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외무고시 합격수기-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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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외무고시 합격수기-기적
  • 법률저널
  • 승인 2003.07.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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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우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재
현재 공익근무요원

▶지난호에 이어


3. 공익근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무모한 결정이었다. 그때 재검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늦게 현역으로 입대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더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그 해 10월에 재검신청이 받아 들여져서 나는 공익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서울에서 공익근무를 할 수 있게끔 아예 서울로 주소를 옮겼다. 서울에서 근무를 해야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고, 시험을 보기에도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2001년 5월 훈련소에 들어가기까지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한편으로 나는 두려웠다. 공익근무를 하면서 공부를 정말로 할 수 있을까? 정신나간 짓이 아닐까? 기껏해야 저녁에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인데, 피곤해서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공부를 한다고 해도 혼자서 해야 할 텐데, 이게 가능성이 있을까? 집에 돈 한 푼 없는데 서울에서 생활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공익근무요원들은 구타 등 많은 고충에 시달리기도 한다는데, 그렇게 되면 어떡할까? 실로 자나깨나 그 생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2001년 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온갖 불안감, 고통, 슬픔, 미움, 그리고 야망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끌어안고 나는 숙고를 거듭했다. 그리고 나는 훌쩍 커 버렸다.
 
2001년 6월, 훈련소를 마치고 나온 나는 행정자치부에서 공익근무를 하게 되었다. 처음 근무지에 출근하고 돌아온 날 저녁,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 지 전혀 알 수 없어 불안했지만, 나는 내 모든 것을 불태우기로 결심했다. 1년 3개월간의 공백 끝에 나의 본격적인 고시공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4. 공익근무와 고시


나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으므로, 내가 합격하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완벽하게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한치의 오차도 없게끔 모든 요소를 고려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근무지에서 틈틈이 공부도 할 수 있었고, 다른 곳에서 일하는 공익요원들처럼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크게 시달리지 않고 비교적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의 생활은 그야말로 생사를 건 투쟁이었다. 틈만 나면 시간을 아껴서 책을 보았다. 근무시간 내내 눈치보기의 연속이었는데,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퇴근하고 나서는 학교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고 곧장 도서관으로 갔다. 11시까지 공부를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1시까지 책을 보았다. 그렇게 하루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면 30초만에 잠이 들었다.
 
나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의 감정에는 예전과 같은 기복이 없었고, 공부가 무엇인지 정말로 알게 되었다. 무슨 과목을 공부하건, 가급적 한번에 완전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 보편적으로 인간이 가진 자연적 이성과 연결시켰다. 또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의 의식의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며 머리 속에 집어 넣었다. 그러면서 끝없는 열정으로 나의 지친 몸을 이끌었다.

이 시기는 힘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마음이 편했던 적이 이전에는 없었다. 학교 다닐 때보다도 오히려 부담이 적었고 더 즐거웠다. 또한 공익근무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고 밥도 제 때에 먹는 등 어쩔 수 없이 규칙적인 생활이 이루어졌으므로, 나의 만족감은 예전에 학교 다니면서 공부할 때보다 훨씬 컸다. 대략 가을쯤 되자 합격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2002년 2월, 1주일간 휴가를 내고 1차 시험을 보았다. 커트라인은 83점이었고, 나는 88점으로 합격했다.


5. 2차 시험

1차 시험이 끝나고 한 달간은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2차 시험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2002년 2차 시험은 영어가 85.66인 것 외에 다른 과목들은 형편없었다.
 
여자친구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2002년 한 해는 전년보다 더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자주 만나서 노는 바람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이 해는 예년과는 달리 공익근무가 훨씬 더 버겁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내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고 끼니를 굶는 일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가장 견딜 수 없던 것은, 책 살 돈이 없어서 꼭 사야 하는 책들인데도 발만 동동 구르던 일이다. 그러다가 늦게서야 책을 사서는 허겁지겁 보곤 했다. 평생 할 고생을 이때 다 한 것 같다.
 
2차 공부는 처음 해 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경제학은 무슨 책을 봐야 할지 몰라서 한참이나 시간낭비를 했고, 선택과목은 몇 달을 고민하다가 국제사법으로 선택하였다. 독일어는 12월까지는 문법을 공부하고 나머지 석 달간은 단어를 중점적으로 공부했다. 이런 과목들을 공부하는 것 외에는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국제정치학이나 국제법은 오고 가며 지하철 안에서 보아야 했다. 기껏해야 하루에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매일 그렇게 공부하니 꽤 도움이 되었다.
 
답안지 작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좀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주위에는 물어볼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답안지를 이렇게 저렇게 써 가며 감을 잡아 나갔다. 답안지를 쓸 때 양면에 모두 쓴다는 것은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시험에 확실하게 합격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보기 전에 자신이 합격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확신이 생길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시험은 붙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나는 2002년 겨울 쯤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있을 수 있는 요소를 모두 생각해서 수백 번도 넘게 계산을 해 보았다. 이변이 없는 한 합격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금년 4월 치러진 2차 시험은 시험기간 내내 불면증에 시달린 것 이외에는 대체로 무난하게 치렀다. 시험이 끝나고서는 합격을 확신했으므로 마음 놓고 놀았다. 그런데 최종합격한 후 점수를 알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점수가 훨씬 낮게 나와서 아찔했다.


6. 공부방법


누구에게나 통하는 공부방법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각자 자신의 성격이나 장단점을 알고 그에 맞는 나름대로의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일단 계획을 세웠으면 우직하게 실천해야 하며, 전략의 흠결은 끊임 없이 보완해 나가야 한다.
 
1,2,3차 시험을 모두 공익근무를 하면서 치른 나에게는 떨치기 힘든 불안감이 따라다녔다. 학원수업도 듣지 못 하고 스터디나 모의고사도 할 수 없는 나에게 승산이 있을지, 서브노트도 단권화도 하지 못했는데 막판에 가서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것인지, 이렇게 엉터리처럼 공부해도 되는 시험인지 등등 머리 속이 복잡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원이나 스터디는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공부란 결국 자기 혼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서 해야 하는 다른 활동과는 그 성질이 다른 것이다.
 
영어의 경우 Cambridge에서 나온 English Grammer가 적당한 것 같다. 시중에 수많은 책이 있지만 이만한 책을 보지 못 했다. 단어는 Word Smart Vocabulary가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영자신문을 일주일에 한두 개 사서 꾸준히 읽는 것도 영어감각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외에 Henry Kissinger의 Diplomacy나 Akehurst의 국제법 교과서 등은 읽으면 영어 뿐만 아니라 해당 과목에도 도움이 되므로 추천하고 싶다.
 
국제정치학은 약 30권에 이를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는데, 흔히 거론되는 몇 권만 읽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실제 시험에서는, 물론 암기해서 얻은 지식도 중요하지만 정치학적 사고능력과 정치를 바라보는 안목을 갖추고 있는가를 주로 평가하는 것 같다.
 
국제법 교과서로는 이중범?이병조 2人공저의 <국제법신강>, Akehurst의 <Modern Inroduction to International Law>, 이한기의 <국제법강의>, 김대순의 <국제법론>, 최승환의 <국제경제법> 등을 읽었고 마무리는 1,2차 모두 정영진의 <국제법>으로 하였다. 사실 국제경제법은 정영진의 국제법책으로 상당부분 커버 가능하다고 본다. 더 이상 욕심을 내어 따로 국제경제법 교과서를 보면 다른 과목을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다.
 
경제학은 부끄럽지만, 미시는 경제원론 미시부분만 보았고 거시는 정운찬의 <거시경제론>, 그리고 국제경제는 김인준의 <국제경제학>과 8인공저 <국제경제학원론>을 보았다. 이 책들을 읽기에도 벅찬지라 다른 교재는 감히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김인준 교수님의 책은 한번 훑듯이 읽고는 8인 공저로 바꾸어서 이를 다시 2회독 했다. 국제경제학 교과서로는 분량은 작아도(약 400페이지) 8인공저가 오히려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실제 시험에서는 세부적인 이론은 물어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악전고투하시는 수험생 여러분들에게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반드시 자신감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다. 조금 엉뚱한 소리 같지만, 사람의 두뇌는 적당한 자신감이 있을 때 가장 쉽게 외부정보를 받아들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루종일 보고 듣는 정보의 양은 책 몇 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엄청나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거의 다 기억한다. 이는 부담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공부를 할 때 부담을 갖거나 자신감을 잃으면 무의식중에 두뇌에서 저항이 생겨 공부하는 내용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된다. 그러니 아무쪼록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에 임하시기를 바란다.


7. 글을 마치며

 
이제 곧 7월인데, 이렇게 여름이 되니 꼭 1년 전에 땀 흘리며 공부하던 것이 생각난다. 지난 수 년 간은 물론 힘들었지만, 그 때에도 나는 내가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상황이야 여러 가지로 어렵지만, 결국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했기 때문이다.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부족한 나의 글이 읽으신 분들께 공연히 시간낭비만 된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다. 여러분 모두에게 건투를 빌며 뜻하는 일 다 이루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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