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개정형법, 어떻게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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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개정형법, 어떻게 달라졌나
  • 김현
  • 승인 2013.08.0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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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1991년에 5년간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느낀 것이 우리 법원의 양형이 선진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너무 약하고 특히 성범죄의 양형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점이었다. 미국에서는 성범죄자, 특히 아동성범죄자들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정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친고죄 규정에 따라 성범죄자가 피해자와 합의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아예 처벌을 받지도 않거나 혹은 불과 몇 년의 형만을 살고 다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도 당시만 해도 여성들이 우리나라의 밤길을 안심하고 걸을 정도였는데, 최근 20년 동안 상황은 급변했다. 음란물의 범람, 물질주의에 경사된 나머지 인간의 가치를 경시하는 풍조에 전통적인 여성경시의 분위기가 겹쳐 딸자식을 가진 부모는 두렵기만 하다. 2008년 전 국민을 분노케 했던 조두순 사건부터 최근 친자녀 성폭행 및 장애부녀자 성폭행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성폭력 범죄가 빈발하자 드디어 형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요청이 드세어졌고, 이 결과 2013. 6. 9.부터 개정형법의 성폭력 범죄 처벌규정이 시행되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을 폐지한 것은 잘한 일이다. 친고죄는 피해자나 법률이 정한 자의 고소가 있어야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로서 간통죄, 강간죄, 미성년자 간음죄, 사자명예훼손죄, 모욕죄가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피해자나 가족의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고, 특히 성범죄의 경우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다시 증언대에 올라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을 강요받으며 이미 상처를 입은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2차적인 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가해자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 합의를 강요하거나 협박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합의없이 처벌을 원할 경우 추후에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을 전면 폐지하여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를 하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성범죄율은 2011년 기준 전세계에서 16위라는 비교적 낮은 순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절대 우리나라에서 성범죄 발생율이 높지 않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결과가 아니다. 부끄럽게도 지금까지는 ‘합의를 하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친고죄 규정 뒤에 숨겨진 성범죄와 가해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또한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로 한정된 것과 달리 개정 형법은 객체를 ‘사람’으로 확대하여 성인남성도 피해자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남자가 남자를 상대로 한 경우나 여자가 남자를 강간한 경우에도 처벌가능해진 것이다.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싶지만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 여교수가 수업 중 남녀학생 10여 명을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사례처럼 실제로 남성을 상대로 한 여성의 성범죄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성폭력 범죄 가해자를 판단함에 있어 반드시 남녀를 나누어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본 개정사항 역시 사회적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모든 성폭력 범죄에 대해 술이나 약물에 취하였다는 이유로 범행에 대한 형량을 감경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13세 미만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에 대한 강간 등에만 제한적으로 인정했던 공소시효 배제를 강간추행에까지 확대하고 강간살인에 대하여는 아예 공소시효 자체를 폐지했다. 아동·청소년 등장 음란물을 소지한 경우에는 기존 벌금형 외에 징역형까지 가능하도록 법정형을 강화했으며, 모든 성범죄 피해자에 대하여 국선변호인을 지원하여 성범죄 피해자 보호와 방어권 확보를 위한 노력도 엿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강경한 조치 속에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대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특히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과정 혹은 재판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이 2차적인 정신적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한 조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수사과정이 언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피해자들의 신상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됨으로써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또 한 번의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된다. 지난 5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표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제2차 피해를 야기하는 형사 법정의 현실을 개선하라”는 내용의 성명서에서도 역시 법원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12세의 지적장애 여아에게 2시간에 걸쳐 증인신문을 받도록 한 사건을 예로 들고 있는데, 이로 인해 어린 피해자가 되새겼을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러한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2차적 피해발생 문제는 친고죄 제도가 폐지되고 피해자의 고소여부와 상관없이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지면서 더욱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와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


갈수록 더욱 흉악해 지는 강력 성폭력 범죄에 대항하기 위한 이번 형법 개정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그와 더불어 성범죄의 피해자를 사려깊게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하여는 아직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이를 위한 국가의 보다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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