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런 연명치료, 중단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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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연명치료, 중단할 수 있어야
  • 김현
  • 승인 2013.06.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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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최근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특별위원회’(‘특별위원회’)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권고안’을 공개했다. 권고안에는 대상 환자, 대상 의료, 환자의 의사 확인, 제도화 방법으로 항목을 나눠 규정했다.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 등 전문적인 의학 지식과 기술, 장비가 필요한 특수 연명의료를 대상으로 하고, 환자의 명시적 의사가 있거나 없더라도 의사의 추정이나 대리결정에 의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을 권고했다.  환자가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가 있거나 환자가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에 담당의사(또는 병원윤리위원회)가 의사의 진실성을 확인하면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본다. 환자의 명시적 의사가 없더라도 과거에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가 있거나 2인 이상의 가족(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이 환자의 의사에 대해 일치하는 진술을 하면 의사 2인(또는 병원윤리위원회)이 환자의 의사로 추정할 수 있다. 환자의 명시적 의사 표시도 없고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도 없다면, 적법한 대리인의 결정이나 가족 전원의 동의에 의사 2인(또는 병원윤리위원회)의 확인이 있는 경우, 또는 대리인이 없다면 병원윤리위원회의 결정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인간은 그 자체 하나의 우주이고, 하나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존귀하다. 그러나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단순히 목숨만 이어가는 극단적인 경우에 인간은 더 이상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품위있게 삶을 끝낼 엄숙한 권리를 가진다. 생명의 자기결정권이라고 하겠다. 2004년 대법원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의식불명 환자를 가족의 요청에 따라 퇴원시켰다가 해당 의사가 살인 혐의로 기소된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살인방조죄를 인정하였다. 이후 병원들은 형사처벌을 받을까봐 회복 불가능한 임종기 환자에게도 고통스런 연명치료를 계속해야 하는 딱한 형편에 놓이게 되었다.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2009년에 대법원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할머니의 평소 뜻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을 환자의 가족들이 병원에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병원을 제소한 ‘김할머니 사건’에서 가족의 손을 들어주어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도록 하면서 연명치료 중단의 법제화를 권고했다. 이번 특별위원회의 권고안은 현실을 반영한 합리적인 결단이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회복하기 어려운 임종기 환자도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 연명치료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의하면 연 3만 여명의 환자가 연명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에게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준다. 회생가능성 없는 환자가 온갖 기계를 주렁주렁 몸에 매달고 기약 없이 생명을 연장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환자는 환자대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며 인간답고 평온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빼앗긴다. 가족들은 기약 없이 환자를 간병하면서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를 호소하며 엄청난 병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값비싼 연명치료 장비와 고급 의료인력을 소모하여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에게 부담을 지우며, 다른 용도에 꼭 필요한 예산을 헛되이 낭비하게 한다. 이제 더 이상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미룰 수 없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인위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서는 안 된다. 존엄사가 허용될 경우 남용될 우려가 많으며, 특히 사회적 빈곤층이나 노인들이 희생될 위험이 크다는 반대론자의 견해도 경청해야 한다. 연명치료 중단보다는 우리나라 호스피스 활동을 강화하고 치료수준을 먼저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버몬트주 하원이 가망없는 치명적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존엄사(death with dignity) 허용법안을 통과시킨 것처럼 우리도 고통스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합리적인 요건과 절차에 대한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만의 하나라도 억울한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의료인, 법률가, 국회의원, 시민 대표가 마주앉아 지혜를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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