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예외, 공정사회의 룰(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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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예외, 공정사회의 룰(rule)
  • 박상흠
  • 승인 2014.03.24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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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흠 변호사 법무법인 태양, 울산지방변호사회
 

얼마 전 러시아에서 개최한 소치올림픽은 예술올림픽을 연상시킬 정도로 개막식에 각국 선수들이 얼굴을 드러내기 전 자국민의 예술적 위상을 드높인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음악, 미술, 문학인 등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혼불을 불어넣은 이들을 등장시키면서 시작한 소치올림픽은 오륜기 가운데 우측 상단 세 번째 점등이 꺼진 나머지 각국 매스컴으로부터 지적대상이 되었다. 한편 오륜기 속에 켜지지 않은 불꽃은 아메리카 지역을 상징하기에 최근 미국과 외교적 대치상황에 있는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꺼버리지 않았는가하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되곤 하였다.

그런데 더욱 거센 논란을 일으킨 것은 균형감각을 상실한 심판들의 판정이었다. 꺼져버린 오륜기의 불꽃처럼 심판들의 판정은 한쪽으로 기울어져버리고 특별히 홈경기를 치르는 러시아에게 편중된 판정은 전 세계인들을 실망시켰다. 특별히 새벽을 깨우며 온 국민이 초긴장 속에 응원했던 김연아 선수의 완벽한 프리스케이팅을 평가절하한 심판진들의 평가는 러시아선수를 우승자로 내정하기 위한 사전각본이 아니었느나 라는 의구심마저 갖게 하였다.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본 후 우승을 예상하던 미국, 유럽 방송의 해설자들도 러시아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준 것에 적잖이 당황하였고 심지어 외신들은 Home Ice Advatage, Home Cooking 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심판의 불공정성에 비판을 가하였다.

개막식에 예술올림픽으로 팡파르를 울리고 각종 예술 행사로 폐막식을 마감했던 수치 올림픽은 정작 예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피겨스케이트경기에서는 예술성보다는 러시아인들의 애국심에 손을 들어 준 셈이다. 불공정한 심판의 판단이 예술성을 살해한 것이다. 그런데 비단 스포츠경기에서만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심판들의 공정한 판단이 사라질 때 진정한 우승자가 실종되는 것처럼, 고장 난 법과 재판이 사회도처에 손을 뻗기 시작하면 악의 꽃이 만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의 경기결과는 필자가 4년 전 칼 슈미트(Carl Schmitt) 정치신학의 한 대목을 이해할 수 있는 독해법을 제공하였다. “원칙은 예외이고 예외는 원칙이다. 예외를 잘 이해하는 것은 원칙을 해석하는 출발이다.” 원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현상을 지배하는 있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예외이며 원칙은 단지 예외의 부속품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어법들이 통용되는 것을 보면 약간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맥이 있어야 그 회사에 취직할 수 있어!” “로비를 해야 사업권을 얻을 수 있어!” “힘의 논리가 작용했군!” “국제질서는 패권의 경쟁에서 승리한 나라가 지배할 뿐 도덕성은 크게 작용하지 못해” 등과 같이 원칙은 이상적이므로 예외가 되고 예외는 현실적이므로 원칙이 되는 것과 같이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법조계는 어떤가? “고액의 변호사를 수임해야 승소할 수 있어!” “판사와 변호사의 친분도에 따라 판결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상식이야!”라는 언급을 듣는 것은 희귀한 일일까?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각종 파벌 예컨대 학연과 지연, 성 그리고 종교 등의 인맥관계에 따라 승자가 결정되는 일은 예외적인 일인가? 아니면 모든 현상을 공식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원칙과 예외가 뒤죽박죽 혼동된 상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아무래도 각종 통계치를 보면 한국인들의 인식은 예외가 원칙이고 원칙이 예외라는 사실에 기울어져 있는 것 같아 한국사회는 불공정이 가득한 곳이라는 불편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예외가 원칙으로 고착화되어 버린 사회는 선수들 중 단 한명을 행복하게 할 뿐 나머지 선수들은 절망의 나락에 떨어뜨린다. 사실 그 한명의 선수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다른 선수들이 그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외가 원칙이라고 묵시적인 승인을 하는 우리들은 이러한 현상을 방관하고 말아야 할 것인가? 아니다. 원칙을 예외로 받아들이는 험난한 파고속의 세상 속에서 묵묵히 원칙을 지켜나가는 예외적인 단한명의 인물이 하나 둘씩 일어날 때 오륜기 속의 꺼져버린 불빛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오늘의 인류를 아직까지 지탱하고 있는 힘은 “아직 촛불을 끄지 않을 때”라는 소박한 믿음 속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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