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묘사, 설명, 이론,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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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묘사, 설명, 이론, 시각
  • 법률저널
  • 승인 2013.12.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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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얻게 된 즐거운 일 중에 하나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즐거움은 이내 부담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정확성과 참신성과 같은 부담과 책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북한의 외교정책과 군사전략에 대한 공부를 할 계기가 생겼다. 북한 연구는 대학원 코스에서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강의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읽고 어떤 틀로 강의를 해야 할 것이며 어떤 결론을 가지고 이 주제들을 접근해야 할지와 어느 부분을 강의에서 전달하는지에 대해 정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북한에 대한 많은 수의 연구들을 검토하게 되었고 재미있는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공부 과정 중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순수하게 북한 연구에 몰두한 연구들이 대체로 이론중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 연구의 상당수는 역사적 관점의 서술이나 특수한 북한의 상황과 맥락을 강조하는 지역학적 관점의 서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외교분야의 설명이 특정 시기의 외교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어떤 국가들과 어떤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지 특정 외교정책이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적 기술에 몰두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았다. 물론 모든 연구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과 개념중심의 기술이 반드시 이론적 분석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짚어두고 가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하는 개념적 기술이란 특정한 정책을 개념화한 뒤에서 이것을 통해서 분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등거리외교나 벼랑끝 외교를 개념화한 뒤에 이 개념을 가지고 북한이 몇 년도에 이러한 정책을 사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방법론적으로 볼 때 양적연구의 법칙적인 연구보다는 질적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 질적방법론을 선택한 것은 북한이라는 정치체제가 가진 특수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일반화가 어렵다는 이유이다. 최근에는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독재체제를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북한의 행동을 비교해서 유사성과 차이점을 보여줄 만한 비교사례를 세우기 곤란하다. 또한 북한이 가진 가족족벌체제적 운영과 같은 왕조시대를 제외하고 찾아보기 힘든 요소들은 오로지 북한이라는 사례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정치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시각은 다소 이질적인 것이 사실이다. 만약 북한을 일반화할 수 없다면 왜 우리는 북한을 배워야 하는가? 북한으로부터 도출된 어떠한 기준도 북한의 이해를 넘어서서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없다면, 그리고 단지 북한에 대한 이해이외에 어떠한 유용성도 찾기 어렵다면 연구의 가치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물론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북한이라는 한 가지 사례라도 우리에겐 안보적 위협과 통일의 기회라는 관점에서 여전히 중요성이 있기 때문에 맥락에 대한 이해에 국한된 연구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북한 연구가 특수하다고 믿고 법칙을 찾아내기 보다는 어떻게 이런 일들이 진행되었는가를 묘사(description)하는 것에 초점을 두게 된다면 북한에 대한 설명(explanation)은 포기하게 되는 것이며 당연히 설명이후의 예측(prediction)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라고 하는 대상을 다루는 학문적인 입장에서 엄청난 포기가 될 수 있다.

위의 주장을 좀 더 편한 말로 풀어서 이야기 해보자. 어떤 현상이 벌어지면 반드시 그 현상을 벌어지게 만드는 계기와 원인이 있다. 특히 국가라고 하는 조직이 어떤 정책을 만들고 이것을 실행에 옮겼을 때는 반드시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국가는 인간들이 만들고 인간으로 구성된 조직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목적을 국가가 그대로 가지거나 국가구성원들이 합의한 목적을 국가가 가지고 의도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정치학을 포함한 정치학은 국가나 인간집단이나 인간개인이 하는 행동은 그 기저에 그 행동을 하게 만든 원인이 있다고 전제한다. 자연현상도 그 이면에는 원인과 계기가 있다. 자연현상 중에 우발적으로 생겨난다고 믿는 허리케인이나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재해도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자연적 현상들 간의 우발적인 만남들로 인해 구성되는 것이고 그 우발성 이면에는 자연을 운영하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 인간들은 이런 사건들을 초자연적현상으로 치부하고 자연이나 신을 찾아서 자연과 신의 뜻이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다시 국가와 인간의 문제로 이야기를 좁혀보자. 국가가 행동에 나설 때 행동을 계획하고 수행하게 만든 동기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어떤 국가의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그 행동의 원인 역시 반복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면 어떤 일관되고 반복되는 행동을 결정하게 하는 일관되고 반복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확장하여 더 많은 국가들의 행동방식을 보았을 때 수많은 국가들의 행동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 한 가지 일관된 원인에 기인한다면 그 원인은 국가들의 행동들의 보편적인 원인이라고 칭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특정원인(예를 들어 A라고 칭해보자)이 다양한 국가들 행동의 일관된 결과(예를 들어 B라고 칭해보자)를 가져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 혹은 같은 나라가 다른 시기에 유사한 행동(B)을 하였다고 하면 우리는 그 행동의 원인을 특정원인(A)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렇게 반복적인 패턴 속에서 그 패턴을 만들어내는 원인을 규명하여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을 설명(explan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 보편성을 가지기 때문에 설명의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면 자연스럽게 향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prediction)이 가능해진다. 예측을 위한 노력은 불확실한 자연환경에 노출된 인간의 생존에 대한 강력한 욕구에 기인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내일 비를 안 맞기 위해 일기예보를 보는 것을 생각해보면 예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인과적인 설명들을 모으면 원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왜(why?)”를 설명해낼 수 있다. 그리고 왜를 설명해 낼 수 있는 체계적인 논리구조를 이론이라고 부른다. 한편 이론들은 가정하고 있는 시각들이 있다. 한 가지 현상을 만들어낼 때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기 때문에 이 현상을 설명하고 해석하는데 여러 가지 대안적 논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명해졌을 때 그가 추구한 목적이 명예일 수도 있고 권력일수도 있고 유명세 뒤에 따라오게 될 부(副)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을 바라보는 가정들(위의 예에서 인간에 대한 권력추구적 인간가정, 명예추구적 인간가정, 부추구적 인간가정이 적용될 수 있는)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정들과 논리적인 이론들을 묶어서 시각(perspective) 혹은 접근법(approach)라고 부른다.

시각 혹은 접근법이 생기고 나면 우리는 어떤 현상을 그 시각에 기대어 설명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홉스의 주장에서 인간이 권력추구적이라고 배우게 되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권력추구적이 되는 것이다. 아기가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칭얼거리고 보채는 것은 아기의 부족한 자원에 기반한 엄마에 대한 권력행사가 되는 것이다. 만약 마르크스적 관점이라면 이것은 아기의 엄마에 대한 착취가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기의 합리적선택과 엄마의 합리적 선택에 기반한 상호적 협력(cooperation)이 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시각들의 비교를 통해서 정말 무엇인 현상의 원인인가를 찾아가는 것이 정치학이 속한 사회과학이 하고자 하는 일이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보자. 북한에 대한 연구들에서 이론이 부족한 것은 아직 북한정책들의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고 일반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료수집의 한계와 일반화할 수 있는 사례부족 등에 기반한 면도 있고 시각들이 가지는 가정으로 인해 북한을 먼저 재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역시 인간들의 집단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이 가진 보편적 속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행동의 원인들 역시 보편성을 가지고 설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북한 행동의 왜(why?)를 설명(explanation)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다양한 시각들을 검토해서 진정한 동기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불확실한 북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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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heepak 2014-07-22 10:53:10
잘읽었습니다~ 북한 아닌 중국연구에 관심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jinheepak 2014-07-22 10:53:10
잘읽었습니다~ 북한 아닌 중국연구에 관심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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