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만 왕?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근로자도 보호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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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만 왕?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근로자도 보호받아야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13.08.2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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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랑 변호사(법무법인 세창)

 

최근 한국사회에 “갑(甲)-을(乙) 관계”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이 그 이면에 감춰진 서비스 업계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이다. 한동안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모 대기업 상무의 항공기내 추태사건에서도 승객의 무리한 요구와 폭언에도 상냥히 응대해야만 하는 항공기 승무원들의 감정노동이 이슈가 되었고, 최근 민원관련 업무과중에 시달린 복지공무원들의 우울증과 연이은 자살의 안타까운 소식들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정확히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주로 고객이나 민원을 상대하는 직원·공무원들이 계속되는 고객·민원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고 일을 하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사건들은 그 정도가 해당 근로자들이 수인할 수 있는 한도를 넘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거에는 업종의 특성상 감내하여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이러한 “감정노동”과 이로 인한 피해도 이제는 법적으로 판단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손해로 인정되어 가고 있는 경향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러한 판례의 취지에 따르면 불합리한 수준의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갑-을 관계가 더 이상 당연히 수인하여야 할 것으로 방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난 6월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는 전화상담 고객센터에서 업무를 수행하던 조모씨가 이러한 감정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원고 일부승소판결을 하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배우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하여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 이른바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근로자의 경우 고객에게 즐거움 같은 감정적인 반응을 주도록 요구되는 동시에 사용자로부터 감정 활동의 통제, 실적 향상 및 고객친절에 대한 지속적인 압력을 받고 있어 이로 인한 우울증, 대인 기피증 등 직무 스트레스성 직업병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고 할 것”이라고 하며, “감정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로서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폭언에 대하여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하고, 발생사안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하여 근로자로 하여금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고객과 사이에 근로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리감독자로서 개입하여 분쟁의 원인을 밝히는 등 중재역할을 다하여야 하고, 고객의 위신을 높이는 데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사실관계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근로자에게 무조건적인 사과를 지시함으로써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나아가 위 사건에서 피고 회사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폭언에 대하여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고객의 입장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오히려 근로자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사과를 지시함으로써 근로자인 원고로 하여금 무력감,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었고, 이는 사용자로서 당연히 부담하는 보호의무 내지 배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는 이른바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고객이나 민원인들을 상대로 겪는 어려움과 정신적 손해에 있어서 이제 단순히 갑-을 관계에 따른 불가피한 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그 근로자들을 고용한 사용자들에게 피용자인 근로자들을 수인한도를 넘는 감정노동에서 보호하고 이들의 심리적인 휴식을 위해 배려할 것을 법적인 의무로 판단하였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이러한 근로자와 고객 혹은 민원인 사이의 감정노동 문제가 단순히 법적인 제한과 규제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근본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관계의 배려가 무엇보다도 선결할  문제이다. 그러나 고객과 회사 사이에서 수인한도를 넘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감정노동자들에게는 이와 같이 사용자를 통하여 최소한의 법적인 보호와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일단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법무법인 세창 뉴스레터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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