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뇌물요구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합헌
공무원의 뇌물요구행위에 대한 가중처벌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9일 재판관 8(합헌) 대 1(위헌)의 의견으로 뇌물을 요구한 액수가 1억 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 구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 중 형법 제129조 제1항의 “요구”에 관한 부분은 책임과 형벌간의 비례원칙이나 형벌체계상의 균형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법정형의 종류와 범위의 선택은 그 범죄의 죄질과 보호법익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 입법 당시의 시대적 상황, 국민 일반의 가치관 내지 법감정 그리고 범죄예방을 위한 형사정책적 측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법자가 결정할 사항으로서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뇌물죄가 국가기능의 공정성 또는 공직의 불가매수성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으로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병폐는 수뢰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중된다는 점에서 볼 때, 수뢰액의 다과를 뇌물죄 경중을 가리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나아가 “입법자가 법정형 책정에 관한 여러 가지 요소의 종합적 고려에 따라 법률 그 자체로 법관에 의한 양형재량의 범위를 좁혀 놓아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별도의 법률상 감경사유가 없는 한 집행유예의 선고를 할 수 없도록 그 법정형의 하한을 높여 놓았다 하더라도 법관의 양형재량의 범위를 과도하게 제한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미 헌재는 1995. 4. 20. 93헌바40 결정 이래 계속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하여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왔다.(2000헌바91, 2003헌바118, 2005헌바35, 2009헌바354 등).
따라서 이날 결정은, 과거 결정을 변경할 만한 새로운 사정이 없고 그대로 타당하므로 이를 원용했다.
한편 청구인은 뇌물요구는 사실상 뇌물수수죄의 예비 또는 미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죄질이나 가벌성이 미약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헌재는 “뇌물죄의 보호법익은 국가기능의 공정성 또는 공직의 불가매수성이므로 공무원이 금원을 현실적으로 수수하였는지 여부는 범죄의 성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또 뇌물을 수수함에 있어 언제나 뇌물의 요구가 수반되는 것은 아니므로 뇌물요구를 뇌물수수의 미수행위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고 공무원이 나서서 뇌물을 요구하는 행위의 불법성이 단순히 공여자가 제공하는 뇌물을 수수하는 행위의 불법성보다 반드시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뇌물을 요구한 액수가 많을수록 요구자의 공무와 증뢰자의 업무 사이의 연관성이나 잠재된 이권의 실현가능성 등이 커지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병폐와 피해가 심화될 수 있다”며 “따라서 뇌물로서 요구한 액수가 형벌의 범위를 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형법상 뇌물죄와 달리 그 뇌물이 현재 담당하고 있는 직무에 관한 것인지 또는 그 뇌물로 인한 부정처사가 있었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동일하게 처벌하고 있다”면서 “‘1억 원’ 이상을 뇌물로 요구, 약속, 수수하였다면 국가기능의 공정성과 직무수행의 불가매수성에 대한 침해는 이미 심각하게 이루어졌다는 입법자의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이러한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정미 재판관은 “뇌물요구액이 1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범행의 동기, 실제 수수가능성, 범행 후 정황 등 죄질과 상관없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법관으로 하여금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별도의 법률상 감경사유가 없는 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법관의 양형선택의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이라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한다고 주장했다.
이 재판관은 또 형법의 체계균형성에도 반해 평등원칙에도 위반된다는 견해를 냈다.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과거 결정은 ‘뇌물수수’, ‘뇌물약속’이 문제되었던 반면 이번 심판청구에서는 ‘뇌물요구’가 문제된 사안”이라며 “뇌물수수에 이르지 않고 뇌물요구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그 요구액이 1억 원 이상인 경우에 가중처벌규정에 따라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법정형이 부과되고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없도록 한 것은 입법자의 결단에 의한 것으로 입법재량 범위 내에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OO시 환경국 하수관리과 소속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A는 2009년 5월 甲에게 토지의 구거용도를 폐지해 주는 대가로 3억 원을 요구했고 그 후 9월경 1억 원을 교부받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죄로 기소됐다.
A는 2011년 10월 수원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벌금 3억 원을 선고받았고 2012년 4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2013년 6월 대법원에서 위 무죄판결이 파기환송되어 현재 서울고등법원(2013노2025)에 재판 계속 중이다.
A는 1심 재판 계속 중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중 ‘요구’ 부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다가 기각되자 2011년 12월 헌법소원 제기했다.
이성진 기자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