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9 / 수목보상과 감정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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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9 / 수목보상과 감정평가
  • 법률저널
  • 승인 2013.06.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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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감정평가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문가과정’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동산담보평가’, ‘기술가치 평가’에 이어 세 번째로 개설된 ‘수목보상평가 전문가과정’에 지원자가 폭주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교육장이 이를 다 수용할 수 없어 동일한 교육 과정을 연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단다. 이번 과정은 1,2차 전문가과정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 동산담보는 감정평가업계에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분야라 생소한 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기술가치 평가는 몇몇 평가사만 간헐적으로 평가에 임하고 있는 소위 고급평가영역이라 이를 감정평가사 전체에 대중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업무영역의 확장이라는 대의명분도 곁들일 수 있고 말이다. 그런데 수목에 대한 보상평가는 이미 수 십 년째 하고 있어 생소함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업무를 담당해 보지 않은 감정평가사가 없을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인기를 끌었던 건 이 과정의 개설 취지와도 너무나 부합하는 ‘전문성’에 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1주일 간 이어진 교육 과정의 백미는 현장체험학습 차 진행된 ‘광릉수목원’견학 일정이었다. 여름문턱에 접어들어 녹음이 기지개를 펴는 3~4월의 생동감은 덜했다. 가랑비가 내내 이어져 숲이 주는 쾌적함도 맑은 날씨일 때만 못했다. 반면 이를 모두 상쇄하고도 남았던 건 처음 접하는, ‘숲 박사’로 불리는 나무 전문가 국립수목원 이유미박사의 명 강의 덕택이었다. 평생 나무와 풀만 보고 살아올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어도 얼굴에 머금은 평온한 미소가 이를 말해 주고 있었다. 나무이야기를 2시간 가까이 이어가면서 곁들이는 식생과 품종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고 전혀 다른 줄로만 알았던 몇몇 나무가 실은 가족관계(family)였다는 전문지식까지 들을 수 있어 무척 유익했다. 소위 ‘달인’의 느낌이 물씬 베어 나오는 강의라고 할까.

 

친구 대하듯 평생 나무를 대하고 가꾸는 행복한 나무박사와 달리 감정평가사에게는 보상 지구에서 나무 소유자에게 보상금을 책정하는 일이 나무와 관련된 일상적인 업무다. 꽃이 피는 춘 사월이나 색동옷 곱게 있은 시월에 산에 오를 수 있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거기 심겨진 나무의 보상금을 책정하는 일은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앉아 있는 자태만 봐도 쌍둥이를 알아보는 부모처럼 나무가 친구인 그들에게 저 나무나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 건 실례일 것이다. 그러나 감정평가사는 수 천 가지 수목과 꽃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보상지구에는 단풍나무와 느티나무 소나무 같이 만인에게 알려진 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산딸나무, 층층나무, 물푸레나무, 계수나무, 독일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측백나무 등등 일반인들이 구분하는데 애들 먹는 수 백 여 종류의 나무가 집 앞마당이나 뒷동산에 심겨 있다. 상수리나무가 참나무과에 속한다는 얘기를 처음 듣는 필자의 사정만 봐도 보상금을 매기기 전에 저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식별하는 문제부터 거대한 산처럼 다가오는 게 감정평가사의 현실인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박한 수수료 문제도 감정평가사의 수목 전문성을 저해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나무 이전비를 책정할 때 조경공의 임금을 하루 15~20만 원으로 계산하는데, 2~3일 산지를 누비며 수 백 가지 나무를 확인하고 일일이 수목의 가격과 이전비를 조사해 보상금을 책정해 봐야 감정평가수수료로 수령하는 게 기본수수료 15만 원(*) 정도이니 돈 안 되는 일에 굳이 품을 많이 들일 생각은 안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조사와 평가보고서 납품까지 부대경비를 고려한 감정평가사 1인의 일당에 해당하는 원가가 대략 100만 원 안팎이라고 하니 수목보상을 위해 나무에 대한 준전문가가 되려 하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형편없는 수수료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 교육을 통해서 분명 수목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어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한 번의 과정을 통해 수목보상평가의 달인이 되는 허황된 꿈을 꾸지도 않는다. 감정평가사로 지녀야 할 통상의 소양을 조금이라도 기를 수 있다면 거기에 만족한다. 교육 과정 내내 감정평가협회 부설로 수목보상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별도의 기관을 개설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임학, 조경학, 식물학 등을 전공한 감정평가사를 선별해 그들이 전문적으로 수목보상평가를 전담하면 대다수 감정평가사가 부족한 전문성으로 들쭉날쭉 수목 보상금을 책정하며 느끼는 불안함과 찝찝함을 시원스레 날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감정평가수수료 체계는 기본적으로 평가금액에 연동되는 종량제이므로 100가지 수목을 평가해도 전체 평가액이 1000만 원이라면 기본 수수료만 받게 된다.

이용훈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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