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고(商高) 출신 변호사의 사법시험 존치 대국민 호소문
상태바
[기고] 상고(商高) 출신 변호사의 사법시험 존치 대국민 호소문
  • 법률저널
  • 승인 2013.12.26 22:29
  • 댓글 9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메가박스 2관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청년변호사대회’가 500여명의 청년변호사연대 주최로 개최됐다. 이들은 “로스쿨은 법조계의 온갖 병폐를 낳고 있는 주범”이라며 “로스쿨을 폐지할 수 없다면 사법시험을 존치시켜, 상호 경쟁해야 한다”고 궐기한 가운데, 여자상업고등학교 출신의 조영민 변호사는 어려운 여건을 극복한 합격기를 통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법시험 존치에 대한 당위성을 읊어 참여 변호사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에 조 변호사의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원문을 받아, 게재한다. 다만, 이에 대한 반론이 있을 경우 언제든 지면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사법시험은 희망의 촛불, 국민께 고합니다”

 

 

 

 

 

 

 

 

 

조영민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인, 동구여상 졸업)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법연수원 41기, 조영민 변호사입니다. 오늘 사시존치를 위한 청년변호사대회에서 부족한 제가 여러 훌륭하신 분들 앞에 서게 된 이유는, 저는 사법시험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결코 설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사시존치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보다 그냥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무척 가난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1남3녀 중 차녀로 초등학교 4학년 봄, 아버지께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버스운전을 하시며 열심히 사셨지만 아버지 역시 이북에서 홀로 남으로 내려오신 분이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에게 남긴 재산은 달동네집하나 뿐이었습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시던 어머니는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를 모셔와 저를 포함한 네 아이들을 맡기고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때 언니가 중학교2학년, 막내가 세 살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을 하셨지만 어머니가 벌어온 돈으로 여섯 식구가 생활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학급에서 유일하게 집전화가 없는 아이였고 중학교 땐 학비면제를 위해 학교 매점에서 일해야 했고 수학여행비가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몇 안 되는 아이 중에 하나였습니다.

저는 변호사를 꿈꾸었고 언니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나 언니와 저는 상고에 진학을 해야 했고, 여름방학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으며 졸업 후엔 어머니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저는 상고에 입학하면서도 제 꿈인 변호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돈을 벌어 법대에 진학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장래 희망 조사에서 제 꿈을 알게 되신 선생님의 ‘꿈과 가까이 있으면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권유로 저는 은행이 아닌 법무법인 태평양, 당시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취업하자마자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필요한 등록금과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법고시는 연령불문, 학벌불문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돈이 많이 필요한 법대 진학보다 우선 법학공부를 독학으로 하면서 학사학위를 딸 수 있는 학사고시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시는 주5일근무도 아니고 근무여건이 지금처럼 좋던 시절이 아니어서 일주일에 2~3번은 야근하는 것이 일상이고 주말에 출근해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퇴근 버스에서 곽윤직 교수님의 민법총칙을 읽고 점심시간을 쪼개 공부를 하거나 퇴근해서 새벽까지 공부를 하며 독학으로 법학공부를 하였습니다.
법학과목이 늘어날수록 혼자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아져 종로에 있는 행정고시 학원에 단과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 그땐 근무가 끝나면 저녁식사를 천원짜리로 때우고 버스비가 아까워 시청에서 종로까지 숨이 턱까지 차도록 뛰어가 수업을 들었습니다.

결국 제 몸이 버티지 못하고 결핵성 늑막염으로 입원하기도 하였습니다.

회사를 다닌 지 7년 3개월 동안 언니, 엄마, 제가 ‘가난을 동생들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다짐으로 열심히 일하여 두 동생들을 4년제 대학에 모두 보내고, 월세를 주고 방 하나로 생활하던 6식구는 월세를 내보내고 방 두개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9년 1월, 제 나이 스물일곱, 더는 늦어져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꿈을 이루겠다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딸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를 그만두고 사법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저는 신림동에서 가장 외곽에 위치한 월1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고시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책은 대부분 헌책방에서 샀고 학원은 칠판지우는 학생으로 독일어강의만 들었으며 무조건 고시원에서 책만 보며 공부하였습니다.

차차 학원에서 강의를 듣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기본강의를 듣기도 하였지만 그 후 대부분은 강의테이프를 함께 듣는 스터디, 모의고사 문제를 사다가 같이 푸는 스터디 등 돈이 드는 학원강의보다 스터디를 활용해 공부를 하였습니다.

제가 처음 신림동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점심 먹고 잠깐, 퇴근하고 잠깐이 아닌 ‘하루종일’ 공부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해하고, 공부하다가 쉬는 시간에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고시생들을 보며 “아! 내가 신림동에 있구나” 하며 제가 신림동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에 겨웠습니다.

책을 하나 사려면 정말 필요한 책인지 헌책방에서 살 수 있는지 많은 것을 따져야 하고 듣고 싶은 강의도 남들보다 늦게 테이프로 들어야 했고 내게 필요한 스터디를 모집하거나 참가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시도 돈이 많으면 쉽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처지를 잘 알기에 저에게 주어진 조건에서는 사시를 빨리 합격하느냐가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걸어 사시를 합격하느냐에 집중하기로 하였습니다. 사법시험은 제게 그런 것이었습니다.

연령불문, 학벌불문이 제게 희망을 주듯이 내가 몇 살이든 상고를 나왔든 상관없이 실력만 합격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면 합격하는 것입니다. 스터디 멤버로 참가하는데도 학벌을 보고 이유없이 저를 거부하여도 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사법시험은 제가 헌책으로 공부하였든 테이프강의로 공부하였든 먹통방에서 공부하였든 상관없이 저를 거부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주위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며 자기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저의 개인적인 성공이 왜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을 일인지 왜 그들이 기뻐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9년도 한 증권사의 광고 문구입니다. 사람들은 믿고 싶다, 악을 이기는 선을, 노력하는 사람의 성공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해피엔딩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우리는 믿고 싶다. We want to believe.

저는 이 광고문구를 보고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꿈을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이 성공하길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저의 성공이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변호사로 활동한지 2년차가 되었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법은 참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전반을 규율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헌법 제11조 제1항에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누구든지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고 법을 적용받도록 하여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법을 적용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법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다른 계층의 사람들, 즉 고액의 등록금을 부담할 수 있는 고소득층,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자라는 고학벌자, 특권층 자제들로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면 그러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법적용을 하였다고 생각할런지, 법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 전에 그들의 법적용을 신뢰하고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로스쿨제도가 고액의 등록금을 부담할 수 있는 고소득층과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자라는 고학벌자를 위한 제도이고, 입학과 취업에 있어서 실력외적 요소가 많이 작용되고, 권력세습을 위한 현대판 음서제로 활용되어 법조인이 부와 지위, 권력의 세습자의 대명사로 여겨진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극에 달하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사법연수원 2년차 미국연수에서 연방법원의 재판장님으로부터 미국에서 배심원제도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애초에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다양한 이민족들로 구성되어 소수의 혜택받은 백인만에 의한 재판은 국민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이나 민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합의체, 배심원단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법은 사법불신과 나아가 사법저항을 불러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법학교육과 법조인력 선발·양성은 단순한 직업교육, 단순한 직업인의 선발·양성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법정의와 법치주의의 인적 기반을 구축하는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임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부와 지위, 권력의 세습이 아니라 누구나 노력하면 빈부·환경·배경·나이·조건 등 어떤 것에도 좌우되지 않고 실력만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우리 국민 누구나 법조인을 꿈 꿀 수 있고, 노력하여 실력만 겸비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사법시험은 반드시 존치되어야 할 것입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9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우와.. 2014-08-07 06:09:43
존경스럽습니다 변호사님!

리코 2014-07-05 14:04:36
그런데다..막상 법공부를 해볼려고해도 경제적어려움이...보이지않는
계급을 만드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취감으로 따지면 아무래도 사법시험이 나아보입니다..

리코 2014-07-05 14:02:01
뒤늦게 법공부를 시작한사람입니다.
사법시험이 존치되었으면 합니다.
시험을 통해 자기노력의 결정판이 되지않을까요??
대학교 좋아하긴하는데요...푹퍼진펑퍼짐한 아줌마궁뎅이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대부분의 기본지식은 대학에서 이루어지는것이라는건 인정이 됩니다.
하지만 주로 학원에서 사법시험공부하고 독학도하게되지만...계획을 세우고 실처해나가는것도 인생을 살아가는데..많은 도움이 되었던것같아서요...

골드님보세요 2014-02-18 16:10:42
애당초 사법시험 병폐는 로스쿨도입을 위한 허울좋은 명목이었일뿐이라는 것이 지금 로스쿨제도의 문제점들을 보시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고시낭인이요?? 일자리가 차고 넘치는데 사람들이 고시공부하느라고 신림동으로 몰려 들었나요 개개인의 꿈과 희망, 꿈과 희망을 위한 노력을 무시하는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추부식 2014-01-20 17:00:19
자들에게 국가에서 무슨 헤택이라도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제도와 규범을 준수하여야 하나 반드시 그것만이 최고의 가치는 될 수 없습니다. 단지 국가는 국민들에게 최소한 공평한 기회만은 누구에게나 부여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이 다시 와야 합니다. 서민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꼭 참조하여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여 주십시요.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