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적금을 들자
상태바
시간적금을 들자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13.05.30 2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 대한법학교수회 사무총장

 

지난 해 우리 사회에 한창 동반성장이 화두가 되었던 무렵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토론자로 나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세미나가 끝나고 뒤풀이 하는 자리에서 같이 참석하였던 어떤 분이 이런 인사를 하였다. “법학 하시는 분이 이런 것도 하세요?” 무척 당혹스러웠다. 내가 끼지 말아야 할 자리에 왔던가? 그러고 보니 나를 제외한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법학과 관련 없는 경제, 경영, 복지를 전공한 분들이었다.


모든 사회적 담론이 정책으로 연결되고, 현실에서 실행되기 위해서는 법의 형식을 빌어야 하고, 아니 그 이전에 어떤 정책의 타당성 여부의 중요한 가늠자가 정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 주체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규제를 논하는 자리에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법학과 법률가가 정책의 뒷전에서 밀리고, 사회적 화두에서 소외되어 매우 좁은 법 기술의 영역에 갇혀 버리고 만 듯한 느낌은 필자만이 갖는 생각이 아닐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일까?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이 그 동안 법학을 공부한다고 했던 우리 스스로 법 해석학의 좁은 울타리 안에 안주해 온 탓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강의시간에 가끔 학생들에게 법학을 비타민제나 보양식을 우려낸 엑기스에 비유한다. 영양이 잘 갖춰진 비타민제나 엑기스만을 먹더라도 신체적 활력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는 그리 큰 지장이 없을지 모르나, 하루 세 끼를 이렇게 먹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해석법학의 대상이 되는 법률은 수많은 이해당사자들 논쟁거리가 되었던 공론과 주 관심사를 다양한 전문가들의 시각으로 조율하면서 정파적 갈등을 헤집고 나온 부분을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갖도록 간명하게 다듬어 놓은 문구들의 집합이다.


그 과정의 지난(至難)함과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깔끔한 법체계 속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비타민제나 보약이 그 성분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의 형상과 고유한 맛을 모두 잃고 오직 하나 딱딱한 알갱이나 분말, 아니면 짙은 갈색의 썩 내키지 않는 맛 하나로 통일되듯 말이다. 진수(眞髓)일지는 몰라도 진수성찬(珍羞盛饌)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에게 법 해석에 매몰된 공부는 재미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법학의 맛에 빠져 드는 많지 않은 기형적(?) 취향을 가진 부류가 있긴 하지만 엑기스를 이루는 원재료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가 일상화되고 습관화된 까닭에 그들 역시 사회로부터 법 기술자 정도로 낙인찍히고, 주요한 사회적 담론의 장에서 소외되기 일쑤이다. 하지만 법학이야 말로 모든 재료를 녹여낸 엑기스로서 당대의 사회상에 대한 정수(精髓)이기에 법 규범에 대한 이해는 사회 전반에 대한 폭넓은 통시성(洞視性)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다양한 판례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이상으로 인간 군상들의 허영, 탐욕, 무지를 읽어내고, 사회의 힘과 균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유추하게 된다.


“사회적 담론의 대두 - 정책의 형성 - 입법자의 결단- 최종적인 법안 - 현실에서의 적용과 해석” 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단계로 표현하자면 법학을 공부하는 우리는 최종 단계에 있는 셈이다. 산으로 치면 산꼭대기에서 어슬렁거리는 셈이니 잘만 시야를 확보하면 산 아래를 두루 두루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산꼭대기의 거센 바람과 안개 속이 전부인 줄 알고,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산 아래로 가끔씩 내려와 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며칠 전 국내의 꽤 큰 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가 페이스 북을 통해 근황을 전해 왔다. 2년 전 내가 사법연수원에서 EU법을 강의하면서 만났던 친구였다. 에너지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고 한 걸로 기억하는데, 그 때 내가 해 준 조언이 사법연수원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다고 해도 일정한 시간을 지금부터 하고 싶은 분야의 바닥부터 훑어가는데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를 “시간적금”이라 부른다.


지금 당장 사법시험이나 로스쿨 준비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들에게 “시간적금”은 한가한 사람들의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 경험에 비춰볼 때 “시간적금”으로 인해 할 일을 못하는 경우란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돈과 시간은 결코 남아도는 법이 없다. 그들은 항상 모자란다. 사법시험 준비할 때 시간이 모자랐다면, 사법연수원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고, 법조인으로 나갔을 때는 시간 파산이 걱정될 정도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대학 2학년 시절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부터 월요일이 될 때까지 하루 반나절은 전공과 무관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연수원을 거치면서, 그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고, 대학에 와서도 그 습관은 변함이 없다. 책을 읽어도 전공 서적이 아닌 주제들을 대상으로 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꽤 오래 동안 이렇게 하다 보니 내 직업과 전공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입체화되었고, 때론 엉뚱한 곳에서 통찰력과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일주일에 하루 반나절을 따로 떼어 놓는다면 그 기간은 대략 1년이면 2.5개월, 5년이면 12개월을 훌쩍 넘는다. 10년 정도 계속한다면 대학원 석사 과정 하나 마치는 셈이니, 부전공 하나 생기는 셈이다. 혹자는 그 만큼 전공에 할애할 시간을 축내거나 낭비한 셈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나, 일주일에 그만한 시간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뚝 떼어 놓으면 나머지 시간에 더 집중하여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 시간이 남는다고 그만큼 더 공부하는 것도 아니요, 시간이 모자란다고 공부를 덜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웬만한 사람은 경험으로 아는 사실이다. 누가 알겠는가? 착실하게 부어 놓은 “시간적금”으로 몇 년 후 인생의 방향이 바뀌고, 과외의 소득을 올리게 될는지 말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