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소송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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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소송 예찬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13.06.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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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옥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라는 말이 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early와 adopter의 합성어로 원래는 남들보다 빨리 신제품을 사서 써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군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다 이러한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의미가 확대되어 제품이 출시될 때 남들보다 먼저 제품에 관한 정보를 접하고, 제품을 먼저 구입해 제품에 관한 평가를 내린 뒤 주변 사람들에게 제품의 특성을 알려주는 성향을 가진 일련의 소비자군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폰3G가 한국에 발매된 것이 2009년 11월 28일이다. 그해 12월 초경 나는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 가져온 아이폰3G를 보고 그날로 아이폰을 구입했다. 다음날 직장에 출근해서 아이폰 성능 자랑을 했더니, 모두들 나보고 얼리 어답터라고 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으니까.


그런데 2011년 2월말 인사이동으로 그해 처음 실시되는 전자소송 전담부를 맡게 되었다. 전자소송 초창기에 전담하게 되었으니 이왕 하는 일이니 재미있게 해보기로 했다. 일전에 아이폰 자랑을 하도 많이 했던 터라 역시 얼리 어답터는 맡는 일도 다르다고 주위에서 칭찬 아닌 칭찬도 해주었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전자소송이 시행되어, 사무실에서 종이기록이 사라지고 오직 스크린으로 기록을 보게 되었다. 가능하면 기록을 프린트하지 않고 스크린으로 보는 데에 익숙해지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전자소송을 맡으면 종이기록에 비해서 가독성이 떨어지고 시력이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많았다. 몇 달 지나니까 눈이 피곤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나 그럭저럭 지나갔다. 초창기에는 직원들도 일이 많다고 불평도 많이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전자소송이 더 간편하다는 여론이 많아졌다. 사무실에 비치된 캐비닛에서 종이기록이 하나둘씩 없어지더니 1년이 지나니까 텅 빈 철제 캐비닛만 남게 되어 흉물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법정에서도 모든 재판을 스크린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 당사자의 주장이나 쟁점정리도 스크린에 적어가면서 하면 되고, 서면이나 사진, 동영상도 스크린을 통해서 축소, 확대하면서 보고, 심지어는 법정에서 소송대리인의 요청으로 현장지도 등 인터넷검색까지 하게 되어 좀 더 실질적으로 증거조사가 이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민사소송의 이상에 불과하였던 집중심리의 현실화가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전자소송이 보편화되었다. 법원에서도 전자소송 전담부를 선호하는 것 같고, 전자소송을 이용하는 변호사님들도 많아졌다. 한번 전자소송으로 소장을 낸 변호사님들은 다시는 종이소송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여러 모로 편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인류의 기록유산은 종이가 최고라고 하면서, 재판기록은 종이로 이루어져야 제 맛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변호사님들도 많다.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을 갓 졸업한 젊은 변호사들이 전자소송으로 진입하는 주된 고객인 반면, 기존 종이소송의 오랜 관행에 익숙한 분들도 많아 법정에서 보면 일종의 세대간의 벽을 형성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IT 신기술에 유달리 친한 우리나라 국민의 특성상 몇 년 지나면 전자소송이 당연 대세가 될 것이다.


민사소송 등 인지법이 개정되어 전자소송에 대하여는 일반소송 인지액의 10%가 감액된다. 최근에는 의사의 설명의무와 같이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할 때 의뢰인에게 전자소송을 이용하면 인지가 10% 감액된다는 점을 설명해줄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고액 민사소송의 경우에는 10%의 인지액도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에 나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2년간 전자소송을 전담하다가, 올해는 사무분담이 바뀌어 종이소송을 맡고 있다. 종이로 된 기록을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는 하지만 불편하다. 이제는 기록을 스크린으로 보는 것이 더 편해졌다. 마치 20세기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전자소송을 전담하는 분들이 부럽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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