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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외무고시 최연소 “안하면 죽는다는 독한 마음가짐이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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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외무고시 최연소 “안하면 죽는다는 독한 마음가짐이 비결”
  • 법률저널
  • 승인 2013.06.1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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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권 국가들과 관계개선에 이바지하고 싶다”

 

윤홍선 제47회 외무고시 최연소·이화여대 정외과 4년

 

올해를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외무고시(5등급 외무)의 최연소 합격자의 주인공은 러시아능통자 분야에 지원한 윤홍선(22·사진)씨가 외무고시 역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묘령의 나이에 불과한 윤 씨는 명덕외고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재원으로, 올해 외무고시 처음 도전해 단번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법률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외무고시를 운좋게 한 번에 합격하여 어리둥절하다”면서 “3차 면접을 본 후 합격 발표가 나기까지 한 열흘동안 잠도 못 자고 마음 졸이며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합격 소식을 들으니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매우 기쁘다”며 예상치 못한 결과에 두 배의 기쁨을 누렸다. 


그녀가 고시를 단번에 합격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독한 ‘마음가짐’ 이었다. 한창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며 멋도 부리고 싶은 나이지만 과감히 접고, ‘이것을 안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마음을 독하게 먹고 꾸준하게 일정한 시간동안 매일매일 공부한 것이 최연소로 단기간에 붙을 수 있었던 이유다.


윤 씨는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고, 저만의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물론 세상과 단절된 것 같고 견디기 괴롭지만, 만약 이렇게 해서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다면 오히려 빨리 붙고 그 후에 친구들과 다시 연락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외무고시에 뛰어든 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카자흐스탄에 살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버지가 일을 하시면서 어려움을 겪으실 때 마다 카자흐스탄 대사관의 도움을 많이 얻는 것을 보고 커서 해외에서 거주하는 우리나라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녀는 “외국생활을 하면서 아시아를 제외하곤 많은 외국인들이 아직도 우리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고, 관심도 크지 않은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며 “꼭 커서 한국과 한국인, 한국문화, 산업 등을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외교관의 꿈을 가지게 됐다. 


러시아어 능통분야에 지원한 것은 러시아 지역권에 살고 러시아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 관련 전문가가 되고 싶었던 것.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러시아와의 관계가 다른 이웃국가들에 비해서는 크게 발전되지 않았던 점도 마음에 끌렸다.


윤 씨는 “자원이 부족하여 중동에 에너지수입 의존이 심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는 매우 좋은 파트너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특성들을 이끌어내 한-러간 관계를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높이고 싶다”는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외무고시의 첫 관문인 PSAT 공부는 우선 학원 강의에 의존했다. 세 영역 모두 학원의 기본강의부터 파이널 모강까지 꾸준히 들었다. PSAT은 문제를 많이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와 각 선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그리고 전체적인 흐름과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를 푸는 방법에서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썼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시간내에 40문제를 다 풀려고 노력해보았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따라서 40문제 중에서 어려워 보이는 7~9문제를 과감히 버리고 나머지 문제를 다 맞자는 식으로 풀었더니 전보다 많은 점수가 올랐다고 했다. 


PSAT 마무리 한 달 전략도 혼자 마무리 하는 것이 불안하여 세 영역 모두 모강을 들었다. 거의 매일 모의고사를 하나씩 풀면서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문제를 버릴지 연습을 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습니다. 물론 혼자 공부할 때는 기출문제를 한 세트 또는 두 세트씩 풀었다.


마지막 1주일 동안에는 기출문제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공부했다. 여러 번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틀렸던 문제들, 그리고 수업에서 중요하다고 한 문제를 중심으로 계속 반복하여 보면서 제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2차 과목도 다른 수험생들보다 수험기간이 짧았던 탓에 혼자 교과서를 보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학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국제법은 학원의 강의를 계속 따라갔고, 국제정치학은 전공이 정치외교학과였기 때문에 시험에 필요한 학교강의를 택하여 들었다.


그녀에게 공포의 과목은 ‘경제학’이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점수가 20점도 나오지 않았던 실력이었다. 쉽게 설명해주는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경제학에 대한 공포감을 점차 떨쳐낼 수 있었다. 영어는 고시를 시작하기 전 미국 교환학생으로 갔다왔던 것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에서 전반적인 영어말하기와 쓰기를 배웠다면,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보다 구체적으로 글을 깔끔하고 매끄럽게 쓰는 방법은 학원수업으로부터 배웠다.


원래 건강한 편이라서 따로 체력관리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2차 준비기간 동안 아침을 빼먹지 않고 매일 먹고, 하루 세끼를 매일 일정한 시간에 먹으려 했다. 점심을 먹고 졸릴 때에는 커피 등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수를 먹고 버티기 보다는 차라리 몇 십분 낮잠을 잤다. 또한 저녁에는 밥 먹고 10∼20분정도 산책을 했던 것도 체력관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능통자 분야의 면접은 두 명중 한명이 떨어지는 ‘모 아니면 도’였기 때문에 다른 직렬에 비해 심적 부담이 더욱 크다.

우선 한국어 토론과 개인PT, 인성면접은 2차에 합격한 학생들과 모여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같이 면접공부를 했다. 3차 면접은 이전 1차와 2차와 달리 사람의 태도와 인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에 스터디 조원들과 서로 잘못된 태도 또는 말투 등을 고쳐주고 장점도 얘기해주는 피드백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장점 그리고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새롭게 알게 되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또한 이번에 수석을 차지한 이종찬씨와 마찬가지로 법률저널이 주관한 모의면접 컨설팅을 통해 면접의 맥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어 토론은 러시아 원어민 선생님과 일주일에 3~5번정도 만나서 스터디 때 한국어 토론으로 공부했던 내용을 그대로 러시아어로 하는 연습을 했다.


면접에서 생각하는 중요한 포인트에 대해 그녀는 미소와 자신감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을 할 때 자신이 상대방 편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에나 자신의 발언 횟수, 시간이 적을 때에도 위축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되 분위기를 심각하게 만들지 않고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 밝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부에 일가견 있는 그녀에게도 스트레스가 있을까 싶지만 윤 씨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잠시 공부하던 것을 멈추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거나 잠을 잤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책상 앞에 앉아있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거나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차라리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잠깐 식히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다시 마음먹고 공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입부하기 까지 계획을 묻자 그녀는 “그동안 공부하느라 담쌓고 지냈던 친구들과 가족들과 연락해서 인사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여행가보고 싶었던 곳도 가보고 할 생각”이라며 “그 후에는 러시아어능통자로서 한국과 러시아 간 관계사 그리고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공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무고시 폐지에 대해선 “외무고시가 영영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국립외교원이) 보다 더 전문적이고 똑똑한 인재를 뽑기 위한 취지이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국립외교원에 붙은 수험생들이 미래에 현재보다 더 뛰어난 외교관이 되어 한국을 빛내기를 기원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현재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그녀는 “외무고시는 ‘헝거게임’과 매우 비슷하다. 헝거게임에서 선정된 아이들은 1명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며 “그 정도로 고시는 매우 잔인하다. 특히 지역분야, 그리고 전문분야로 지원한 분들은 뽑는 인원이 거의 1명이기 때문에 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그 마지막 1명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내가 과연 될까?’라는 생각을 할 시간에, 불안해할 마음을 가질 시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며 “‘내가 아니면 누가 되나?’라는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하지만 독하게! 한다면 합격의 꿈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며 수험생들의 파이팅을 외쳤다.


묘령의 나이에 불과하지만 외무공무원으로서의 포부는 당찼다. “대한민국의 외교관이 되었다는 것이 매우 기쁘고 큰 영광이다. 한반도의 통일달성과 동북아 평화, 그리고 미래 러시아전문가로서 보다 한국과 러시아, 그리고 CIS지역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이바지하고 싶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윤 씨에게 감사할 사람이 많았다. 그녀는 “먼저 고시촌 음식이 맞지 않아 매번 도시락을 싸주셨던 엄마, 꼭 자기가 시험보는 것처럼 더 마음 졸이고 기도해주었던  아빠, 그리고 항상 누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던 동생. 항상 옆에서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신 가족들과 친구들 정말 감사하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또한 “저를 도와주신 선생님들이 없으셨다면 저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여러가지 지원을 해주신 모교와 교수님들, 그리고 이민수선생님, 이진우 선생님, 성종환 선생님, 모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이상연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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