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전쟁론의 관점에서 보는 이석기사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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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전쟁론의 관점에서 보는 이석기사태 (2)
  • 법률저널
  • 승인 2013.11.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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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내란음모와 관련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어느 쪽으로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한국사회는 큰 파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정당해산청구와도 연결되어 한국사회를 흔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건은 여전히 냉전이란 구조에 있는 한반도상황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에피소드일 뿐이다. 
 

북한은 아직도 과거방식의 사고체계에서 크게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도부는 자신들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새로운 변화를 꾀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체제가 멈추면 넘어지는 자전거와 같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북한 최고위층은 그들의 체제가 정지했을 때 자신들의 기득권뿐 아니라 안위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힘을 다해서 체제를 유지하고자 한다. 죽고 싶다고 죽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변화를 위해 큰 수술을 감행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있는 힘을 다해 한반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미사일을 더 멀리 날림으로서 자신의 문제가 국제적인 문제라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북한이 너무 빨리 무너져서 남한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걱정이고 중국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서 북한이 중국으로 흡수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또한 북한이 절망적인 마음으로 남한에 대해 위협을 현실화시킬지 모른다는 것 역시 전략적으로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붕괴나 유지도 모두 걱정인 상황에서 2천 400만에 달하는 북한 지역에 살고 있는 한민족의 운명 역시 걱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통진당, RO 조직, 이석기라는 인물이 던진 우려는 다각적이다. 이런 우려 중에는 전쟁론의 관점에서 이 사안을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양한 걱정 속에서도 국제정치의 본질인 전쟁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에피소드같은 사건에서 좀 더 체계적 시각을 부여한다.
 

지난 시간에 전쟁을 보는 손자의 입장은 전쟁이 반드시 엄청난 규모의 무력을 사용하고 선전포고를 하고 결전을 벌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보았다. 간접접근은 실제로 싸우지 않고도 적의 싸움 의지를 꺾고 적진 내부를 분열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 것 역시 전쟁의 양태라는 것을 보았다. 북베트남이 미국의 여론에 집중해서 가장 강력한 패권국가를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손자의 간접전략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보여주었다. 손자의 간접접근과 대비되는 직접접근의 대표적인 이론가가 독일의 클라우제비츠이다. 직접접근은 전쟁을 어떻게 보며 어떤 전략과 전술을 제안하는지 살펴본다.
  

클라우제비츠가 보는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의 3위 일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가 볼 때 전쟁은 3가지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다. 클라우제비츠는 하나의 총체적 현상으로서 전쟁의 지배적 성향은 ① 근원적인 폭력과 적대감. ② 우연과 확률의 작용. ③전투행위수단으로서의 종속성이라는 3가지요소로 이루어진 ‘3위 일체’로 이루어져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다시 바꾸어 말하면 ①국민의 열정 ②지휘관의 우연성과 확률 ③정치적 목적을 제시하는 정부라는 세 가지 요소와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승패는 결국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달려 있다.1)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개념에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이 책의 1권 1장에서 전쟁을 3가지 측면에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먼저 전쟁은 우리의 의지를 우리의 적에게 강요하는 행위이다.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힘이 중요하다. 힘이 중요하기 때문에 전쟁은 극단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은 이론적 입장과 달리 극단으로 가기 전에 수정될 수 있다. 즉 이론은 극단적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 전쟁은 극단적인 것을 지양할 수 있다.2)
  

“두 번째 정의로 전쟁은 도박과 같은 것이다. 전쟁은 개연성의 영역이다. 그것은 마치 도박과 같다. 운이 작동하기 때문에 전쟁은 학문의 이론적 분야라기보다는 술(art)의 영역에 가깝다. 따라서 전쟁에 나선 장군은 인간의 운과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전쟁의 좀 더 세밀한 정의이다.”3)

  

전쟁의 세 번째 정의는 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전쟁은 정책의 목적이 아니며 정치를 위한 수단이다. 즉 정치가 우선되는 것으로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전쟁은 진정한 의미의 주어진 상황에 대해 자신의 특성을 조정하는 카멜레온과 같다. 이런 복합적 상황으로서 전쟁의 지배적인 경향은 언제나 전쟁을 모순적인 3위 일체를 이룬다. 이 모순적인 3위 일체는 원초적인 폭력과 증오와 적의심을 하나로 하는데 이것은 숨겨진 자연적인 힘으로 간주된다. 다른 하나는 운과 가능성의 영역으로 이곳에서 군사적인 천재가 될 가능성인 창의적인 정치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수단으로서 이성에 종속되게 만드는 것이다.”4)

  

그리고 이 3가지 측면의 첫 번째는 인민과 관계되고 두 번째 측면은 장군과 그의 군대에 관련되며 마지막 세 번째는 정부와 관계된다.5)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의 3위 일체는 이렇게 전쟁의 정의에서 도출되어진다. 전쟁은 인민과 군대와 정부라는 요소가 결부되고 이 요소들은 다시 적개심과 같은 감정과 전쟁터의 특수한 상황과 정치적 목적이라는 요소가 결부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볼 것은 전쟁의 목적과 수단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목적과 수단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전쟁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목표를 가져야 하느냐 하는 것을 문제로 삼을 때, 우리들은 전쟁의 정치적 목적이 각각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의 정치적 목적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전쟁의 영역 박에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만약 적을 굴복시켜 우리들의 의지를 받아들이게 하는 폭력행위하고 한다면, 언제나 적을 타도 한다는 것, 즉 적의 저항력을 탈취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며, 또 그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적국의 저항력을 탈취한다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 적의 전투력을 격멸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전투력은 투쟁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로 빠뜨려야 한다. 둘째, 적의 국토는 점령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국토는 새로운 전투력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적 의지의 굴복이다. 적 전투력의 격멸과 국토의 점령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와 동시에 적의 의지를 굴복시키지 않는 한, 즉 여러 가지 힘의 긴장과 그 작용은 종결된 것으로 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만약 완전하게 적의 영토를 점령했다 하여도 새로운 투쟁이 그 내부에서 또는 동맹국의 원조를 받아 발발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6)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적의 저항력을 상실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수행에 있어서 세 가지 목표는 적 전투력을 격멸하고 영토를 점령하고 적의 저항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과 관련 해 볼 마지막입장은 직접접근법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수행과 관련해서 정책과 전략과 전술을 구별하고 있다. 정책(policy)이 전쟁의 정치적 목적을 결정하고 그 목적에 따라서 전략과 전술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전략은 군사목표를 정하는 것이고 전술은 군사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전투를 실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클라우제비츠의 개념 고리에서 전술은 전략을 위해서 전략은 정책을 위해 기능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군사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군사적인 목표와 군사전략의 개념과 군사자원 등이 고려되는 전략적 계산이 성립되게 된다. 그렇게 규정된 군사목표는 다시 ‘힘의 중심’(center of gravity)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런 중요한 사정에서 하나의 중심, 즉 힘과 운동과의 중심이 생겨 모든 것은 그 중심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공격자는 전력을 기울여 적의 그러한 중심에 총공격을 가해야 한다. 알렉산더 대왕...프리드리히 대왕 등에 있어서는 중심은 그들의 군대에 있으며, 따라서 만약 군대 자체가 타도된다면 그들의 역할은 그것으로 종말을 고했으리라. 당파로 인하여 분열되어 있는 국가에 있어서는 중심은 대개 수도에 있다. 열강국에 의존하고 있는 약소국에 있어서는 중심은 그들의 동맹군에 있다. 여러 국가가 모여 결합된 동맹에 있어서는 중심은 이해관계 측의 일치에 있다. 국민 총봉기의 경우에는 중심은 주로 지도자 개인과 여론에 있다. 따라서 공격은 각각의 경우에 중심을 이루는 곳으로 지향되어야 한다.7)

  

위에서 본 것처럼 군사력의 공격목표는 힘의 중심이 된다. 상대적국의 ‘힘의 중심’을 파악하고 이것을 공격할 때 군사전략이 성공하게 되고 이를 통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앞서 본 손자가 간접접근법을 사용하여 상대방의 가장 취약한 곳을 겨냥하고 위장과 기만을 통해서 전쟁의 승리를 얻고자 했다면 클라우제비츠는 직접접근법8)을 사용하여 힘의 중심을 공격하라는 전략을 제안했다. 힘의 중심에 집중하고 주요한 공격을 통해서 한 번의 타격으로 상대방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클라우제비츠가 언급했던 것처럼 서양의 결투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손자와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은 북한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전쟁이 단지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최근 비대칭적 도발을 걱정하는 4세대 전쟁 역시 이러한 맥락에 있다.
 

각주)-----------------
 1)강성학, “용과 사무라이의 결투 : 중(청)일 전쟁(1894-1995)의 군사력 평가” 『국제정치논총』(국제정치학회: 2005), 제 45집 4호
 2)Clausewitz (1976), pp. 75-80.
 3)Clausewitz (1976), pp. 85-86.
 4)Clausewitz (1976), pp. 87-88.
 5)Clausewitz (1976), p. 89.
 6)Clausewitz (1976), pp. 90-99. 이종학, Ibid., p.153에서 재인용
 7)Clausewitz (1976), pp. 595-596. 이종학, Ibid., pp.155-156에서 재인용
 8)클라우제비츠의 직접접근법에 대해서는 강성학, “제 1장. 21세기 군사전략론” 『전쟁신과 군사전략 : 군사전략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 선집』(서울: 리북,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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