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김삼환 시인의 “따뜻한 손”, 참을 수 없는 역사 왜곡자들의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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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김삼환 시인의 “따뜻한 손”, 참을 수 없는 역사 왜곡자들의 궤변
  • 법률저널
  • 승인 2013.06.0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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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김삼환 시인이 오랜만에 출간한 시집 “따뜻한 손”을 보내왔다. 시집에 시인의 깊은 정성이 들어 있다. 가슴에 닿는 짧은 시가 있어 살펴본다. “무슨 묘수가/ 있을 것인가// 삶은 암호로/ 얽혀 있는데// 하늘에서/내려다/보시는//그 분의// 뜻대로// 사는 수밖에” (‘암호’ 전문, 따뜻한 손에 수록, 시와 문화 간).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을 살면서, 그래도 종종 동료 시인들의 시집을 접하고 의미 있는 시를 읽을 수 있음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살면서 거칠어지기만 하는 생각들이 시를 읽는 순간만은 눈 녹듯 사라지며 한순간이나마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니, 이것이 시를 읽는 기쁨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세상은 이분법으로 바라볼 수 없는 복잡한 유기체이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짤막한 명언을 남겼다. 인생은 출생(Birth)과 사망(Death) 사이의 수많은 선택(Choice)에 의해 결정되는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선택(Choice)은 도전(Challenge)으로, 다시 그 도전(Challenge)은 새로운 변화(Change)로 연결되며 한 인간을 결정짓는다는 이야기이다. 모두 시(C)다. 시시한 것 같지만 시는 그래서 위대(?)한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앞에 매순간 찾아오는 선택이라는 명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게 되어있으니 다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 하지만 좋은 쪽이라고 생각했던 그 판단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으니, 어리석은 선택이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경우가 그러하다.


언제나 생각한다, 정신이 죽으면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못된 것에 양심을 팔면 평생 그 양심 판 사실로 혼자 고통스러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자존심 상해 할 것이라는 사실을. 윤동주는 내 귀에 대고 항시 속삭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윤동주 시인의 세밀한 감성이 내 뼈를 파고든다. 윤동주 시인은 그렇게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며 살다가 27살의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일본이 생체실험용 독극물을 주입하였다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윤동주 시인은 평양 숭실중학교 학생시절 처음으로 숭실중학교 학우지인 숭실활천 제15호에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층 두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라는 첫 시 “공상(空想)”을 발표하였다.


한국 최초의 4년제 대학인 숭실대학이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폐교하는 역사적 결단 과정에서 숭실중학이 폐교됨에 따라 나중에 연희전문으로 학교를 옮긴 윤동주 시인은 저처럼 영혼을 두드리는 “서시”를 발표하여 기독신앙인으로서의 순결한 영혼을 지키려고 애간장을 태웠던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 유학시절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판결문은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기독정신으로 설립된 숭실중학에서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성장하였다고 일본 재판소의 판결문이 증명해 주고 있다.


뉴라이트 성향의 일부 교수들이 참가하여 집필한 고교교육역사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 본심사를 통과한 문제가 역사학계의 주요 관심사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아직 명확하게 그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교과서 집필에 참가한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일제 강점기 시절 친일운동을 했던 이들에 대해 공도 함께 기술할 필요성이 있어서 함께 기술하여 그 부분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이 경제, 교육, 문화 등의 분야에서도 어떠한 성취를 이룩했는가를 기술했다면서, 민족주의 세력이 광복 직전의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있었는지, 예를 들어 고려대학의 전신인 보성전문을 운영했던 인촌 김성수가 조선 학생들에게 일본의 대동아전쟁에 협력하라는 글을 쓰는 등 친일에 앞장서고 황국신민이 될 것을 촉구함으로써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는 했지만 그를 무조건 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일제침략 하에서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침략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불가피성을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는 입장으로 교과서를 서술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이화여전의 김활란, 연희전문의 백낙준 등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공도 함께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윤동주가 재학했던 숭실중학으로 연결되는 평양의 숭실대학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일본에 저항하며 자진폐교한 것과 달리 이화여전이나 연희전문은 일제침략에 일부 협력하는 대가로 학교를 지키는 선택을 했고, 이를 통해 교육을 시켰으니 그 공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뉴라이트 성향의 위 역사교과서에 대한 집필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철저한 상황논리에 충실하게 기술”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철저한 상황논리는 몰가치적이다.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가치를 찾고 옳고 그름을 찾기 어렵다. 왜냐고? 당시 상황이 그랬다는데 왜 말이 많냐고, 꿀밤밖에 더 얻어먹겠는가 말이다. 참으로 편리한 논리이다. 일본 총독부의 탄압이 극심했던 시절 조선 학생들을 향해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며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일본 천황 아래 황국신민이 된 것에 감사하며, 일본 종교인 신도에 참배하는 신사참배할 것을 강요하여 양심을 기망토록 하고,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나갈 것을 조선 청년들에게 독려한, 그래서 일본군의 부족한 병력을 강화시켜 오히려 전쟁을 더 악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그들이 있었기에 조선의 교육기관이 유지되고, 이를 통해 조선 청년들에게 교육을 시킬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가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말이 맞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논리는 몰가치적이다. 마치 쪽박 깨놓고 밥 한 술 던져주니 감사해야 한다는 노예근성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개돼지처럼 살겠다고 생각하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윤동주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까 봐. 숭실대학은 일본의 신사참배에 응할 수 없다며 자진폐교하였다. 그리고 1954년에 서울에서 다시 대학문을 열었다. 만일 그때 모든 학교가 일본에 저항하며 폐교의 길을 함께 걸었다면, 그 응집된 힘이 오히려 일본패망을 앞당겼을 것이고, 우리 민족 전부가 사는 길이 앞당겨져 왔을 것이다. 모두 저항하는 길 대신 일부가 무릎 꿇고 복종하는 길을 선택해, 저항하는 자를 죽게 하고, 배신한 자기들만 살아남았다. 모두 뭉쳐 싸웠다면 모두 살 수도 있었을 터인데(물론 모두 죽었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상황논리를 주장하며(이 중에는 윤동주처럼 밤새 괴로워했을 이도 있고, 더러는 오히려 친일에 앞장서 사리사욕을 취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 협력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들만 살아남고서는, 이제 와서는 그때 상황이 그러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은 비겁하다.


다시 사르트르의 선택(Choice)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결이다. 수많은 길 중 하나를 선택해 오른쪽 길을 걷기도 하고 왼쪽 길을 걷기도 한다. 어느 쪽 길인들 무슨 상관이냐? 옳기만 하다면 말이다. 김삼환 시인은 그의 시 “암호”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네 인생 살아가면서 무슨 묘수가 있을 것인가고, 풀 수 없는 암호로 얽혀 있는 우리네 삶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고 말이다. 그러면서 김삼환 시인은 자답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는 그 분의 뜻대로 살면 될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 길이 윤동주 시인이 선택한 길이고, 김삼환 시인이 선택한 길이다. 그 길을 그냥 선택하면 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는 그 분의 뜻대로 살면 된다고. 꼭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상한 길을 선택해 놓고 나중에 자기합리화의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내 놓는 궤변이 바로 “상황논리”인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첫 발표작품인 “공상”에는 소년의 순진함이 배어있다. 마음의 탑을 쌓는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탑을 쌓고 있는 어리석음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삶의 진리를 저 어린 소년마저 이미 알고 있는데, 어찌해 노회한 친일 지식인들은 왜 몰랐을까? 역사교과서에 두고두고 자신들의 친일이 기록되리라는 사실을 왜 자각하지 못했을까?


그러고 나서는, 친일을 하고 나서는 또 다시 궤변을 늘어놓는다. 윤동주 시인이 어린 나이에 진정한 지식을 갈구하며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해 자신만의 바다에서 헤엄치고자 한 열정을 왜 당시의 조선 최대의 지식인들은 배우지 못했을까? 인간은 정신이 죽으면 이미 산 것이 아니다. 사르트르가 갈파한 대로 선택을 잘못한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면 그 선택을 수정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을 왜 인식하지 못했을까? 그 상황논리, 자신이 죽기 싫어서 조선의 청년들에게 황국신민임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전쟁터로 나가 조선의 백성과 같은 처지에 있었을 중국 백성을, 필리핀 백성을, 수많은 아시아 백성을 죽이는 총알받이가 되라고 격려하면서 한편으로나마 윤동주 시인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그 마음을 이해했을까? 같이 동감하며 아파했을까?


그렇게 살아남고서, 그 덕으로 지금까지 그의 자손들이 호의호식하고 살게끔 한 밑천 챙겨줬으면서, 이제 와 그때 상황이 그러했으니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을 향해, “그래 너 잘 참 잘 했어요!”하고 칭찬해 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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