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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임마누엘 칸트와 평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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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임마누엘 칸트와 평화(1)
  • 법률저널
  • 승인 2013.06.1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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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21세기는 테러와 함께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20세기가 전쟁의 포성 없이 냉전이라는 벽을 허물면서 21세기는 세계를 새로운 평화의 세계로 돌릴 것이라고 예견케 하였다. 탈냉전의 들뜸 속에서 1990년대는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주요 동력이 되더라도 냉전의 첨예했던 대립보다는 덜 긴장되고 그보다는 좀 더 안전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게 했고 믿게 만들었다. 그리고 1991년 국제사회는 이라크라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국가에 던져지는 국제사회의 집단적 의욕과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탈냉전의 질서에 대한 자신들의 예측을 강화시키는 주요한 사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를 새롭게 열어갈 무렵 우리는 테러와 연속되는 전쟁과 분쟁 그리고 보복들에 직면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유를 잘 모른 채 죽고 누군가는 그 이유 없는 죽음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죽음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불안정하고 그래서 이런 공포가 일상처럼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이런 고통은 인간의 본성이 바뀌기 전에는 그리고 인간이 살고 있는 질서와 구조가 변동하기 전에는 끝날 수 없는 인간의 굴레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고통이 본질적이거나 구조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난관이 잘못된 사회제도에 기인하거나 혹은 교육 등의 후천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본다. 또한 지도자들의 이념적 선전이나 민족과 종교를 이용한 자신들의 경제적 이권이나 정치적 특혜와 권위가 문제의 중심에 놓여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사람들의 견해가 맞는가? 이 분열과 혼동의 끝이 존재하고 그 끝을 찾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의 굴레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나름의 만족 속에서 시간만을 보내면서 관조해야하는가? 궁극적으로 평화란 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를 위해서 어떠한 조치가 필요할 것인가?
  

위의 질문들은 수많은 이들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고민해왔던 질문이다. 또한 아직 구체적인 정답을 찾지 못하였기에 똑같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재적인 물음이다. 평화란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면서 인간의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에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번 시간에는 평화의 문제와 관련해서 근대 평화사상의 주요한 사상가이자 조언자인 임마누엘 칸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칸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 자신과 인간들간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묶여서 지내는 공동체와 그 공동체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1724년 동프로이센의 항구도시인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칸트는 대학에서 뉴턴의 물리학을 수학했고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계몽주의 철학의 완성자로서 어떠한 권위나 전통에 의해서 영향받지 않는 진리의 탐구가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이를 획득하기 위해서 평생을 철학자로서 살았다. 실제 그는 철학을 직업으로 하여 연구 저술 교수 등으로 생계를 유지한 최초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칸트의 철학은 크게 인간 자신의 도덕적 완성을 생각하는 윤리학과 인간과 인간들간의 연결을 위한 법학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인간 자체의 존재를 완성하고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윤리는 인간이 자율적으로 윤리를 지키려할 때 형성되는 것이다. 즉 인간이 스스로 윤리와 규칙을 지키려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율적으로 하나의 인격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는 칸트철학의 핵심인 도덕 철학을 완성한다. 인간의 존재는 외부의 강제와 구속에 의해서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를 스스로에게 구속시킴으로서써 비로소 윤리를 지키면서도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인간들은 자신만을 고려하면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인간의 관계는 자신의 자유에 대한 각자의 주장으로 인해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만일 모든 이들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이를 관철시키려 하고 다른 이의 주장과 권리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이들간의 관계는 대단히 갈등적인 관계가 될 것이다. 이는 홉스가 말한 만인이 만인에 대해서 투쟁을 해야하는 자연의 상태 즉 인간 사회 이전의 야수의 상태와 같아질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하지만 그에 대한 정당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어떤 주장도 관철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인들의 자유가 보장되고 개인의 자유만이 범람하는 사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칸트는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법에서 찾는다. 법은 인간의 외적 자유에 관한 해답을 준다. 즉 인간은 자신의 내면적 활동에 관한 문제를 윤리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그에게 내면적 자유는 덕성을 통해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반면에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자유가 다른 이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고 일치할 수 있는 것은 법에 의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칸트는 법을 한 개인의 행위가 다른 이의 자유와 일반적 법칙에 따라 함께 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해답으로 간주한다. 법은 계약위반이나 절도와 살인과 같은 공동생활의 조건 자체를 붕괴시키는 행동들을 구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적인 문제에 대한 답변인 도덕과 외적인 문제에 대한 답변인 법은 구분된다. 이는 어떤 이슈와 주제에 대한 대응이 과연 개인 자신의 윤리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국가의 수준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지에 대한 답변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간은 내적으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발전하지만 또한 외적으로 인간들간의 관계를 통해서 변화 발전해간다. 이 중에서 역사란 인간의 내면이 아닌 인간과 인간간의 문제 즉 인간들의 공동체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발전을 위한 전제는 인간간의 공존이다. 즉 인간의 공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인간의 역사는 전진해갈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간의 공존을 위해서는 인간의 외적인 조건을 형성할 수 있는 법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보는 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도덕은 내적인 문제이기에 인간간의 공존이라는 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려줄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발전이라고 하는 역사의 최종 목적은 결국은 법에 근거를 둔 방안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살고 있는 국가공동체를 법치에 근거하고 있는 공화국으로 만드는 것과 이렇게 형성된 국가들간의 관계를 다루도록 국가간의 법체계인 국제법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순차적인 법의 완결을 통해서 인간의 목표인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고 그에 근거한 인간 발전이 인도될 수 있다. 이러한 법의 진보는 인간자체의 본성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칸트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평화와 자유에 대한 본성이 인간들 상호간의 공존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이로 인한 법의 진전도 가능하다고 그는 믿었다.
  

다음 시간에는 인간들간 그리고 국가간의 평화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칸트의 사고체계를 살펴보고 그의 철학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를 살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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