에서 아래로 줄긋는 것만 3달했더니 날려 써도 알아 볼 수 있는 글씨체가 완성됐다. 그 때문에 답안지 작성 시간을 20% 정도 단축시킬 수 있었다.

다음은 서브노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먼저 자신이 시험에서 할 말들을 정리한 후, 벤치마킹을 해서 답안지를 수정, 보완해 나갔다. 수기로 하기에는 작업 분량이 방대해 모두 타이핑을 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2차 시험은 지금 현업에서 서면을 쓰고, 자료들을 분석, 판단하는데 기초가 됐던 시험이었던 같아요. 이때 분량을 늘리고 줄이는 작업이 현재 서면을 쓰고 칼럼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됐죠.”

고윤기 변호사의 ‘법률만화’

고윤기 변호사에게 법률만화는 이미 그 자체이다. 법률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고윤기 변호사를 대변한다. 그가 글을 쓰면 만화가 ‘고소한 고래밥’이 그림을 그려 법률만화가 만들어 진다. 고소한 고래밥은 피터 몬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웹툰에 ‘잉어왕’을 연재하는 웹툰 작가인데, 이제는 고 변호사와 형, 동생이라고 부르는 막역한 사이가 됐다.

“처음에는 형편없었어요. 그런데 1년, 2년 지나면서 저 자신은 물론, 고소한 고래밥, 그리고 법률만화도 함께 성장하게 됐어요.”

법률만화가 탄생하게 된 것은 사무실 개업 후 수임은 안 되고, 이를 타개할 방법으로 고안해 냈던 것이다. 홈페이지에 만화를 게재하니 반응도 좋고, 포털 사이트에 따로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검색 노출이 많이 됐다. 불법으로 퍼가도 출처만 밝히면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어떤 때는 그의 홈페이지 조회 수 보다, 그렇게 불법으로 퍼 간 블러그나 카페의 조회가 더 많이 이뤄지기도 했다.

 

법률만화의 소재는 주로 사회적인 이슈나, 수임한 사건을 각색, 중요 판례 같은 것들이 된다.

“이 법률만화를 하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됐어요. 사건 맡은 것, 시사적인 것, 공부해 보고 싶은 분야에서 찾아서 글을 쓰기 때문이죠”

법률만화 칼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공부를 해야만 했기에 그의 실력도 자연히 쌓여가는 구조가 됐다. 사건의 쟁점을 찾아 어떻게 하면 재밌게 구성할 수 있을까, 또는 억울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내 글로 표현하는 작업은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변호사들의 고유 언어는 배제하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나가는 작업도 만만치는 않았다. 처음에는 법률만화를 연재하는 잡지사에서 어렵게 쓴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고치고, 또 고치면서 쉽게 쓰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고 변호사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됐다. 실제 법률만화를 보고 고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이 생겨났다.

강원도 농촌에서 농한기에 도박을 하다 도박 빚을 지게 된 한 농부가 고 변호사를 찾아왔다. 돈을 잃고 제기한 소송 1심은 이미 망쳐 버렸고, 법률만화를 보고 고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이 의뢰인이 돈을 잃을 때마다 함께 도박을 한 피고 A씨는 거액의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의뢰인인 원고는 도박 빚에 대해 피고 A씨에게 근저당을 설정해 준 것이다. 원고는 이 근저당에 대해 말소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핵심은 원고와 같이 도박을 했던 사람의 증언이 여러 차례 번복돼 신뢰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2심 재판부에서 증거방법을 엄격히 제한함에 따라 증인들을 일부만 다시 소환해 증언했지만 1심과는 다른 증언이 나왔으나, 증인의 증언이 이미 신빙성을 잃은 상태여서 판결의 결론을 바꾸지는 못했다. 1심 때, 법률전문가가 아닌 자가 사실상 소송을 수행하면서 벌어진 일이라 2심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었다. 그래도 의뢰인은 최선을 다해줘 고맙다며 직접농사 지은 쌀도 보내주셨던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목요일이 마감 날인데...만화가 늦게 오는 날이 있고...피 말리는 시간이 된다"

최근에는 출판 제의가 들어와 책도 발간될 예정이다. 3년 동안 매주, 총 잡지에 실린 것만 100편, 비공개 기고까지 합치면 120~130편 정도가 된다. 매주 목요일이면 마감에 쫓기기도 하고, 바쁜 와중에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2011년 7월 개업하고 9월에 시작한 법률만화가 지금은 고윤기 변호사이며, 저 만화 자체가 고윤기 변호사의 캐릭터가 됐다.

수임 없자 부동산 들어가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2010년도 2월 연수원을 졸업한 고윤기 변호사는 한 회사에 고용변호사로 취업했다. 그런데 재직 중 사무실이 어려워져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달 정도 휴식 기간을 가지면서 개업을 준비하게 됐다. 사무실 보증금과 임대료는 어떻게 마련을 했는데, 인테리어 비용까지는 생각 못한 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사무실 집기며 가구, 벽지, 문까지 모두 그가 발품을 팔아 마련해 나가기 시작했다. 고가의 가구 가격에 놀란 그는 조금이라도 저렴하고 괜찮은 가구를 구입하기 위해 가구 공장이며 사당동 가구골목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간판도 직접 해서 달았다. 그 결과 인테리어 전문업체를 통했을 때 보다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1000만원까지 경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직접 인테리어를 한 2층 사무실은 전문가의 솜씨 보다는 볼품이 없어도 더욱 애착이 가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막상 사무실을 개업했는데도 찾아오는 의뢰인이 없자, 고윤기 변호사는 사무실 한 정거장 옆 성수동으로 향했다. 성수동에는 공장이 많은데 사장들을 모두 만나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돌아 설려는데 그 때 눈에 들어온 부동산으로 발길을 향했다.

“저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커피 한 잔을 청하면서 명함을 내밀었고 부동산 중개업자들과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건물이나 땅을 매입하러 온 손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막상 다가가니 생각보다 그를 반겨 주었던 것. 여러 군데 부동산을 돌고 나니, 속이 쓰려왔다. 커피 한잔이 여러 잔이 되니 그럴 수밖에! 며칠 후 부동산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명도소송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포문을 열 수 있었다. 고 변호사 曰 “국선 변호사도 해보고 시간 있을 때는 칼럼도 쓰고, 모임 있는 데는 다 나가보고 했는데, 그 중에서 발품을 팔았던 것이 가장 큰 힘이 됐고, 지금도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인맥관리의 중요성

제주도는 고윤기 변호사의 아버지 고향이자, 그와도 연이 깊은 곳이다. 제주도에 있는 미용실만 1천 100개 정도. 그는 제주지역 (사)대한미용사회 고문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제주도에 있는 변호사의 수가 불과 몇 십 명 수준에 불과한 까닭도 있지만 수임 보다는 친절한 상담에 무게가 실렸다. 미용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 큰 것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법률 분쟁에 관해 물어 보고 싶을 때, 편하게 전화해서 물어 볼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미용협회 고문변호사로 뷰티박람회에 초청을 받아 부스를 열고 상담은 물론, 미용인을 위한 법률이야기라는 소책자도 만들어 배포했다.

한 번 맺은 인연 어떻게 관리하고, 이어오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언뜻 봐서는 미용이나 에스테틱, 뷰티 등의 분야는 변호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그는 뷰티산업과 법을 연계해 전문분야로 구축해 나아가고 있다. 최근 고윤기 변호사는 뷰티 관련 잡지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 전 홈쇼핑에서 기적의 크림으로 불리던 화장품이 스테로이드 덩어리로 밝혀지면서 홍역을 앓은 바 있다. 이 때 화장품의 부작용, 그리고 책임 여하 등을 가르는 화장품법이 주목받았고, 법률전문가의 필요성도 함께 대두됐던 것.

고 변호사가 들어가 본 뷰티산업의 숙원은 뷰티산업 기본법을 만들어 규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하나의 전문 영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현재 그는 뷰티산업에 종사하는 원장들을 상대로 교육을 진행하면서, 뷰티산업과 관련이 깊은 의료영역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갈 구상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 변호사가 의전원에 진학 중이라 의사고시를 치고 나오면 확실한 전문성까지 보태진다는 계산이다.

고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계속 확장해 나가는 분위기로 이끌고 있다. 한 사건에 2~3명 정도 투입이 돼 사건에 대해 상의하다 보면 실수 확률은 낮아지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는 동료 변호사들과 항상 소통하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배출해 낸다. 동료 변호사들과 사이가 좋으니, 따라오는 시너지 효과도 크다.

지난해 다르고 올해 다르게 ‘성장’

고윤기 변호사가 개업 당시 고군분투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사법연수원에서 예비법조인을 대상으로 개업 스킬을 강의하게 됐다. 한 번의 특강이지만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될 이들에겐 의미 있는 시간으로 다가갔다.
 

 

고 변호사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가능성 있는 것들에 대해 판을 벌이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월급날이 되면 회사 사람들을 자신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무한한 책임의식이 샘솟아 난다는 것. 총 5명의 변호사가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함께 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분야로 외연을 넓혀 나가고 있다. 홈페이지 개편, 자체 강의 계획에 이어 법률 팟캐스트 방송도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법률만화가 그랬듯이 처음에는 어설프고 모자란 면도 많겠지만 점점 노하우가 쌓여간다면 꽤 괜찮은 모양새를 갖춰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당연히 가족이지만 일도 소중하다.

“사무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 쪽 분야에서 저 자신은 지난해 다르고 올해 다릅니다.”

2017년이면 그의 사무실과 인접한 동부지방법원이 이사를 간다. 그때가 되면 또 다른 판이 형성될 것이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서울변호사회에 들어 와서 사업이사를 맡으면서도 많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사업이사라고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이 아닌 공익을 위해 일 하는 것이다. 중소기업 법률자문에서부터 변호사 명예교사 활동 등을 지원한다.

변호사 명예교사는 초․중․고교에 명예교사로 들어가서 학교의 분쟁조정에서부터 직업체험교육 및 학교폭력예방 강의 등을 진행한다. 고 변호사는 이 같은 활동에 분명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보람이 크다고 밝혔다. 나아가 변호사로서 외연을 넓혀 나가는 일이자, 결국 끝에 가면 수임과 명성에도 도움 될 것이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영세한 중소기업과 변호사가 1:1 매칭해 법률자문을 하는 활동도 한다. 당장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 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활동에 가깝다. 고 변호사는 임기까지 중소기업 자문을 보다 활성화 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한편 고 변호사는 지금의 변호사는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닌 하나의 직업일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더욱 불거진 로스쿨 문제와 사시존치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지금 로스쿨이 사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태어나게 됐지만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당장 폐지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단, 로스쿨이 안정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사시가 존치 돼야 한다고 전했다. 법조인 양성 제도가 투 트랙을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변호사시험 합격률에 대해서도 변호사가 의사처럼 생명을 다루는 직업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뽑아 달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운전면허시험 보다 합격률이 높은 것이 말이 되겠냐는 것이다. 이원화가 돼 서로 자극을 주면서 같이 발전해서 나아가길 바랐다. 또한 로스쿨의 교수들도 실무교원들로 채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법제사나 법철학 같은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법학부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 의대, 의전원 모두 의사가 가르치고 있듯이 로스쿨도 실무 교육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아름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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