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34 / 실생활 속 감정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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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34 / 실생활 속 감정평가
  • 이용훈
  • 승인 2014.03.2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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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출판 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선 지 꽤 됐다. 이를 반영하듯 종이질감에 익숙한 세대의 독서량도 눈에 띄게 주는 판이다. 지하철 입석자의 대다수가 손에 책 한 권 씩 들고 있던 풍경이 낯익었던 필자를 기성세대로 봐 준다면 필자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전자책이 그 자리를 대체했으면 좋으련만, 대체재는 신변잡기 기사검색과 동영상 재생을 도와주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다. 기성세대가 요즘 세대와 보조를 맞추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역방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 아쉽다. 독서를 통해 기대하는 ‘반성적 사고’, ‘성찰적 독서’는 스치듯 대하는 기사검색과 그 깊이를 달리한다.

책이 사랑받고 출판인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 좋았던 시절, 전문서적 출판사는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다고 달콤한 제목을 내세우는 전략을 취했다. 이는 주효했고 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맛보기’, ‘~길라잡이’, ‘~뽀개기’, ‘~하나도 모르는데요.’ 등이 그런 부류였다. 이런 시도는 한 분야 전문가가 그들의 잠재적인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어떻게 그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물론 속속들이 채워져 있는 내용도 서명의 취지에 부합하게 정갈해야 한다. 사회학의 기초를 설명한 책이 복잡한 사회학 이론부터 출발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독자가 익숙한 사회 현상부터 소개하고 거기에 담긴 사회학적 논의를 슬그머니 끼워 넣는 센스를 발휘해야 마땅하다. 그런 면에서 매 주 한 번 감정평가와 관련된 논의를 소개하는 이 코너도 필자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몸짓으로 봐 주기 바란다. 좋은 한정식 집에서 맛깔난 식사를 하고 지인에게 메뉴의 이모저모를 소개해 주는 정도쯤.

실생활 속 감정평가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재산권행사와 관련된 부분, 세금과 결부된 영역, 집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현장, 일용한 양식 언저리까지 두루 걸쳐 있다. 첫째 재산권 행사와 관련된 부분은 담보대출평가, 보상평가, 소송평가 등이 해당될 것이다. 먼저 일부 대출금을 끼워 집을 장만해야 할 경우, 사업장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은 담보대출평가의 영역이다. 과거 여신 고객이 내야 했던 감정평가수수료가 현재 은행부담으로 바뀌면서 실감을 못 해서 그렇지 적지 않은 수수료 부담을 했던 시절도 있었다. 밀양송전탑 사태처럼 고압선 통과와 보상금을 맞바꾸는 건 보상평가의 영역이다. 이혼소송으로 재산 분할을 해야 하는 경우 시가의 산정은 소송평가자의 몫이다.

둘째 가장 민감할 수 있는 과세부분은 개인에 대한 재산세, 상속 및 증여세, 법인에 대한 부가세 및 법인세 등이 해당된다. 매년 토지와 건물, 주택에 대해서 부과되는 재산세는 전년 말부터 당해 연도 초까지 1,000여 명의 감정평가사가 참여하는 공시업무의 결과물로 인한 것이다. 상속받은 재산, 증여하는 재산의 가치는 과세당국이 공시된 자료로 시가를 갈음하는 걸 원치 않을 경우 시가참고용 일반거래 목적으로 평가되어 과표가 결정된다. 시행사가 분양에 성공한 복합쇼핑몰은 분양수입에 대한 건물부분 부가세 납부를 위해 부가세산정목적으로 평가의 객체가 되고, 청산을 앞둔 특수목적법인 SPC는 법인세 납부문제로 감정평가의 수요자가 된다.

집 문제를 둘러싼 현장에서의 감정평가는 재산권이나 세금만큼이나 첨예한 영역일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됐던 고급 임대아파트 한남 더 힐의 분양전환을 위한 감정평가는 임차인의 내 집 마련 가격, 임대인의 매도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리모델링 아파트 소유자가 부담하는 수 천만 원에서 수 억 원에 이르는 분담금은 리모델링 전, 후 아파트의 가치를 감정평가해서 추계된 값이다. 재개발구역에서의 조합원 권리가액이나 청산자의 재산가치, 불하받는 국유재산의 점유자 매수금액도 감정평가 외에는 달리 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조망이나 일조 침해로 인한 소송이 걸리거나 옆 집 공사로 거실 벽에 균열이 발생하면 그 손실분을 확정하기 위해 감정평가를 거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일용할 양식, 생계의 영역에 감정평가가 개입한다. 주기적으로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수명이 다한 불용품을 매각한다는 공고를 띄운다. 한전의 폐전선과 변압기, 서울메트로에서 내 놓는 사무기기, 지역난방공사가 처분하는 니켈이 함유된 금속부품은 모두 매각 목적의 감정평가를 통해 몸값을 정하고 시장에 얼굴을 내민다. 고철 등 폐기물의 매입·재매각을 통해 생활비를 버는 폐기물 수거업체가 감정평가 결과에 반색하거나 실망하는 게 다반사다. 장기투자목적으로 보유한 주식의 급등원인이 해당 기업의 자산재평가로 인한 재무조정이었다면 간접적인 감정평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셈이다. 지하철역사 매장의 매년 임대료 역시 감정평가사의 손에서 결정된다.

그러니, 감정평가는 세금폭탄의 진원지가 될 수 있고 서민들 지갑의 두께와도 관련돼 있으니, 지나가다 접하게 된 본문과 같은 기고문도 잠시 멈춰서 들춰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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