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왜 정치학공부를 하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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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왜 정치학공부를 하는가?” (1)
  • 법률저널
  • 승인 2013.08.1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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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이 공격적인 질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선 이 질문이 누구에게로 향해있는가가 중요하다. 즉 이 질문에 답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이 질문을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에게 했을 때와 대학원생에게 했을 때와 가르치는 사람에게 했을 때 모두 답이 다르게 나올 것이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전공은 아니지만 수험적 필요에 의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대답은 다를 것이다. 정치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위의 질문을 미국사람에게 했을 때와 한국 사람에게 했을 때 역시 다를 것이다. 19세기 조선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에게 했을 때나 지금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했을 때도 답변은 다를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부의 목표라는 개인적인 차원의 조건에서도 다르겠고 국가라는 공간적 조건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고 시간이라는 조건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정치학공부의 ‘차이’를 구성한다.
  

그런데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보편적인 답이 있다고 보고 그 답을 찾아왔다. 정치학을 하는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처럼 철학자가 군주가 되거나 군주를 철학자가 되게 하는 것이 되었든 칸트처럼 인간들 사이에서 이성을 통한 법 규칙을 구성하든 현실에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했고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 철학자들은 정치학 공부에서 ‘동일성’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공부에 있어서 ‘차이’나 ‘동일성’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가 오늘 주제의 핵심은 아니다. 동일하고 동질적인 ‘본질(essence)’을 찾아 나선 철학자나 시간과 공간적 차이를 밝혀내려는 사회과학자 중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너무나 지난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것을 두고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왜 정치학 공부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이유는 매우 현실적인데 있다. 이 질문의 대상이 아니라 이 질문을 만든 주체의 관점에서 “현실적”이다. 필자는 가끔 필자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왜 정치학공부를 하는가?”라고. 처음에는 가르치기 위해서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정치학의 맛을 조금씩 알게 되어 지금은 정치학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해서 굳이 질문을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지금은 질문이 바뀌어 “정치학을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게 되었다.
  

질문을 바꾸어 필자 자신에게가 아니라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도대체 왜 정치학 공부를 하는지 본인에게 질문을 해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오지랖 넓게 굳이 왜 자신의 문제도 아닌데 걱정을 하는가하고 반문을 할지 모르겠다. 지난 10년을 수험가에게 있으면서 가장 많이 본 실패의 사례들은 이 질문에 답을 못 찾은 경우들이다. 역사속으로 지나간 외무고시나 5급 공채로 바뀐 행정고시 모두에서 정치학 혹은 국제정치학에서 쓴 고배를 마신 많은 이들은 위의 질문에 답을 못 찾고 수험가를 떠났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때 수험생들은 유사한 면이 많다. 비슷한 고민을 수험시작하면서 한다. 그리고 2년, 3년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시행착오를 거친다. 개인적으로 10년쯤 보니 수험생들의 이러한 시행착오가 되풀이되어 반복되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게 보인다. 수험생과 다른 수험생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험공부라는 것이 제도적으로 후학(?)을 길러내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객관화해서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국제정치학을 포함해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경험하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좁힐 필요가 있다. 그렇게 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수험생들이 왜 이 과목을 공부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먼저 고려할 것은 “(국제)정치학은 무엇을 원하는 학문인가?”하는 점이다.
  

(국제)정치가 무엇이며 그것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사례를 가지고 생각해보자. 일본은 1차 대전이 끝날 때 전승국이었다. 독일을 상대로 하여 칭다오전투를 수행했고 이후 중국에게 21개 요구를 관철시켰다. 그런데 1차 대전은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전쟁을 인류가 수행했다. 그것은 총력전으로 경제력과 과학 기술력과 인구 등 모든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동원하여 얼마나 오랫동안 물량공세로 나갈 수 있는가에 의해서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전쟁으로 전쟁의 양상이 달라진 것이다. 일본은 이 전쟁을 거치면서 자신이 강대국을 대상으로 총력전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 총력전을 수행하기에 일본의 공업능력과 자원은 너무나도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수행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대전까지. 일본은 아시아지역에서 강자가 되고 싶었고 이렇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일본은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부족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목표는 1920년대부터 바뀌고 있었다. 특히 군부에서는 단기전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추종의식이 생겨나고 있었다. 1차 대전에서 독일이 수행한 타넨베르크전투는 13만 명의 독일군이 50만 명의 러시아 군에 대해서 측면공격을 시도함으로서 러시아군대를 완벽하게 도륙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이 전투를 보고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잠재적인 능력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정신력으로 강력하게 무장하고 측면공격을 가하여 전쟁을 단기적으로 끝낼 수 있다면 일본도 일본보다 강력한 나라와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일본 군부는 이러한 단기전과 결전과 포위섬멸전과 정신력에 기반을 둔 전투에 대한 맹신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군부는 이것을 『통수강령』과 같은 전쟁지휘 매뉴얼에 넣게 되었다.
  

그런데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일본 군부는 민간정치인들을 몰아내고 천황을 정신적인 지주로 옹립하면서 정치무대를 장악하게 되었다. 군부는 승패로 이야기하는 조직이다. 군인에게 타협은 없다. 외부 적의 도전에 대해 응징하고 반격하는 것이 조직의 목적이기 때문에 외교적 타협과 협상은 없다. 클라우제비츠가 이야기 한 대로 이성이 통제하는 조직이 아니라 운에 의해 좌우되는 조직인 것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승패가 갈리게 될지 모르지만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용기만이 생사를 가른다.
  

일본이 1931년 이후 벌인 위험한 확장정책과 침략은 모두 군부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것도 군의 상층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중견간부들이 문제를 만들고 상부조직은 이를 따라가면서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결국 일본은 단기전에 대한 환상과 자신들의 목표를 (미국이)이해해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오인(misperception)에 빠져 미국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일본 수상이었던 도조 히데키가 했던 말처럼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일본은 미국을 향해 뛰어들었던 것이다.
  

일본 사례에서 정치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일본 사례는 정치를 몰아내고 승패의 논리인 군부의 논리만이 작동할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본은 1차 대전에서 독일과 싸우면서 근대전쟁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을 명확히 인지했다. 칭다오전투는 일본 군부가 근대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 전투이다. 러일전쟁에서 보여주었던 백병전이 아닌 포격전 중심의 근대물자전쟁을 실제 시험했던 일본은 향후 전쟁의 양상을 예리하게 파악했다. 그런데 왜 같은 전쟁에서 일본은 자신들이 칭다오에서 배운 것에 기대지 않고 독일이 수행한 전쟁수행방식을 따르게 된 것일까? 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아닌 다른 이의 경험에 자국의 운명을 걸었던 것일까?
  

일본이 배운 것 중 칭다오에서 배운 것이 맞았다. 한편으로 일본이 독일의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배운 것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일본은 부족한 자원을 적게 쓰면서 단기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전쟁전략을 잘못된 상대에게 적용했던 것이다. 일본이 1931년부터 상대했던 중국이나 1941년부터 상대했던 미국은 일본의 단기전과 공세전략에 무너질 나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교훈을 얻었지만 잘못되게 적용함으로서 국가를 파멸시켰다. 바로 여기에 정치학의 공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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