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왜 정치학공부를 하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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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왜 정치학공부를 하는가?” (2)
  • 법률저널
  • 승인 2013.08.2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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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일본의 사례는 두 가지 점에서 정치학이 필요한 공간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방향성의 제시이다. 정치학이 다루는 현상인 ‘정치’는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른 가치를 가지고 모여서 살고 있는 공동체는 공동체 전체가 지향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공동체에 질서라는 것도 생기고 공동체의 소속감과 목표가 생긴다. 가족공동체를 예로 들어보자. 어느 가족이 있다고 하면 가족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건강, 화목함, 부, 사회적 성공, 종교적 충만감과 같은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목적이 있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몫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 건강을 위해서 각자 해야 하는 운동부터 가족들 모두가 함께하는 활동까지.
  

그런데 가족들 간에 목표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생긴다. 조부모에서 주도권이 부모에게로 넘어갈 때나 부모세대에서 자식세대로 주도권이나 경제력이 넘어갈 때나 결혼문제와 같이 외부의 다른 가족과 연관될 때와 같은 경우에 의견이 조화되지 않은 일이 생긴다. 이때 가족의 가장이 가진 리더십이 흔들리게 된다. 그런 경우 이제 리더십 교체나 리더십재구축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마련된다. 혼내기나 가족 간의 대화를 시도하거나 여행가기와 같은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가족 목표를 수정하거나 재조정하게 된다.
  

이러한 원리가 사회공동체에도 똑 같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 된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공동체의식 없이 자신의 요구만을 주장하고 타협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는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사회전체의 의견과 목표를 확인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것을 선거를 통해서 수행한다. 진보와 보수 혹은 성장과 환경 중에서 어떤 가치를 더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지에 대한 “주기적”인 경쟁구도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다른 가치관들 간의 투쟁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면 타협을 통해 진일보하려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전자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투쟁’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것이 정치적 현실주의의 입장이다. 반면에 후자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타협’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것이 정치적 이상주의 혹은 자유주의입장이다.
  

다시 일본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일본은 자신들의 전투경험과 독일인들의 전투경험에서 교훈을 다르게 얻었다. 칭다오에서 얻은 것은 물자가 보장되지 않는 전쟁은 패한다는 것이었고 타넨베르크에서는 부족한 병력과 물자도 현명한 결단과 강인한 결의만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얻었다. 일본은 후자에 기울어 갔고 이것을 일본군부의 전략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는 일본의 전략으로 삼았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 중에서 이성을 지배하는 힘과 가슴을 지배하는 힘이 다르다고 했다. 이성은 통제해야 하며 가슴은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성이 가슴을 지배하는 것이 정의로우면서도 순리에 맞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이성을 지배할 머리의 역할을 용기있는 군인들이 했다. 그 머리가 되어야 할 정치를 수행할 사람들이 없었다. 천황은 자신의 역량이 증대되기를 바라면서도 언제 암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았다. 일본 정치인들 역시 우익에 의한 암살의 위협 속에 살았고 전시상황에서 그들에게 권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1920년대와 1930년대 정치는 머리가 정해주어야 할 것을 정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가 이래서는 안된다는 반면교사를 제공해준다.
  

일본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두 번째는 정치는 타협이라는 점이다. 정치가 무조건 타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타협의 여지를 가지고 있고 어느 경우에는 타협을 거부할 수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는 타협의 여지가 줄었을 때 과연 이 국가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고민하게 되는 1940년 이후 일본은 미국에게 항복하거나 전쟁을 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항복대신에 전쟁을 선택했다.
  

어느 연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둘 사이에 결혼이 아니라면 무조건 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고 진척시켜 나갈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항복하거나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전사의 논리이다. 노예로 살거나 아니면 죽겠다는 논리는 고대에서부터 모든 전쟁의 기본적인 주제였다. 하지만 전쟁이 결정되기 전까지 모든 사회관계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항복과 전쟁 사이에 다양한 대응방식들이 개발되는 것이다.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본 것은 일본인들이 1920년대 이후 어떤 사건에서 교훈을 얻을 것이고 어떤 전략을 개발할 것인가라는 “판단의 문제”였다. 지금 두 번째로 본 일본이 항복과 전쟁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이 길을 따른 것은 “전략부재의 문제”였다. 이 역시 판단의 문제였지만 두 가지 판단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다시 “왜 정치학공부를 하는가?”라는 도발적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정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사례에서 배운 두 가지 교훈을 가져온다면 첫 번째는 판단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전략의 문제이다. 21세기이고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적 조건을 따져볼 때 대한민국 역시 다양한 경험들로부터 미래 한국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판단의 순간에 직면해있다. 북한에 대한 정책에서 대북정책 기조와 통일과의 방안 모색이 한 가지 중요한 판단의 사례라면 미국과의 관계와 함께 중국에 대한 관계를 어떻게 조정해갈 것인지 역시 중요한 판단의 사례이다. 미래를 위해서 한국의 정부형태를 대통령제로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의원내각제로 바꿀 것인지 역시 판단이 필요한 주제이다. 
  

두 번째로 정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전략을 만들어보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첫 번째 작업이 거대한 그림 속에서 방향성을 정하는 문제라면 두 번째 작업은 매우 구체적인 전략들을 생각해보고 현실화해보는 것이다. 일반적인(general) 원론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각론의 세부적인(specific) 사안들이 필요한 것이다. 악마는 각론에 산다고 했다. 천사들이 있는 원론이 아니라 악마가 숨쉬고 있는 각론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가 결국 대안을 제시하게 해줄 것이다. 수많은 이견들이 있고 반박과 고성이 오가면서 생계와 자존심이 결린 이 각론의 싸움터에서 그래도 좀 더 버틸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정치학이 기대하는 두 번째 공부이유이다.
  

전략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생각해보자. 필자의 지도교수이신 강성학 교수님께서 『새우와 고래싸움』의 “제5장. 한국 외교정책의 특성: 편승에서 쿼바디스로?”에서 던지신 질문은 도대체 편승(bandwagoning)외에 한국의 외교정책적 대안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동안 대미편승중심정책에서 한국은 어떤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인지? 만약 있다고 하면 어떤 방안이 되는지 하는 것이다. 주변 강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편승이 아닌 헷징(hedging)정책이나 균형화정책이나 중립국외교정책 방안과 같은 방안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가?
  

악마는 각론에 숨어있다는 말은 타당하다. 모두가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원론에서 대한민국이 잘되자고 하는데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부국강병을 이야기하고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균형잡힌 외교를 하자고 하는데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떻게(how)”라는 문제로 가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누군가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잘해야지”라고 답할 것이다. 누구의 말이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어필하게 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일본이 왜 1941년 12월 7일(미국시간)에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하여 자국을 패전으로 가게 했는지가 자명한 것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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