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대통령기록물관리법과 정치적 권모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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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대통령기록물관리법과 정치적 권모술수
  • 법률저널
  • 승인 2013.06.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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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에 걸쳐 이루어진 김정일 위원장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남북정상 간의 대화내용이 기록된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을 둘러싸고 세상이 시끄럽다. 마치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천을 경천동지시키고 있는 것 같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18대 대통령선거기간 중 터뜨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북방한계선) 포기발언”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한 진위 논쟁이 또 다시 재현되고 있다. 이번에는 몇 달 동안 국회정보위를 소집하지 않아 직권남용 등의 죄로 고소당한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 등이 갑자기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는 위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하고 나서는 또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 포기발언”이 있었다는 취지의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꺼져 있던 불씨를 다시 피워 올린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위 기록물을 국회로 직접 가져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만 열람시키고, 열람 후 이를 긴급발표하는 일련의 행위를 보면서 무언가 거대한 힘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 영락없는 새누리당스러움과 국가정보원스러운 공작정치의 야합과 음험함이 느껴진다. 구정물에 맑은 물 몇 방울 떨어뜨려 희석시킨다고 먹기 좋은 생수 되는 것 아니 듯이 국정원의 불법선거개입은 그냥 원세훈 전 국정원 원장과 관련 부하직원들의 선거법위반범죄행위일 뿐이다. 조용히 법원에서 있게 될 선거법위반 여부에 대해 재판결과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지, 새삼스럽게 몇 달 전에 써먹어버린 것을 다시 꺼내어 재탕, 삼탕 하는 것은 꼴불견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명동 한 복판 눈앞에서 현행범인 도둑놈을 붙잡겠다고 뒤쫓는 경찰을 향해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불났으니 불 끄러 가라고 고함치는 것이나 진 배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는 국민은 어리벙벙해진다. 이런 집권 여당의 황당한 행태를 보다 못해 대학생들이 시국선언과 촛불집회 시위를 계속하여 벌이고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민주시민의식이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시민들의 저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 하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제18대 대선에 개입하여 불법선거행위를 주도한 범죄행위가 검찰수사결과 밝혀져 기소된 것이 발단이 되어, 여ㆍ야간에 국정원 국정감사라는 초유의 합의가 이루어지려 하자 이를 방해하려는 새누리당 일부 의원과 국정원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져 물타기 공작정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 포기발언”을 이슈화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알기에, 국정원 국정감사나 제대로 하라는 촉구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의 “대통령지정기록물”에 해당된다. 동법 제2조는 대통령기록물에 대하여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대통령, 대통령의 보좌기관ㆍ자문기관 및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생산ㆍ접수하여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및 물품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의해 규율되며, 동법에 규정이 없을 경우에만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공공기록물관리법)이 적용된다(동법 제4조). 동법 제16조는 대통령기록물은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면서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에 해당하는 사항, 즉 ① 법률 등으로 비공개로 정한 사항, ② 국가안전보장ㆍ국방ㆍ통일ㆍ외교관계 등의 사항으로 공개 시 중대한 국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등은 공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제17조 제1항은 비공개사항에 해당하는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하여는 “열람ㆍ사본제작” 등을 허용하지 아니하거나 자료제출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할 수 있는 보호기간을 정하도록 하고 있으면서, 그러한 비공개사항으로 “법령에 따른 군사ㆍ외교ㆍ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과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정치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기록물”을 열거하고 있다. 한편 이런 사항에 대하여는 15년 이내에서 보호기간을 정하여 비공개토록 하면서도 이 보호기간 중에는 ①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 이루어진 경우, ②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다만, 관할 고등법원장은 열람,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이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외교관계 및 국민경제의 안정을 심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등에는 영장을 발부하여서는 아니 된다)에 한하여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열람,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을 허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제19조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업무를 담당하거나 담당하였던 자 또는 대통령기록물에 접근ㆍ열람하였던 자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 및 보호기간 중인 대통령지정기록물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누설 금지”를 규정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의 외교 및 통일에 관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대통령기록물은 15년 동안 공개해서는 안 되며, 열람 및 사본작성이 불허되며(물론 작성자인 대통령은 사본을 작성할 수 있다), 적법절차에 따라 열람 등을 통해 알게 된 정보일지라도 공개해서는 안 되며, 만일 공개할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에 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회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결의 또는 고등법원장의 영장발부에 의해 열람 및 사본제작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지득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즉 열람이 허용되어 정보를 지득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상기 의원 등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다섯 명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발췌본 중에서도 일부 내용만을 강조하는 공개기자회견을 열어 전국민과 전세계에 공개하여 버렸다. 이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19조(대통령지정기록물의 누설 등의 금지)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동 조항은 대통령기록물에 접근ㆍ열람하였던 자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 및 보호기간 중인 대통령지정기록물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되며, 이를 위반한 경우 동법 제30조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소위 삼성엑스파일사건으로 시중에 널리 알려진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1항 제2호가 불법도청을 통해 지득한 타인 간의 대화를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조차 처벌하도록 되어 있는 것과 같은 법체계로 되어 있는 것이다. 불법도청한 자를 처벌할 뿐만 아니라, 불법도청 이후 지득한 정보를 다른 사람이 공개하는 경우에도 처벌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통령기록물보관법은 대통령의 공개되지 아니한 기록물을 불법으로 열람하는 것도 처벌하지만, 설령 적법하게 열람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누설하거나 공개하는 경우에도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서상기 의원 등은 어떤 경우에도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공개했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 내에서 의정활동 중에 한 경우에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으로 면책의 은전을 받겠지만, 만일 국회 밖에서 이런 공개나 기자회견을 하였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대통령지정기록물에는 원본과 사본이 있을 수 있다. 위 정상회담회의록 원본은 대통령기록원에 보관되어 지금 비공개 중에 있다. 현재 여ㆍ야간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정원 보관의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은 사본이다. 문제는 그 사본도 국가기록물보관법상의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설령 그 사본이 원본의 일부내용을 발췌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논자는 사본은 원본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의 보호대상이 아닌 공공기록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정원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지만, 사본도 엄연히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동법 제2조 제1호가 “대통령이 생산ㆍ접수하여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및 물품”을 대통령기록물이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성한 문서이고, 그 문서가 사본이든 원본이든 모두 대통령이 작성한 문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의 보좌기관인 국정원이 녹음된 것을 다시 기록하였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대화내용을 녹취한 것이라면 이 역시 대통령기록물이 되는 것이고, 발췌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국정원으로 하여금 사본을 보관토록 한 것은 대통령의 권한 위임에 의해 국가업무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열람하여 업무에 참조토록 하기 위한 것일 뿐이지, 대통령지정기록물로서의 성질 자체를 배제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대통령은 동일한 내용의 회의록을 여러 통 생산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여러 통 작성된 모든 문서는 하나하나가 대통령기록물로서의 지위를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 대법원은 “문서의 사본을 위조”한 경우에도 “문서위조죄”로 처벌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사본을 위조하는 경우에도 문서 위조로 본다는 것이다. 이는 사본 문서도 원본 문서와 동일한 가치로 평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을 여러 통 작성하여, 그 중 하나를 원본으로 나머지를 사본으로 분류하였다고 하더라도 모두 대통령지정기록물인 것이지, 원본은 기록물이고 사본은 기록물이 아니라는 궤변은 허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보좌기관인 국정원장이 작성한 것도 역시 대통령기록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대통령의 외교ㆍ통일에 관한 기록물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문서화한 것이다. 이것이 공개될 경우 당연히 외교적 마찰을 가져오게 되고, 국론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최소한 15년의 보호기간을 두어 공개를 유보토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의 가치는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롭다고 마음대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위반해서는 안 된다. 이게 바로 원칙도 없고, 신뢰도 없는 국가와 역사에 대한 범죄행위인 것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양심을 저버린 국기문란행위인 것이다. 검찰은 범죄위반자들에 대하여 엄중히 형사처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생선가게를 지키는 도둑고양이처럼, 권력을 가졌다고 조자룡 헌 칼 쓰듯이 마구잡이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다. 칼을 잘못 사용하면 제 목을 치게 되는 경우가 있음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뜬금없는 북방한계선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정원이라는 거대국가권력기관의 불법선거관여행위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이며,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이며, 정치가들이 어떻게 이러한 제도수립을 확립하여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주의국가로 거듭나게 할 것인가에 모여져야 할 것이다. 만일 이를 게을리하거나 호도하려고 하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뿐인 것이다. 하기야, 죄 진 자들이라면 어찌 떨지 않겠는가? 원칙과 신뢰를 정치적 생명으로 여긴다고 늘상 말해온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이런 범죄행위에 대해 엄중한 수사를 해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고 천명하는 것이 대통령의 원칙이자 국민에 대한 신뢰인 것이다. 민사소송에서 침묵은 자백으로 의제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싶을 뿐이다. 침묵은 자백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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