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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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보자
  • 법률저널
  • 승인 2013.07.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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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한여름 폭염이 뜨겁고, 장맛비가 매섭다. 사람들이 폭염에 지치고 장맛비에 지친다. 필자도 세상에 지친다. 여름방학을 맞아 틱 낫한 스님의 명상록 “화해”, “화”, “틱 낫한 명상” 등 세 권을 읽었다. 그리고 또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를 읽었다. 고3수험생이나 되듯 중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좋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그 단어와 문장들을 되새겨 읽으며 그 뜻을 다시 한 번 음미하였다. 내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후 내린 결론은 “아, 내 마음 속에 화가 가득 차 있구나!” 하는 자기성찰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내 삶의 기준인 “정의의 기준”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데도 이와 상반된 “이상한 힘의 지배”가 막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무언가 잘못되고 억울한 면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한 부조리가 막강한 힘에 의해 무시되는 것 같은 세상에 대한 작은 분노들이 쌓여 나에게 화가 되어 돌아오는 모양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는 나의 정의가 오히려 부정의라며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정의의 기준을 제대로 세우는 것 자체부터 논란의 중심에 서니, 이 세상에 정의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이겠는가?


틱 낫한 스님은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스님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 “타인을 위로하면 내가 위로받는다.”고 역설적으로 설파한다. “천국과 지옥을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우리 마음뿐”임을 나긋나긋 말씀하시며 분노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그냥 바라보고 웃고 있는 듯하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행복한 아이는 인생의 의미를 떠올리지 않는다.”며, 교황 요한 23세가 1962년 12월 23일 자신의 영혼의 일기에 쓴 “오늘은 어제보다 덜 나빴다. 그런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나을 것이고, 그렇게 계속 나아질 것이다.”라는 말씀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덜 나빴다.”라고 세상의 일기장에 오늘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많은 이들은 말로는 참으로 이 세상을 구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인 양 좋고 선한 말들을 많이 한다. 그 말과 글을 듣고 읽으며 우리는 마음밭을 가꾸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자 노력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선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꾀하려는 자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많은 선지자들이 화를 가라앉히고 상생과 화합의 정신을 가꾸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렇지만 2013년 7월의 마지막 주 대한민국은 “국가가 증오를 양산하는 이상한 화약고”가 되어가고 있다. 한여름의 폭염보다 더 뜨거운 인간광풍이, 장맛비보다 더 무서운 말폭탄이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고 있다. 정말 왜 이럴까?


국민들에게는 새누리당이 집권여당이 되든, 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가 집권여당이 되든 “국가 법질서 내에서 공정한 국가안보 및 국가행정”을 수행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공정한 국정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가되면 다른 정당에 정권을 넘겨주면 되고, 그 정당 역시 최선을 다 하다가 잘못하였다고 평가되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정권을 잡으면 모든 불법이든 편법이든 허용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죽자 살자 식으로 정권 쟁탈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니 정권만 잡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전”을 치루게 하고, 그러다 보니 선거운동과정에서 수많은 불법행위들이 자행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영구집권을 꿈꾸는 허황한 자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역사는 가르치고 있는데도 이를 굳이 외면하려 한다. 참으로 어리석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권을 잡은 후의 행태라고 할 것인데,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공익을 멀리 하고 사익에 탐익하여, 모든 공직을 끼리끼리 나누어 먹는 편가르기를 일상화하고, 그러다 보니 브레이크 없는 고장 난 자동차가 되어 불법행위를 공공연히 자행하고, 수사기관인 경찰이나 검찰은 정권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동안은 정치권 눈치보기에 급급하여 불법행위를 묵인 내지 방조하다가 기운이 빠진 정권교체기에 가서야 뒤늦게 뒷북을 치며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는 일이 다반사되고 있다. 참으로 나쁜 형태의 반복이다.


제18대 대통령선거기간 동안 국가정보원이 심리단을 이용하여 인터넷을 통한 여론조작에 앞장섰음이 밝혀지고, 이것이 국민적 공분을 사자 이를 희석시키고자 새누리당에서 주도적으로 북한 엔엘엘(서해북방한계선)문제를 들고 나왔고, 급기야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을 공개하는 정보누설자의 악역을 담당하였다. 이로 인해 정치권은 엔엘엘 포기냐 아니냐를 놓고 사분오열되고, 국민 여론도 마찬가지로 찢어질 대로 찢어지고 말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정원의 국내정치개입 및 불법관권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또 이것을 비난하는 반대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와 생각이 다른 자를 증오하는 감정의 양극화현상이 나타나고, 이게 지금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어떠한 폭력적 행위로 돌출할지 두려운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설상가상 국가기록원에서 위 대화록 원본의 존재가 실종되어버리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국민들의 정신적 공황상태가 야기되고 말았다. 세상이 혼돈이다.


가장 좋은 것은 “법대로, 사필귀정의 수순”을 밟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최대강제규범인 법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그 법을 집행하는 자가 공정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말이다. 상대편에서는 그 법을 집행하는 자가 편파적이라고 칼자루 쥔 자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불신의 벽이 이렇게 높아졌을까? 국가는 우선 “증오의 양산”을 자제해야 한다. 아니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잘못했으면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 젊은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말한다. “행복한 아이는 인생의 의미를 떠올리지 않는다.”라고. 그냥 아이처럼 우리 모두 뛰어놀면 되는 것이다. 그냥 밝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다시 말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행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라고. 그렇지만 이 순간 행해야 할 일이 “악행”이어서는 아니 되지 않겠는가? 정의의 개념이 상대적일지 몰라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고,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용기 있는 자들이 피흘려 스스로의 목숨을 내놓기까지 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 정치철학이다. 독재를 행하는 자, 폭압을 일삼는 자,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에 대해 국민이 저항하고 또 저항하여 만들어낸 최선의 정치방법이다. 그렇지만 다중의 민중이 반드시 지혜로운 선택을 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잘못되면 중우정치로 흘러들어갈 위험성이 있다. 오죽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보다는 한 사람의 위대한 지혜자에 의한 철인정치가 오히려 낫다고까지 했을까? 정치인들은 중우정치가 될 때 비로소 자기의 권력이 극대화될 수 있음을 잘 알기에 끝없이 국민을 어리석게 만들려고 혈안이 되기 쉽다. 지혜로운 국민들에 의해 제대로 감시되는 민주주의가 되면 자신들의 권력남용이 허용되지 못하고, 이권에 개입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국민의 심부름꾼밖에 되지 못하기에,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있는 일부 정치모리배들로서는 많은 국민들을 혹세무민하여 어리석게 만들어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하려 한다.


그런 가장 대표적 사례가 국정원댓글녀로 상징되는 인터넷 게시글을 통한 여론호도라고 할 것이다. 정치적 사실을 왜곡하고, 상대방에게 적개심을 드러내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잘못된 행동을 촉발토록 하여 이를 다시 비방하고 호도하는 정책을 일정한 최고사령탑의 주도 하에 자행되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중우정치로의 변질을 획책한 범죄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이를 단죄해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가치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 까닭에 엄숙하고, 장엄하고, 위대한 길이기도 하다.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시작되었다. 국정조사의 첫 단계는 “사실확정”이다. 모든 것은 단순히 삼단논법에 의해 확정해 나가면 된다. 첫째가 사실확정, 둘째가 적용법조의 선택, 셋째가 그 적용법조에 의한 법률효과(형벌권의 행사)의 실현이다. 그렇다면 국정조사는 우선적으로 사실확정에 매달려야 한다. 그런 사실이 있는가 없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 국조위원들을 보면 그 사실확정의 단계로의 진입을 거부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 것 같아 심히 유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관계의 확인을 위해서는 증거수집이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실을 확정하기 위해 증거는 수십, 수백 가지가 조사되어져야 한다. 그것을 막는 것은 진실규명을 하지 않겠다는 방해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화가 꼭지까지 치밀어 올라 있는 국민들에게 상처의 치유가 필요하다. 틱 낫한 스님은 말씀하신다. 우선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리고 걸어라. 마음으로 마음을 볼 때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화를 내다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져서는 안 된다. 분노를 잠재우고 차분하게 세상을 볼 일이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자.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이고, 나는 그러한 나라를 만드는 데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고. 국가 권력자들은 증오를 양산하는 것을 당장 멈춰라. 증오는 반드시 그 증오를 양산한 자에게 복수할 것임을 명심하라. 심호흡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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