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2 / ‘창조적’인 감정평가는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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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2 / ‘창조적’인 감정평가는 답이 아니다
  • 법률저널
  • 승인 2013.07.0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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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 현 정부 출범 전부터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우리 사회 전면에 등장한 ‘핵심’ 키워드다.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외국의 한 경영 전략가라고 알려져 있다. 창조경제의 정의도 현재와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우리의 ‘창조경제‘의 정의에 대해 해당부처 장관도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얼버무린 모습을 보인 뒤에야 ‘제조업 등 기존산업과 IT, 과학기술이 융합돼 일자리 창출과 성장으로 연결되는 경제 혹은 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전환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정의했지만 충분한 내용숙지가 끝난 뒤에 나오는 요약 발언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어쨌든 ‘창조’라는 단어는 진부함을 벗어버린 참신한 무엇을 연상시키는 어감이 있어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를 소비하려고 여기저기서 창조를 외치는 지도 모른다. ‘혁신’이란 단어도 비슷한 뉘앙스를 전해 준다. 뭘 자꾸 바꾸자는 것인데, 먹고 살만하면 그런 얘기는 튀어나오지도 않는다. 갑자기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이대로 계속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할 때야 비로소 개인이든 조직이든 타성과 불합리함을 제거하고 더 나은 변화를 꿈꾸게 된다.

 

감정평가 업무와 ‘창조’, ‘혁신’이란 단어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감정평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가장 정직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물론 예전에 달관적으로 평가 결론에 이르던 관행에서 산출근거를 정치하게 기술하는 면에서는 새로운 평가 보고서를 창조해 낸 것은 분명하다. 지적사항과 건축물의 현황 도면을 모눈종이에 삼각자를 이용해 그리던 관행에서 비지오(visio) 프로그램을 통해 전산으로 깔끔하게 작업하게 된 것도 혁신이라면 혁신이랄 수 있다. 그렇지만 감정평가의 결과는 창조적이거나 혁신적이어서는 안 된다. 누가 보기에도 ‘뻔한’ 그런 값이 정답이다.

 

감정평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밟아 나가야 하는 과정은 1년차나 10년차나 매한가지다. 등기사항전부증명서나 건축물대장, 수입신고서와 같은 서류를 확인해 평가 대상을 확정하는 단계, 가격 결정에 참고할 만한 여러 자료를 수집하는 예비 조사 단계, 현장을 방문해 물건의 위치, 상태, 호가 등을 확인하는 본 조사 단계를 거치고 나면 사무실로 복귀해 평가서 작성에 들어간다. 우선 이런 저런 자료를 회의실 책상에 올려놓고 여러 방면으로 머리를 굴린다. 저걸 신규로 취득한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들 것인가, 저 상태로 팔게 되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 보유하는 동안 임대수입은 얼마나 될까하고 고민하는 작업이다. 다름 아닌 비용접근법, 시장접근법, 소득접근법에 의한 가치 추계 과정이다. 그러고 나면 야구 주심의 스트라이크존(Strike Zone)처럼 일정 범위의 가격대가 형성된다. 가격대의 하단을 벗어나게 되면 누가 보기에도 몸값을 후려친다는 느낌을 풍긴다. 반대로 상단을 넘어서면 작심하고 질렀다는 인상이 짙다.

 

감정평가의 결과가 적정한 가격대에서 평가자의 재량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다. 고개를 갸웃거릴 때는 하단부에 매달려 있거나 상단부에 걸쳐 있을 때다. 경기마다 심판의 스트라이크존(Strike Zone)도 조금씩 달라진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류현진의 경기에서 이따금씩 스트라이크를 외치는 주심의 손이 인색할 때면 ‘걸쳤는데 안 잡아주네요.’하고 툴툴대는 해설자의 멘트를 종종 듣게 된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창조해 낼 수도 없고 혁신이랍시고 얼토당토않은 평가기법을 적용하는 것도 무리다.

 

감정평가에서는 그 누구도 내 주지 않는 가격으로 평가할 때 ‘깃발’을 꽂았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깃발’은 그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음 주자는 마지막 깃발까지를 적정한 가격대로 인식하고 살짝살짝 영역을 넓혀가는 작업을 이어 간다. 제구력의 마술사 ‘그렉 매덕스’가 공 반개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으로 경기마다 심판의 스트라이크존(Strike Zone)을 주심도 모르게 이동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춘궁기에 들어간 감정평가업계에 이런 제구력의 마술사가 ‘선도형 경제’랍시고 우후죽순 등장할까 걱정되는 요즘이다.

이용훈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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