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사재판에서의 정의(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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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사재판에서의 정의(正義)
  • 고권홍
  • 승인 2014.03.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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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홍 광주지방법원 판사,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재판에서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국민들은 법원이 재판을 통하여 정의를 밝혀주기를 바라고 있다. 민사재판에서의 ‘정의’란 사전적 의미를 논외로 하고, 재판에 투영된 의미를 고려해 짧게 표현해 보자면 양 당사자 사이에 주장 및 입증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함으로써 공정한 절차를 통하여 증거에 입각한 결론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필자는 지난달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사단독 재판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사재판에 국한하여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민사재판에서 당사자들 사이의 ‘진실’은 사건을 실제로 경험한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주장은 기본적인 내용을 제외하고는 중요한 쟁점에서 서로 상반된다. 당사자 사이에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재판까지 오게 된 것을 보면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당사자들은 재판에서 각자가 말하는 내용만이 진실이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해달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판사가 신(神)이 아닌 이상 당사자들 사이에 일어난 정확한 사실관계나 사정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법원칙으로 정하여진 것이 증거재판주의(證據裁判主義)이다. 민사소송법상 ‘주장과 증거의 준별(峻別)’이라고 표현되는데,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판사에 의하여 그 주장내용이 맞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제아무리 열변을 토하고 지금까지 자신이 거짓말 한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등 언급을 하면서 주장내용을 믿어달라고 하더라도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으면 재판에서 그 주장내용이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한쪽 당사자는 재판이 끝난 후에 “내가 주장하는 말이 진실이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은 허위인데 법원이 나를 믿어주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상대방의 말만을 믿어 소송에서 지게 되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는 증거재판주의에 따라 자신에게 입증책임이 있는 내용에 대한 증거가 없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입증책임이 있는 내용에 대해 상대방이 입증에 성공했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나게 되면 패소한 당사자는 법원이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였다고 비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판사는 신이 아니어서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를 쌍방의 주장만 듣고서는 어느 한쪽만을 믿을 수가 없고 오로지 증거를 통하여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민사재판에서 판사가 내린 결론은 증거를 통하여 얻어진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필자가 재판을 한 사안을 간략히 예를 들어 본다. 원고는 자신이 임차인이고 피고가 임대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임대차 종료 후 임대차보증금 반환 청구를 한 사안이다. 그러나 임대차계약서상 임대인 명의는 본건의 피고가 아닌 제3자 A의 명칭으로 기재되어 있고, 임대차보증금 또한 A에게 지급되었다. 피고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원고를 알지도 못한다고 주장하며 임대인임을 부인하였다.

여기서 원고는 피고가 임대인이라는 점을 입증하여야 승소할 수 있게 되는데, 원고가 제출한 증거로는 원고와 A 명의로 작성된 임대차계약서 및 원고로부터 A에게 임대차보증금이 입금된 은행거래내역 뿐이었다. 원고는 임대차계약서상 임대인 명의를 A로 하였지만 실제로는 피고가 임대인으로서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여 주기로 하는 내부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원고는 소송과정에서 판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신은 지금까지 거짓말 한번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인데, 본건 임대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여도 아깝지 않으나 피고가 거짓말을 하기에 괘씸해서 소를 제기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일단 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내려주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하여 승소판결금 전부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겠다고 하였다. 승소판결금을 자신의 이익으로 취하지 않음으로써 입증을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라고 하겠다. 증거가 없으면 민사재판에서 승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사자 사이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증거재판주의에 따라 위와 같이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증거가 없다면 판사가 그 주장내용을 인정하여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민사재판에서는 법원의 공정한 재판과 더불어 당사자의 증거확보 및 제출에 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당사자는 나중에 문제될지 모르는 사항에 관하여는 항상 계약서 등의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소송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입증을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믿는 사이일수록 합의내용을 어기지 않겠다는 취지로 명확한 문구를 넣어 서면을 작성해 두는 것이 훗날 예기치 못한 분쟁을 예방할 수가 있다. 또한 소송과정에서 당사자가 증거를 수집, 제출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판사가 이를 대신하여 줄 수가 없다. 그 불이익은 고스란히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당사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결론적으로, 민사재판에서 진실을 말하는 당사자가 원하는 ‘정의’는 법원의 노력만으로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법원과 당사자가 함께 추구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겠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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