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까운 이웃 같은 친근한 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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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까운 이웃 같은 친근한 사법
  • 법률저널
  • 승인 2013.06.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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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법대 헌법학 교수

 

법률, 법률가, 법전, 법원, 검찰,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자, 법조계. 이 모든 용어에서 감지되는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딱딱함, 불친절, 배타성, 근엄함, 권위의식, 권위주의 등일 것 같다. 동양에서는 치자의 최고의 덕목은 덕치이고, 하지하는 법치로 치부하여 왔다. 따라서 법은 정밀한 균형추로 발전되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18세기 서세동점 과정에서 동양의 전통적인 법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서양의 합리주의에 기초한 법이 계수되었다. 서양의 법 또한 그 뿌리는 귀족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귀족들이 독차지하는 직업 중의 하나가 법률가였다. 그러니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원래는 법학을 공부하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세습귀족은 폐지되었지만 이제 그 세습귀족들이 법률가직을 독차지함에 따라 이를 비꼬아 법복귀족(noblesse de la robe)이라고 하였으니 말이다.

법정(法廷)은 전통적으로 어두운 색깔로 치장되고 법관이 않는 법대는 일반인보다 월등히 높아서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무슨 역사적 유물인지 법률가의 법복도 검정색 일색인데다가 그 위에 깃털 같은 장식에다 가발까지 쓰고 있으니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같은 상황이라고도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법정도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반법원뿐 아니라 최근 대법원에서 공개재판을 하면서 일반국민들에게 보여준 대법정의 모습은 검은색 일색에다 대법관들이 앉은 법대는 높디높기만 했다.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의 새로운 보루로 등장한 헌법재판소 대법정도 대법원의 대법정의 모습과 진배없다. 20년 전쯤 헌법재판소 개설 초기 단계에 필자도 헌법재판소 대법정의 공개변론 과정에서 참고인 진술을 한 적이 있다. 근데 참고인은 서 있어도 재판관보다도 낮은 위치에 있게 되어 있었다.

2004년 필자가 서울대 법대 학장 보직을 받고 얼마돼지 않아서 독일 프라이부르크 법대와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이후 잠시 틈을 이용하여 독일법에 정통한 서울대 법대 호문혁 교수 부부와 함께 칼스루헤(Karlsruhe)에 있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아무런 선약도 없이 점심시간에 들이 닥친 동양의 이방인에 대해서 헌법재판소 사무차장의 친절한 지시로 안내원이 헌법재판소를 견학시켜 주었다. 2층에 자리 잡은 헌법재판소 법정은 처음 보는 이방인으로서는 당혹스럽기까지 하였다. 필자가 종래 가지고 있던 법정에 대한 거무칙칙한 인상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법정의 법대나 색조는 오렌지 빛이 감도는 밝은 톤의 색조가 주류를 이루었다. 재판관의 의자도 우리나라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의 의자와는 달리 그냥 편안한 보통의자였다. 게다가 법대는 강의실의 연단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였다. 그러니 당사자나 참고인 또는 심지어 방청객이 일어서면 그 눈높이가 재판관의 눈높이와 같은 수준이었다. 너무나도 편안하고 너무나도 권위 의식이 완전히 배제된 법정의 모습에 나름 문화적 충격까지 안고 돌아왔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으로서 1949년에 제정된 기본법(헌법) 제1조에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하고 있다. 필자가 과문한 탓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근대 입헌주의 헌법에서는 헌법 총강은 당해 국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련의 규정을 두어 왔다. 이는 1919년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이나 우리 헌법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독일기본법의 예는 비정상적이긴 하지만 스스로 철저한 반성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나름 평가할 만하다. 그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기 위한 상징적 제도가 바로 연방헌법재판소이다. 따라서 연방헌법재판소는 그 건물의 외관에서부터 내부 법정 모습에 이르기까지 종래 재판소나 법원의 권위적 모습을 철저하게 벗어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도 민주화의 상징으로 도입된 헌법재판소가 독일의 예를 벤치마킹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대한민국 건축상을 휩쓴바 있는 재동의 헌법재판소 건물은 화강암으로 둘러친 육중한 외관 못지않게 그 내부의 법정 모습은 전통적이고 고답적인 법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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