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임마누엘 칸트와 평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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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임마누엘 칸트와 평화(2)
  • 법률저널
  • 승인 2013.06.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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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는 칸트의 철학 체계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의 『영구평화론』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구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에 대한 저술 중 가장 체계적인 저술로 개인적 수준과 국가적 수준과 체계적 수준을 고루 다루고 있는 책이다. 여기서는 인간성과 국제 무정부상태의 현실에 대한 통찰 속에서 국가를 중심으로 하여 국제 평화에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그의 사상체계가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영구평화론』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조약의 형태로 보여준다. 칸트는 평화의 조건을 예비조항, 확정 조항, 추가조항의 세 항목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이 중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예비조항과 확정조항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예비조항은 진실에 토대를 둔 평화조약, 민족자결권의 존중, 반식민주의, 상비군의 폐지, 내정간섭금지, 상호신뢰를 해할 전쟁 중 적대행위의 금지로 구성되어있다. 이들 예비 조항들은 평화를 위해서 금기시 되어야 할 것들로 비밀스러운 평화조약, 내정간섭의 금지, 상호신뢰를 해할 전쟁 중 적대행위의 금지조항은 즉시 철폐되어야할 항목이며 나머지 항목들은 상황에 따라서 주관적으로 확대적용하거나 집행을 연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 예비조항은 금기 조항으로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칸트 특유의 윤리적 요구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이 확정조항이다. 예비 조항이 ‘해서는 안된다’의 형식을 갖춘데 비해서 확정조항은 ‘해야만 한다’ 혹은 ‘하지 않으면 안된다’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확정 조항은 3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 조항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국가에 있어서 시민적 체제는 공화제이어야 한다. 둘째, 국제법은 자유로운 제국가의 연맹에 토대를 두어야한다. 셋째, 세계시민법은 보편적인 우호의 제 조건에 한정되어야 한다.
  

이 확정 조항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첫째 조항은 내부적 체제가 공화제적인 통치 형태여야 함을 주장한다. 여기서 공화제적임은 권력을 누가 보유했는가 혹은 권력자의 수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의 지배형식과 달리 국가가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가 하는 통치의 양식을 의미한다. 즉 권력사용이 전제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가 공화제 헌법이 영구평화의 핵심임을 주장한 것은 공화제 헌법체계가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협조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전쟁의 비용을 직접 지불해야 하는 국민들은 전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민들은 전쟁에서 얻는 것보다 들여야 할 비용이 많기 때문에 전쟁을 반대한다. 또한 공화제 헌법이란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대의 민주주의와 유사하므로 전쟁의 결정은 국민들의 의사에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공화제 헌법을 가진 국가에서는 군주의 자의적인 전쟁결정은 불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평화에 대해 루소가 가지고 있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루소는 국내체계가 전제체제이면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보았는데 이는 군주와 국민들의 전쟁에서의 득실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의 방지는 전제정치의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칸트의 사상역시 이러한 루소의 철학체계를 토대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조항에서 보이는 사상체계는 칸트로 하여금 최근 주목받고 있는 민주평화론에 대한 이론적 사상적 뿌리가 될 수 있게 해준다. 즉 1990년대 들어오면서 민주주의의 확산이 국제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와 분석을 하는 민주평화론은 공화제적 헌법구조가 전쟁을 억지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그 사상적 근간을 두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들 상호간에는 전쟁의 결정이 어렵고 전쟁을 통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간에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의 첫 번째 명제가 형성된다.
  

두 번째 조항은 자유로운 제 국가들 사이의 연맹에 토대를 둔 국제법적 질서를 제시하고 있다. 한 국가의 정치형태의 변화는 전쟁이라고 하는 국가들 간의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를 다룰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런 체계는 루이 14세 이후의 유럽 연합안의 계보를 잇는 유럽의 연맹적 구조와 그 구조 속에서 국가들 간의 공동의 결정을 의미한다. 즉 국가들 간의 안정을 위한 인위적인 세력 균형도 아니고 패권국가에 의한 힘의 우위에 따른 평화도 아닌 국가들 간의 공동의 결정과 이에 대한 공동의 보증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조항은 전쟁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국제 무정부상태의 구조적 한계를 적극적으로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즉 전쟁과 갈등을 국내정치에서의 국가와 같이 하나의 세계 공화국을 형성하여 풀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연맹이라고 하는 불완전한 구조물을 통해서 풀 것을 주장한다. 이는 불가능한 이념적인 최선의 대안인 하나의 정부 관념보다는 가능한 최선으로서의 불완전한 연맹안이 좀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칸트의 사상체계를 반영한다.
  

세 번째 조항인 세계시민법은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의 불충분성을 고려한 조항이다. 공화제 헌법이나 국제법 모두 국가간의 평화를 완벽하게 보장해 주지 못하는 불완전한 체제이다. 따라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의미와 달리 한명의 세계의 시민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국가의 자의성과 강제성에서 벋어날 수 있고 그를 통해서 국민으로서의 의무보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더 중요함을 보인다.
  

이상에서 보인 칸트의 평화에 대한 관념은 법에 의해서만 평화가 달성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확고한 법적 지배가 전쟁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을 홉스식의 무정부상태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따라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국내 헌법질서의 개편과 국가 간의 법적 관계 그리고 세계 시민법의 형성이 칸트에게 있어서는 전쟁으로부터 탈출하는 가능한 대안이었다. 또한 이는 하나의 법적 질서만으로는 홉스식의 무정부성과 그 속에서의 전쟁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 개의 법적 구조가 불안한 평화의 가능성을 상호 보완하면서 인간에게 평화에 대한 희망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 개의 법이 구성하고 있는 동아줄들은 전쟁이라고 하는 문제에 대한 보완적 해결방안을 마련해 준다. 이러한 칸트의 생각은 이후 민주주의와 국제법과 세계적인 자유경제체제라고 하는 현대적 동아줄들로 대체된다. 최근 민주평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이 세 개의 방안을 통해서 국가간의 평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의 평화에 대한 사고는 지나치게 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과 그로 인해서 현실의 유동적이고 동태적인 정치현상을 잘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법과 제도에 따른 이상주의로 치부되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평화가 필요한 시대 그리고 인간의 조건이 더 갈등적으로 변해가는 시대에 칸트가 제시하는 해법이 그리 사변적이지만은 않은 것은 아마도 평화가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그의 교훈 때문이 아닐까한다.


2004년 11월 1일/ 2013년 6월 26일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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