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삼권분립과 몽테스키외(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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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삼권분립과 몽테스키외(Ⅱ)
  • 법률저널
  • 승인 2013.09.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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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몽테스키외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도록 하겠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정치철학자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원리 혹은 운영 규칙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이는 자유가 하나의 가치체계이면서 또한 하나의 정치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로서의 자유를 지키고 수호하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과거 그리스시대와 같은 고전 시대의 ‘도덕적 요구와 덕성’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보장장치를 필요로 한다.
  

몽테스키외가 ‘안전’이라고 하는 ‘소극적 자유’를 보장 받기 위해서 찾아내고자 한 해법은 자유를 지켜내는 정부형태의 발견이었다. 즉 자유를 달성할 수 있는 정부형태는 어떠한 것이며 그것은 자유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다른 정부 형태와 어떻게 구분 되는가하는 점이다. 지난 시간에 본 것처럼 그러한 정부형태는 법과 제도와 관습과 귀족과 같은 중간세력에 의한 완충장치를 가지고 있는 ‘제한된’ 정부형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부형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고대의 정치학 개론서를 들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들 수 있는 것처럼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도 (근대적)정치학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정치 체제가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고 나아가 어떤 정치 체제가 좀 더 나은 정치체제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사고는 정치 체제의 유형이 인간의 삶의 조건과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배자의 수를 기준으로 하여 왕정, 귀족정, 혼합정을 좋은 정치체제로 파악하였고 이들 체제가 타락해서 생긴 참주정, 과두정, 민주정을 나쁜 정치체제라고 보았다. 이에 비해서 몽테스키외는 지배자의 수와 같은 양적 기준이 아니라 권력행사의 방법과 같은 질적 기준을 통해서 정치 형태를 분류하고자 한다. 즉 제한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가에 따라서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으로 나뉘어진다. 이중 공화정은 다시 국민 모두가 주권을 가지는 민주정과 일부의 사람들이 주권을 보유한 귀족정으로 나뉜다.
  

이러한 정치체제는 각각의 작동원리를 가지게 된다. 공화정은 ‘덕’이, 군주정은 ‘명예’가 전제정은 ‘공포’가 체제를 움직이는 원리가 된다. 이들 중 몽테스키외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공화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선호하는 공화정은 고대 철학 속의 공화정과 다르다. 고대 공화정이 ‘도덕적 덕성’이라는 ‘덕’에 의해서 움직였다면 몽테스키외의 근대 공화정은 도덕으로부터 분리된 ‘정치적 덕성’인 ‘덕’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따라서 몽테스키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덕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해진다. 몽테스키외가 보았을 때 덕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절제와 헌신을 필요로 하는 자기 자제이자 극기심이며 이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 법과 조국에 대한 사랑이고 자신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에 대한 선호이다. 이것은 ‘이익’이라는 물질적 측면과 ‘선호’라고 하는 심리적 측면의 개념을 결합시킨 개념 구축이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 고대의 도덕적 측면의 특성과는 구분되는 정치적 특성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덕성이 과연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 개별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본성이 과연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과 자제를 강요받고 그를 따를 것인가? 공화적 덕성이 보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왜곡과 제약은 근대적인 시대에 들어와서 이미 자본의 팽창과 자유의 확대라는 조건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하나의 빛바랜 도덕적 경구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근대 공화국은 인간의 실제적 이득인 ‘부’를 ‘덕’과 일치시키는 ‘덕과 부’(virtue and wealth)의 일치가 필요한 것이다. 몽테스키외의 덕성 속에는 부를 추구함속에서 조절 되는 ‘덕과 부’가 존재한다. 이를 통해서 실제로는 절대주의 시대 속에서 강요받던 도덕적 명예에 대한 헌신에서 벋어나서 경제적 부를 획득하고 정치적 관직을 확보하기 위한 권위에의 복종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해석은 그가 정치형태에서 중요시 여겼던 귀족에 대한 강조와 맞아떨어진다.
  

몽테스키외가 정치체제를 분류하면서 항상 모범으로 삼았던 정치체제는 영국의 정치체제였다. 그는 영국의 정치체제를 좋은 정치체제로 여겼지만 그것을 최상의 정치체제로 여기지는 않았다. 자신의 조국 프랑스의 군주정 역시 어떠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면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좋은 정치 체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한정부의 성격’을 보유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몽테스키외가 영국의 정부 형태를 설명하면서 보여주는 것은 권력분립, 혼합정부, 균형법제, 견제와 균형이라는 상호 연관된 정치 이론들이다. 이중에서 더 중요한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에 관해 살펴봄으로써 제한된 정부와 자유의 확보와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한다.
  

사실 권력 분립은 몽테스키외가 선구자는 아니다. 이미 로크에 의한 이권분립론이 존재했다. 하지만 사법권을 하나의 독자적인 것으로 분리해낸 것은 몽테스키외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과 달리 사법권은 집행된 법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삼권 분립이 없다면 자유의 실제적 보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만일 입법자가 곧 그것을 집행하는 집행자가 된다거나 입법자가 자신이 만든 법을 가지고 판단하는 재판관이 된다면 자유란 존재하기 어려워 질 것이다. 또한 집행을 하는 이가 집행의 자의성을 자신이 판단한다면 한 사람에게 과도한 힘을 부여함으로써 결국 자유를 압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 혹은 한 단체가 이 세 가지 힘을 공유한다면 안전과 자유는 상실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삼권분립은 권력의 기능을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기능적 분화는 각 기능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리가 권력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한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 자체가 곧바로 자유를 보장해 준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사회세력의 힘의 반영이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세력간의 힘의 균형이 온건한 정책방향을 제시하듯 권력들 간에도 힘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즉 입법, 행정, 사법 간에도 권력의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힘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힘의 독자적이고 전제적 행사를 막기 위해서 권력간의 견제가 필요하다. 즉 각 권력은 상대 권력의 행사에 관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힘의 집중현상과 그로 인한 독단화 경향을 저지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권력분립의 원칙’과 상충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는 자유의 확보라는 공통된 목표 속에서 절충될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을 이어받은 미국 헌법의 창시자들과 한국에의 함의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2005년 1월 3일/ 재인용 2013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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