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Quo Vadis(어디로 가시나이까)?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Quo Vadis(어디로 가시나이까)?
  • 법률저널
  • 승인 2013.11.29 12: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권력정치의 다자간 균형이 출현하고 있는 탈냉전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제거해야 할 것은 미국의 밴드웨곤에 안주하고 있는 약소국으로서 겪게 되는 일종의 ‘무력함에서 생기는 절망감이다.”1)

오랜 만에 지도교수님의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강성학 교수님이 1997년에 쓰신 논문이자 2004년에 출판한 『새우와 고래싸움 :한민족과 국제정치』에 게재한 글을 보면서 지도교수님의 현재와 미래를 읽어내시는 넓은 안목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요한복음 16장 5절에는 “Quo Vadis(주여)어디로 가시나이까?”를 묻는 이가 없다는 구절이 있다. 한국의 상황이 편승(bandwagon)2)위주의 정책에서 지금은 어디로 가는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는 걱정을 담은 지도교수님의 글을 보면서 15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2013년 11월 23일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는 한국의 이어도가 포함되어 있으며 한국의 방공식별구역과 부분적으로 겹쳐있다. 말할 것도없이 중국이 선포한 구역에는 최근 중일간의 갈등이 첨예한 다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가 포함되어 있다. 중국의 선포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그 동안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에 이어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배웠고 이어도가 섬이나 암초가 아니라는 것도 배운 것 같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대통령하야를 주장한 시국미사와 함께 중국의 선포는 일파만파 이슈가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 반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일본도 즉각적으로 중국 주장을 일축해버렸다. 미국은 워싱턴 현지 시간으로 11월 25일 오후 7시 괌에 있는 미군 B-52 폭격기 두 대를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으로 설정된 동중국해의 다오위다오지역으로 비행을 시켰다. 무장을 하지 않은 폭격기이지만 중국에 사전 통고없이 비행을 시도함으로서 중국의 선포에 대해 ‘무시(neglect)정책’을 강행한 것이다. 미국의 무력시위는 중국의 주장에 대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입장을 미국이 옹호할 것이며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동맹국가를 품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강경노선에 브레이크를 걺으로서 아직 중국이 미국에 대해 대립각을 세울 때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한 편으로 미국의 약화와 중국의 강화를 우려하는 국가들에 대해서 미국이 ‘아시아재개입정책’을 표방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동맹의 내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과 중국을 견제하거나 거리를 두고자 하는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조치에 가장 환영하는 입장은 일본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새로운 밀월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베 일본총리가 2013년 2월 22일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Japan is Back!”을 외쳤다. 그는 오바마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 가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특별강연에서 ‘자신이 총리로 돌아온 것처럼’ 일본도 돌아왔다는 제목의 강연으로 일본의 복귀를 선포하였다. 그 자리에서 일본총리는 일본이 지역국가에 머물 수 없다고 전제하고 일본의 3대 지향점을 제시했다. 첫째,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번영을 위한 일본의 주도적 역할, 둘째 국제적 단결을 위한 일본의 수호자적 역할, 셋째, 민주주의국가들과의 협조가 세 가지 지향점이다. 아베의 적극적평화주의 노선은 지난 달인 10월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장관간 회담에서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추진에 대해 지지선언을 하면서 미국과 달달한 허니문시기임을 보여주었다.

한편 러시아는 극동아시아에서 나오는 자원과 빙하가 녹아서 생겨나고 있는 북극노선으로 국가성장의 고속질주하고 있다. 푸틴의 총리시기의 친정체제까지를 감안했을 때 장기집권에 따른 내부적 통제력강화는 러시아에 대한 타국들의 투자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소련 붕괴시기 국가산업의 70%가 군수산업이었던 과거와 달리 에너지분야등에서 국가의 성장동력을 찾아 빠른 속도로 과거 러시아의 영광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이상의 일들을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환경이 다극적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어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다극적인 상황을 대한민국은 매우 단순화시켜서 이해하려는 측면이 있다. “안보파트너 1위인 미국과 경제파트너 1위인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이 무엇인가?”로 문제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사건도 동일한 질문을 불러온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강화하면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현명한 방안이 무엇인가로 질문을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문제가 이렇게 단순할까? 한국이 처한 외교적환경은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의 비위를 맞춰주는 3각(triad) 관계 안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게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한미간 관계조정은 당연하게 일본이 고려된 상황에서 진행된다. 미국은 자국의 부담을 일본이 덜어주는 것에 버선발로 달려 나갈 판이다. 일본은 이 상황에서 주변 국가들의 우려를 무시하고라도 집단적자위권을 확보하고 보통국가로 한 걸음에 내달리려고 한다. 게다가 두 나라는 해양국가라는 지정학적인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에 대해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만들고 정착시켜준 나라로서 일본이 더 큰 목소리를 냄으로서 미국에 의해 ‘관리되는 나라’로서의 성공을 전세계에 내세우고 싶어한다.

러시아의 성장은 동북아시아 국가들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에너지문제에 있어서 대외의존도가 큰 나라들에게 러시아의 가스는 저렴하고 운송에서 안전한 공급원이다. 게다가 점차 증대하는 북극해를 지나기 위해서도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중국과 상해협력기구를 통해서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국경을 마주한 중국의 성장에 그저 박수만 보내지는 않는다. 스노든문제로 미국과 냉랭한 러시아는 국제문제에서 자신의 발언권을 높이고자 한다. 시리아의 화학가스 사용에 대해서 미국과 다른 노선을 걷는 것도 이런 러시아의 입장을 반영한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어느 나라 하나 고려되지 않으면서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정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처음 다극적 구조를 마주하고 있다. 한반도에 있던 왕조들은 중국중심의 중화질서에서 중국에 대한 편승을 기본원칙으로 견지해왔었다. 그러다 19세기 유럽제국들로 다극화된 국제질서와 일본 성장으로 양극화된 지역질서 내에서 조선은 국가패망을 경험하였다. 한국전쟁이후 냉전시기에 한국은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면서 양극적 질서에서 편승을 통해 생존을 도모해왔다. 양극에서 한 쪽에 편승한다는 것은 외눈박이 외교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과거는 우리 편인 친구하고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모든 것이 정리되는 상황이었다.

현재 한국이 경험하고 있는 다극구조는 유럽의 19세기 다극구조와 다르다. 유럽은 기독교의 뿌리라고 하는 공통의 정체감과 유대의식이 있었다. 게다가 적당한 사이즈의 강대국간의 경쟁구조였다. 공화주의국가들과 전제주의국가들이 섞여있었지만 지역내의 세력균형원리를 받아들이겠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직면한 지역질서는 국가간의 힘의 크기가 차이가 많이 날 뿐 아니라 다른 지리적 공간에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국가들은 현상유지적인 국가와 현상타파적인 국가들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경제교류와 관광객으로 대표되는 복잡해진 상호의존은 국가들의 정책판단에 대해 복잡성을 요구하고 있다.

컬 슈미츠가 정의내린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정치에 대한 간력한 정의는 한국외교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적을 구분하되 은밀하게 해야 하며 한 손에는 반드시 몽둥이를 들고 있으면서도 서로 환하게 웃으면서 맞이해야 하는 외교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카드라는 위협이 한국에게는 미국과 일본사이의 거리를 재보기 위한 제스처라는 것을 알면서 한국은 즉각적으로 미국과의 끈끈한 협조를 보여주면서도 중국에게 “괜찮지?”라고 여유있게 웃을 수 있어야 한다.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보여주면서도 여유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민족주의 노선에 경도되어 일본에 거리를 둠으로서 미국과 일본의 관계강화를 멀찌감치 바라보면서 한국에게 끊임없이 “미국과의 관계강화 속에서 어떻게 중국을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면 안된다. 냉철한 국제환경에서 정책적으로 스스로의 손을 묶어두고 친구와 소원해지면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이 도대체 어디겠는가? 그런 점에서 강성학 교수님이 던지신 질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동북아시아의 부상하는 다극구조에서 도대체 한국은 어디로 가시나이까?
 

 

 

각주)-----------------

1)강성학, “한국외교정책의 특성: 편승에서 쿼바디스로?”『새우와 고래싸움 :한민족과 국제정치』,(서울:박영사, 2004),pp.197-198.

2)편승정책은 가장 강력한 강대국의 편에 서는 (동맹)정책을 의미한다. 가장 강력한 강대국에 대항하여 동맹을 형성하는 균형(balancing)정책과 대비되는 정책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