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외무고시 수석합격 “목표의식 확고하게 가진 것이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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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외무고시 수석합격 “목표의식 확고하게 가진 것이 원동력”
  • 법률저널
  • 승인 2013.06.1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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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통일에 이바지 하고 싶다”

 

이종찬 제47 외무고시 수석·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올해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외무고시(5등급 외무) 수석 합격자는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뒤늦게 외무고시에 도전한 끝에 수석의 영예를 안아 주의를 놀라게 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종찬(32·사진)씨. 부산 양정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31세의 늦깎이 고시생이었지만 1년 6개월 여만에 합격을 꿰찼다. 특히 중앙일보에서 3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던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반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고시에 뛰어든 만큼 부담감이 적지 않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목표의식을 갖고 공부한 끝에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씨는 법률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합격소감을 묻는 말에 “우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뒷바라지 하신 어머니가 너무 고생하셨다”며 “멀쩡한 회사를 그만뒀을 때도, 힘든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도 저를 믿어주시고 뒷받침해주신 어머니가 저의 영웅”이라며 고생하신 어머니께 수석의 영광을 돌렸다.


그는 또 “대한민국의 외교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매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향후 인류사적으로 더욱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달성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합격소감을 나타냈다.


그가 뒤늦게 공부에 뛰어들었지만 단기간에 합격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확고한 목표의식’이었다. 이 씨는 “목표의식을 확고하게 가졌던 것이 시험 공부하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며 “외교관이 되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었고, 이에 따라 내가 왜 신림동 고시촌에 와 있는지 매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목표의식마저 없다면 망망한 시험공부의 바다에서 표류하기 십상인 것 같다고 했다.


이 씨는 원래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해 물리와 수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 때문에 3학년 올라가면서 경제학으로 전과를 했다. 전과한 후로 경제학은 물론 문학, 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접한 덕분에 신문사에서 기자로서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


그럼에도 그가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외교관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31세였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시에 뛰어들었다. 그는 “외교관이 되고자 목표를 세우고 나니 먼 길을 돌아온 제 삶의 궤적이 앞으로 제가 가야할 방향을 일관되게 가리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고시생활로 귀결되었다”고 외시를 도전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특히 신문사 생활 3년 후 그를 좌절에 빠뜨린 것은 그 이념갈등의 이면에는 민족 분단이라는 거대하고 확고한 틀이 있다는 인식이었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우리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치고 해결하기 위해 외교관이 되고자 마음먹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의 전반적인 수험생활은 2012년 1월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에 통과한 후 고시에 입문하게 됐다. 중국어(제2외국어)와 국제법을 전혀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선 이 두 과목에 집중해서 공부했다. 작년 2월에 치른 PSAT에서 불합격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PSAT시험을 치른 다음날 신림동 고시촌으로 이사했고 본격적인 공부에 돌입했다. 기초가 부족한 중국어와 영어 번역 공부에 5월까지 매진했고, 그 이후부터 기타 다른 논문과목 공부를 시작했다.


다양한 학문을 접한 그였지만 PSAT(공직적격성평가) 공부는 녹녹치 않았다. 작년 치른 첫 PSAT 시험과 올해 외교원후보자 PSAT 시험에 떨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기출문제 중심으로 꾸준히 연습한 끝에 올해 외시 1차에서는 자료해석에서 30점이 넘는 상승폭을 기록했다.


PSAT 마무리 한 달간은 기출문제만 봤다. 시간 재며 풀 때도 지문 하나하나를 모두 판단하는 연습을 했다. 마지막 1주일 동안에는 무리하게 새로운 자료를 보려고 하진 않았고 최근 2개년치 기출문제를 하루에 1회씩 풀고 틈틈이 만들어놓은 오답노트를 보았다.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삼계탕 등 고단백 음식과 한약을 챙겨먹고 잠도 충분히 잤다.


2차 필수과목인 영어는 시중에 나와 있는 writing 입문서로 감을 잡은 뒤 정영한 선생님의 writing start up으로 기초를 닦았다. 그 후에는 뉴욕타임즈의 토마스 프리드만과 폴 크루그만의 칼럼, 기타 다른 기사를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서 표현을 익히고 경제, 정치 관련 이슈도 동시에 챙겼다. 특히 번역과 에세이 첨삭은 안수진 선생님께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국제정치학의 경우 비교적 암기의 부담이 덜한 과목인 만큼 국제정치학의 기본 원리에 충실하려고 노력했고, 신문기사와 신희섭 선생님 논문집을 통해 그 원리들을 실제에 적용하는 연습을 했다. 또한 논문정리 스터디와 서론-본론-결론의 틀을 짜고 일관된 서술을 엮어내는 것은 신문사에서 받은 글쓰기 훈련이 크게 도움이 됐다.


법 자체를 고시에 뛰어들면서 처음 접했기 때문에 국제법의 경우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다.  ‘legal mind’에 익숙해지는 것이 처음엔 어려웠지만 예비순환 강의를 동영상으로 들으면서 강사의 말씀을 토시 하나 안 빠지고 다 받아적을 정도였다. 시간을 많이 걸렸지만 그렇게 한번 하고 나니 두번째 볼 때부터는 훨씬 수월하게 조문과 판례를 소화할 수 있었다.


경제학운 학부 때 전공이라 비교적 다른 과목에 비해서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김진욱 선생님 1순환을 들으면서 새로운 내용과 그간 불충분하게 알고 있었던 것도 보완했다. 그가 처음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해 수학적 배경을 가진 게 경제학 답안 작성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선택과목은 중국어를 택했다. 중국어 역시 처음 접했기 때문에 성조 등 중국어의 ABC부터 배워야했다. 동영상 기초강의를 듣고 어학원에도 다녔다. 본격적인 번역 공부는 조소현 선생님 강의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처음에는 지문의 90% 이상이 모르는 단어일 정도로 어려웠지만 2달간 다른 논문과목을 제쳐두고 중국어에만 집중 투자한 결과 이후에는 그럭저럭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2차 마무리 한달 전략으로 영어와 중국어는 모강 수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기타 논문과목 대비에 힘썼다. 국제정치학의 경우 신희섭의 2순환 자료와 스터디에서 만든 논문정리 자료를 활용했다. 국제법은 조문 및 판례, 기타 일반 법적 개념 등을 요약해 반복해서 보았다. 경제학은 김진욱의 3순환을 모의고사만 풀면서 답안지 작성 연습을 했다.

 
2차 답안작성에서는 우선 질문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쓸 것으로 예상되는 것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그 다음에 아무도 안쓰거나 소수의 수험생만 쓸 것 같은 내용을 비장의 무기로 각 챕터별로 갈무리해나갔다. 경제학은 양적 팽창 관련해 IS-LM, AD-AS 모형의 기본적 접근에 추가해 미국의 양적 팽창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정리해놓는다든지, 외부효과의 수학적 표현을 익혀 놓는다든지, 국제법에서 국가수용과 관련해 투자 관련 보완책(ICSID, MIGA) 등을 숙지해놓는다든지가 그 예이다.


면접 준비는 2차 발표 후 합격자 모두가 모여 면접 스터디를 진행했다. 또한 법률저널이 주관한 모의면접 컨설팅을 통해 면접에 대한 정확한 방향을 잡았다. 외국어토론면접은 영어토론 전문가의 과외를 받았지만 번역 공부했던 것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토론 역시 단기간 대비가 어느 정도 가능했다.


면접에서 생각하는 중요한 포인트에 대해 그는 “우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보수적 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며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지식과 진실된 경험만을 가지고 면접관들에게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특히나 컸던 탓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신체 컨디션이 나빠질 때 정서적인 위기가 함께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찾아서 먹고 잠을 푹 자고 나면 생기가 돌고 다시 활력과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입부하기까지 우선 도와주신 많은 분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고, 평소 못 읽은 책도 읽고 여행도 하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수험생에게 한마디 해 달라는 말에 그는 “개인적으로 외무고시를 시작하기 전까지 수많은 크고 작은 실패를 겪었고, 시험 발표가 나는 그 순간까지도 제 옆에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 도사리고 있는 듯 했다”며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인식하고 인내심을 갖고 매진했을 때 사회는 반드시 그에 대한 보상을 저에게 줬던 것 같다. 정직함과 인내라는 두 가지 미덕과 함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목표를 추구해간다면 분명히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며 수험생들을 응원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감사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 아버지, 시험 때 도시락 싸준 동생. 시험 끝날 때마다 찾아와 술과 좋은 음식을 사준 고향 친구에게 감사하다”며 “또한 재작년 한해 동안 함께 시를 쓰고 읽으며 함께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했던 예비 시인 ‘박한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상연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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