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밖의 노동이야기 ‘간접고용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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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노동이야기 ‘간접고용 노동자’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13.07.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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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인신매매(人身賣買), 말 그대로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인신매매가 언젠가부터 뉴스에서 사라졌다. 아주 가끔 성 착취 목적의 이주여성에 관한 인신매매 뉴스나 장기매매를 이유로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도시괴담 수준의 이야기만 오르내릴 뿐이다. 그러니까 인신매매는 후진국에나 존재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아주 이례적인 사건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가까이에서 인신매매를 경험하고 있다. 너무 흔하고 많아서 인신매매인지조차 모르는 무감각 상태에 있을 뿐이다. 현대판 인신매매, 바로 간접고용이 그것이다.


간접고용이란 사용사업주와 고용사업주 간의 인신에 대한 거래로서, 사용자가 필요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다른 사용자가 고용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파견, 업무위탁, 노무도급, 사내하청, 외주/분사, 근로자공급 등 용어는 다양하지만, 실제 사용하는 사업주가 근로조건 등 노동관계상의 모든 내용에 실질적인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가지면서도 형식적으로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상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점에 간접고용의 특징이 있다. 이처럼 간접고용에서는 고용관계와 사용관계가 갈라지고, 노동자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가 정작 책임은 안 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은 간접고용을 금지하고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해 왔다. 지금도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는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직업안정법 역시 제정 당시에는 유료직업소개업을 금지했다. 그러나 유료직업소개업이 가능하도록 직업안정법이 개정되고 1997년 파견법이 제정되면서 간접고용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청소, 경비, 시설 관리에서 시작된 간접고용이 제조업, 서비스업, 유통업, 숙박업, 학교,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생산, 전산, 텔레마케터, 콜센터, 계산, 업무보조, 영업 등 전방위로 간접고용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간접고용의 가장 큰 문제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는 것이다. 사용사업주와 고용사업주는 보통 1년 또는 2년의 기간을 특정하여 업무위탁, 도급, 파견 등의 계약을 체결한다. 따라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로 기간도 1년, 2년의 단기로 정해진다. 또한, 사용사업주가 고용사업주와 체결한 계약을 해지하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해고 상태에 놓인다. 홍익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바로 다음 날 홍익대학교가 청소경비 위탁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순식간에 실업 상태에 놓인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사업주인 청소경비 용역업체가 이들에게 다른 일할 자리를 마련해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바로 함정이 있다. 이들은 애초부터 홍익대학교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을 해 오다가 홍익대학교가 청소경비 업무를 아웃소싱/외주화하면서 졸지에 용역업체 소속 직원으로 둔갑한 것이다. 즉 이들은 줄곧 홍익대학교에서 일해 왔고 고용사업주는 다른 일자리를 마련해 줄 능력도, 의사도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헌법에서 정한 노동3권을 제대로 누리기가 어렵다. 홍익대학교 사례에서처럼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사용사업주는 고용사업주와 체결한 계약을 해지해버린다. 다행히 계약이 해지되지 않아서 노동조합 설립이 무사히 끝나더라도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사용사업주가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교섭과 투쟁은 방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곳은 사용사업주의 사업장인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사용사업주는 시설관리권 또는 시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사업장 안에서는 파업을 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경우가 많다. GM대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회사 안에서 폭행을 당하고 쫓겨났는데 법적으로 그 공간은 GM대우의 공간이기 때문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GM대우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결한 사례도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다. 사용사업주와 고용사업주 간의 불평등한 관계 때문에 고용사업주는 더 낮은 단가와 조건으로 사용사업주와 계약을 체결하고 그 때문인 이윤의 감소를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한다. 또한, 직접고용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중간에서 이윤을 챙기는 행위, 즉 중간착취가 간접고용에는 존재하기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도 그만큼 줄어든다. 일례로 2007년 동산병원이 환자식 조리업무를 담당하던 직원들을 직접고용했을 때 직원들의 임금은 월 107만 원이었으나, 2010년 5월 동산병원이 환자식 조리업무를 풀무원(주)ECMD에 아웃소싱하고 풀무원(주)ECMD가 파견업체 유니토스를 통해 노동자를 공급받게 된 이후 환자식 조리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임금은 월 89만 원으로 떨어졌다.


간접고용 관계에서는 사용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산재 사고를 당했을 때 이에 따른 책임을 묻기가 어렵게 되고 구제 가능성도 낮아진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통해 접수된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한 학생이 ‘호텔ㅇㅇ’이라는 인터넷 정보제공업체를 통해 ㅇㅇ호텔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ㅇㅇ호텔과 호텔ㅇㅇ에 임금을 달라고 요청했는데 ㅇㅇ호텔과 호텔ㅇㅇ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고 결국 이 학생은 임금을 받지 못했다.


사업주들에게는 간접고용은 아주 매력적이다. 유연하고 자유롭게 노동력을 활용하면서도 책임을 안 지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하고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버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노동자들에게 간접고용은 착취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사용사업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통제한다. 사용사업주에게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그저 노동력을 제공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러한 사실을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모를 리 없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훼손된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와 차별과 무시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힘들게 한다. 파견사업을 통해 만난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가 이를 말해준다. “우리들이 당신들의 이윤과 영리를 위해 움직이는 기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발 우리를 인간으로 대우해 주세요.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더 늦기 전에 간접고용을 없애고 직접고용을 확립해야 한다. 바로 노동관계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감 뉴스레터 2013년 7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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