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형식과 내용, 동전의 양면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형식과 내용, 동전의 양면
  • 법률저널
  • 승인 2013.06.14 1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둘로 쪼개진 세상은 무섭다. 회색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불행하다. 대립과 갈등만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로 쪼개진 세상에는 유유상종이 넘쳐나게 된다. 적은 저쪽에, 우리 편은 이쪽에서만 살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만으로 채워진 세상에는 언제나 정답만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으로 묻고, 같은 생각으로 대답한다. 같은 생각으로 행동하고, 같은 생각으로 몰려다니니 모두 정답인 것이다. 그러니 반대편이 주장하는 생각은 언제나 틀렸고, 반대편의 행동은 언제나 눈에 거슬린다. 그러다보니 반대편이 하는 말은 사사건건 시비의 대상이고, 상대편의 행동은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매번 전쟁이 벌어지게 되고, 그 전쟁의 상흔은 또 다른 대립과 반목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반대편에게는 언제나 오답인 것이 자기편에서는 언제나 정답이 되는 이분법사회는 분명 불행하다. 어찌 객관적 정답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이분법적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은 정치가 해야 한다. 정치는 같은 편을 적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적을 같은 편으로 만드는 마술을 부리기도 한다. 유능한 정치가가 필요한 까닭이다. 어느 날 문득 북한이 몇 년만에 남북당국자회담을 제안하였다. 우리 정부가 이에 동의하여 사전예비회담을 열어 구체적 의제와 일정을 합의하였다. 그런데 당국자회담일자를 하루 앞두고, 당국자회담의 최고책임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라는 “급(級) 또는 격(格)”을 놓고 양쪽이 팽팽하게 기싸움을 하더니,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회담결렬을 선포하여 무산되고 말았다. 이를 놓고 남ㆍ북간의 비방전이 한창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황당해진다. 이명박 정권 이래 몇 년간 단절되어 있던 남ㆍ북간의 대화가 개시되나 하는 희망을 보았다가 오히려 쪽박마저 깨져 버리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남ㆍ북간의 경색이 심화될 것이 우려된다. 이를 복원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덧없이 흘러갈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박 대통령이 과거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고 종종 발언했던 걸 들은 적이 있다.”는 말로 남ㆍ북간의 대화에도 격(格)을 맞출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물론 “이번 일과 관련한 대통령의 (직접적인) 발언은 아니다.”라는 말을 사족으로 달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에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라는 취지의 말을 자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문득 칼 마르크스가 남긴 “형식이 실질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대부분의 점잖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행동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넥타이에 정장을 입혀 놓으면 나름대로 신사다운 행동을 보이는 경향을 보인다. 똑 같은 사람인데도 형식이 내용을,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단적인 예다. 형식이 강하면 어느 정도 내용을 지배한다. 그렇지만 형식이 실질을, 내용을 결코 이길 수는 없다. 내용은 오래 가기 때문이다.


세상 살다 보면 내용이 강한데도 형식에서 지는 싸움을 종종 본다. 대부분의 한국여성들이 좋아하는 “명품 핸드백현상”도 그 중의 하나이다. 샤넬이니 루이비통이니 하는 명품 브랜드는 내용이 어찌 되었든 고가로 팔린다. 한국제품이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구찌의 가격을 넘어설 수 없고, 명품가방 콜롬보의 가격대를 뛰어 넘을 수가 없다. 아직은 그렇다. 언젠가는 넘어설 날이 올 것이리라고 믿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문화의 대표적 현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양반문화”인지도 모른다. 한국 내에서 영남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쪽수, 즉 인구면에서도 숫자상으로 강하다. 영남 사림을 지배해온 양반문화는 현대사회에서 사라진 것 같지만 지금도 엄연히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영남인의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즉 지금도 대한민국의 주류세력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하고, 사림문화로 다져진 내공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형식면에서 강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호남지역은 형식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하다. 중앙권력으로부터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삶의 곤고함에 오랜 기간 절어 있었기에 형식을 찾는 것이 너무 배부른 소리였다. 그러기에 넉넉하지 못한 현실을 이겨내기에는 실질이 중요했고, 내용이 중요했기에 곧바로 내용으로 접근하는 성향에 익숙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항시 실질과 내용을 앞세우다가 형식을 주장하는 영남 사람들에게 판판 깨지는 경우를 자주 보여온 것이다.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지 모르지만, 형식과 실질 즉 내용의 차이, 이는 기질의 차이로 공고화되다 보니 양자가 하나 되기 어려운 속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볼 때가 종종 있다. 유사한 다른 현상들도 사회 곳곳에서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한 단계를 생략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접근하는 속성을 보이다보면, 내용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에서 져버리는 묘한 결과를 자주 맞기도 한다. 박 대통령이 남북당국자회담의 수석대표의 ‘격’(格)을 맞추어야 한다면서 우리 쪽에서 유길재 통일부장관이 나가니, 북한에서 김양건 통일선전부장이 나와야 한다는 요구를 강하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결국 남북당국자회담결렬이라는 원하지 않은 파국을 맞게 되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격을 무시하는 잘못된 관행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대원칙은 명확하다.”고 청와대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이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의 일단을 읽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로서, 어렸을 때부터 자신 앞에서 무례한 형식을 보이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하고 성장하였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자신 앞에서 형식을 갖추어 머리를 숙여야 하고, 그 형식에 따라 내용을 스스로 결정하여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반적 표준이 아니라, 아주 극단적인 예외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또 다른 극단적 예외가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김정은 북한 최고지도자이다. 김일성의 손자로, 김정일의 아들로 그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강한 형식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것도 무려 광복 후 68년이나 되는 장기간 동안의 최고권력자 그룹에 속했던 이가 김정은이다. 지금은 평화롭게 최고권력을 승계받아 북한 국방위원장으로서 권력을 무소불위로 행사하고 있다. 이번 회담결렬사태를 통해, 남과 북의 극단적 형식존중주의자들의 충돌을 보았다. 이렇게 양보되지 않은, 양보할 줄 모르는 생각으로 굳어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 서로의 원칙을 고집하게 되면, 참으로 난망한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황당한 일은 선의로 시작한 일이 악의로 종결되는 경우이다. 이번 남북당국자회담이 그런 경우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양쪽이 모두 흥분해서, 무슨 좋은 일이 금방이라도 일어나리라는 희망으로 가득차 회담을 시작했는데, 형식을 찾다 그 일은 깨져버렸고, 이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비방하고 있으니, 오히려 시작을 하지 못한 것보다 훨씬 나빠져 버린 것이다. 신뢰프로세스가 불신프로세스로 변해버린 것이다. 시작하기 전보다 더 적대관계가 되고 말았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그런데 양쪽은 여전히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믿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코미디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남에게 길들여져 본 경험이 없는 남북지도자들이 서로를 길들이겠다고 기싸움을 벌리고 있음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에 잠긴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에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아들 나이뻘밖에 되지 않은 젊은이라는 의식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 게 형식에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고쳐져야 한다. 권력의 형식은 나이의 장유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최고정치지도자가 박 대통령이면, 북한의 최고정치지도자는 김 국방위원장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마디만 하자.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은 일면만 타당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내용에 충실하다 보면, 상대방을 인정하게 되고, 상대방을 인정하게 되면 형식은 저절로 갖추어지게 된다는 점도 말이다. 처음부터 형식을 고집하게 되면 내용으로의 접근이 아예 차단된다. 그렇지만 내용부터 검토하다 보면, 실질적 성과를 거두는 동시에 서로에 대한 존중심을 유발시켜 결국 형식적으로도 존경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형식과 내용은 동전의 양면인 것이지, 어느 쪽이 먼저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싶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땐, 누군가 한 쪽이 통 크게 양보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되니 문제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통 크게 양보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말이다.


세상이 참으로 시끄럽다. 대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극심하고, 정치권의 정화작업도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국정원의 지난 대선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하여 공무원정치관여라는 불법선거를 자행했는지 여부가 가장 뜨거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위반의 책임을 물어 불구속기소하는 것으로 일단 수사가 마무리되는 것 같다. 앞으로 법원이 어떻게 판단을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모든 것이 정상화되어가는 과정에서의 통증이라 생각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최종적으로는 내용이 형식보다 우선해야 함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