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이지 않는 국경(국적)과 인권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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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이지 않는 국경(국적)과 인권의 경계
  • 박영아
  • 승인 2014.02.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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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이번 글을 조금 당연한 얘기로 시작하려 한다. 국가는 공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공권력을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행사한다면 그것은 폭정이 된다. 법치국가에서 법은 공권력 행사의 근거가 되는 동시에 그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하에서 법은 사회 구성원의 뜻을 대변하는 입법기관에 의해 제정된다. 권력분립제 하에서 공권력 행사가 법의 한계를 넘어섰는지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구체적 사안에서 국민의 권리를 공권력 남용으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처음부터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행정절차법이 중요한 이유이다. 행정절차법은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처분의 사유, 처분의 내용과 법적 근거를 미리 통지하고 의견을 제출하거나 청문의 기회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또 처분을 할 때 처분의 이유를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대강은 알고 있을 이야기를 여기서 하는 이유가 뭘까?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고 있는 통치원리가 통하지 않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출입국관리 영역이다. 외국인의 출입국·난민인정·귀화·국적회복에 관한 사항은 행정절차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행정절차법 제5조는 “행정청이 행하는 행정작용은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명확하여야 하며, 행정작용의 근거가 되는 법령 등의 내용이 명확하지 아니한 경우 상대방은 해당 행정청에 그 해석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법무부는 체류자격 취소, 출국명령(일정 기한까지 출국하라는 명령), 강제퇴거명령(강제로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명령) 등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집행행위의 기준이 되는 지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선 인신에 대한 실력 행사를 수반하는 강제퇴거명령을 살펴보자. 강제퇴거명령에 대해 법무부 장관에게 7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으나,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2월까지의 이의신청 사건 중 인용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강제퇴거 대상이라 하더라도 법무부 장관이 체류허가를 내줄 수는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법무부 장관의 재량사항이다. 위법한 처분에 대한 법적 구제수단이 아닌 것이다. 법원에 강제퇴거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집행정지 신청도 할 수 있지만, 법원의 결정이 있기 전에 강제퇴거명령이 집행되어 버리면 그만이다. 소송을 대리해줄 변호사가 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통신과 교통이 원활하지 않는 이역만리에 있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원고와 연락을 취해서 증거자료와 진술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강제퇴거명령 취소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한국으로 돌아오려면 다시 사증(비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원고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도 미지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2014년 1월, 새해를 맞은 두근거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2013년 가을부터 여수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던 베트남인 선원을 만났다. 그는 2013년 6월 입국한 후 2달 2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배가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하루 5-6시간 잠을 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 일을 했고,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에도 어구 손질과 출항 준비로 휴일 없이 일했다. 그러나 그가 견디지 못 했던 것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배가 바다로 나가기만 하면 시작된 한국 선원들의 폭행, 임금체불 그리고 선상에서 받았던 차별이었다. 그는 첫 월급을 두 달 넘게 받지 못 했다. 반면 한국 선원들은 배가 항구로 들어올 때마다 보수를 받았다. 그는 20년 넘게 배를 탄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원들의 “밥”이었다. 그에게 매일 날아든 것은 욕, 발과 주먹, 생선과 생선을 담는 통 등이었다. 반격하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걱정에 대항할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는 선장, 선주, 수협, 관리업체 등 연락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나아진 것은 없었다. 결국 업체 변경을 요구하며 승선을 거부했다.

그러자 선주는 이탈 신고를 하였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선주가 이탈 신고를 철회하지 않으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폭행과 관련된 사실 확인을 하려고도 안 했다. 선주는 이탈 신고 철회 조건으로 “3년 근무 조건, 법무부 벌금 본인 부담, 이탈 기간 월급 없음, 불평. 불만 없이 성실근무, 이탈시 송출회사에서 책임(하선 포함)”을 요구하였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선주의 이탈 신고가 있고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관리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다른 업체를 소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관리업체 직원과 사장의 안내에 따라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갔다. 그런데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업체 변경 허가가 아닌 강제퇴거 명령서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체포가 되고 구금이 되었다. 결국 전후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선주의 이탈 신고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퇴거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 입국하기 위하여 베트남 송출회사에 12,000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지급하느라 지인들로부터 자금을 차용하고 주택을 담보로 은행 대출까지 받은 상태여서 이대로 돌아갈 없는 상황이었다.

공감은 그를 대리해서 강제퇴거명령취소소송을 제기하기로 하고, 며칠 후 법원에 소장과 집행정지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사건이 재판부에 배당되기도 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강제퇴거명령이 집행되었다는 것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설명은 베트남 정부가 1월 11일 이후부터 체류자격 없이 한국에 남아 있는 자국민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해서 자진해서 출국했다는 것이었다.

현재 그와 다각도로 연락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설명이 사실인지 아직 명확히 확인하지 못 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선주의 이탈 신고만으로 항변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강제퇴거 대상이 되었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송환되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출입국관리가 주권의 영역에 속한다고들 하지만, 외국인에게 처음 사증을 발급해주는 문제와, 한국에 들어와서 사회관계와 이해관계를 맺은 외국인을 강제로 송환시키는 문제는 분명 다르다. 본국으로의 송환이 형벌에 비견될 만큼 가혹한 처분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법무부가 체류관리지침을 공개하지 않아 체류자격취소, 출국 권고, 출국명령, 강제퇴거와 관련 어떤 기준들이 적용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법원의 판단은 법무부 지침에 구속되지 않지만, 법원까지 가는 사안이 많지 않다. 특히 강제퇴거명령을 받고 구금이 되면 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외국인에 대한 강제퇴거에 있어서만큼은 공권력의 행사가 폭정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감 뉴스레터 2014년 2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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