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내림차순 되는 1% 더 강한 자들의 독식탐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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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내림차순 되는 1% 더 강한 자들의 독식탐욕주의
  • 법률저널
  • 승인 2013.05.30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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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나는 너보다 1% 강하다. 1% 더 강한 자들의 깨춤판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내가 너보다 1% 강하다며 그 강함을 악용하여 1% 약한 자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너ㆍ나 할 것 없이 강함을 뻐기는 세상이 되었는지, 그 강함을 겸손함으로 약자를 돕는데 쓰지 못하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사리사욕을 취하는 데 사용하는지, 그 무한대의 사리사욕에 대한 욕망이 부정불의로 이어져 이 세상을 통곡의 땅으로 변화시키는지 참으로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억눌림의 분노가 순차적으로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마치 스프링이 눌리면 눌릴수록 마지막 지점에서 폭발하여 강하게 높이 솟구치듯, 최상위 1%가 2%를 향해, 그 2%가 3%를 향해 순차적으로 억누르다 보니, 마지막 단위에서 억눌리는 하층부 집단이 마지막 1%를 지키겠다며 분노를 폭발하고 있다. 이러한 순차적 폭압현상이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상생과 화합의 물줄기를 가로막고 있다. 나는 가까운 시일 내에 용암이 분출되는 활화산의 폭발이 발생할까 두렵다. 이러한 억눌림의 억울함이 광범위하게 상존하는 현실 속에서, 국가와 사회의 병리현상을 치유할 거대담론이 진정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만 거꾸로 가는 세상은 치유의 거대담론보다는 눈앞의 현상치유조차 제대로 대응해지 못해 쩔쩔매고 있으니, 안으로 곪아가는 중병환자는 결국 치유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게 될까 두려운 것이다. 대학에서는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인문학과를 통폐합하고, 철학의 빈곤과 인문학의 빈곤을 조장하고 있다.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가 전부인 세상, 한 끼 굶어도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뉴스가 연결되어 눈에 들어온다. 지난 해 국내 100대 상장 기업실적 분석 결과 삼성전자와 현대, 기아자동차의 순이익 비중이 51%에 달하고 나머지 97% 대기업의 순이익이 49%에 불과하다는 뉴스이다. 이 뉴스를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했다. 결핍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가 서민들 사이에서만 만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사이에서도 발생하기 시작되었음이 직감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97%의 대기업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삼성, 현대, 기아자동차 3대 기업의 순이익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불평등이 현실화되어가고 있음을 보면서, 이미 서민사회에서 심화되어 버린 불평등현상이 대기업들 사이에서조차 나타나고 있음이 마치 토네이도에 빨려 들어가는 지상 모든 것들의 무력함으로 느껴진다. 이미 말라버릴 대로 말라버린 하부구조, 그런데 그 말라가는 하부구조의 폭이 점차 넓어져 중소기업으로 확장되고, 대기업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몽고의 사막화가 가속화되듯, 사하라 사막의 사막화속도가 빨리지듯 경제적 하층민의 말라죽어가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순천제일고 학생들의 일탈행동이다. 교내에서 일탈행동을 하여 교내봉사활동조치에도 개선되지 않자 이를 치유하기 위해 사회복지단체로 봉사활동을 내보냈더니 그곳에 수용된 노인들을 학대하고 그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게시하여 더 큰 일탈을 해 버렸다. 철없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도덕적 절제력이 없어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어머니를 살해하고, 교육을 위해 봉사활동을 내보냈더니 그곳에서 어린 학생들에 의해 무력한 노인들이 학대당하는 이 가학의 시대, 이러한 사건들을 모두 유기적ㆍ통합적으로 살펴보아야지, 단발적 사건으로 분리해서는 치유책을 찾아낼 수 없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영훈국제중학교에 성적조작이라는 편법으로 부정입학했다는 의혹이 일자 결국 그 아들은 국제영훈중학교를 자퇴했다. 국내 최대 갑부의 아들이 “사회적 배려자”라는 명목으로 입학하겠다는 그 발상이 정말 이재용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여론은 결국 영훈국제중학교에 대한 감사의 압력수단이 되었고, 마지 못해 착수한 감사 과정에서 입학사정 관련자들이 뒷돈을 받고, 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총체적 부조리가 자행되었음이 밝혀졌다. 며칠 전 육군사관학교 남학생 선배생도가 후배 여생도를 강간하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명예를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라는교육을 3년 이상 받아 왔을 4학년 생도가 후배를 강간하였다면, 과연 명예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3년 동안의 교육이 무슨 감화를 끼쳤겠는지 참담해질 뿐이다.


1% 더 강한 자들의 횡포가 만연되어 있다. 위 현상들의 공통점은 “내가 너보다 1% 강하니, 내가 이 좋은 떡을 먹어도 너는 끽소리 하지 말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일탈행위라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공정한 룰이 필요하다. 그 공정한 룰의 최정점은 나누는 자와 선택하는 자가 분리되는 사회적 공평원리이다. 여기 10개의 물건이 있다. 이것을 두 사람이 나누어 갖도록 할 때 나누는 사람과 선택하는 사람이 같으면 한 쪽은 아홉 개를 갖게 되고, 나머지 한 쪽은 한 개를 갖게 되는 불공평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갑으로 하여금 나누게 하고, 을로 하여금 그 중 한 쪽을 선택하게 하면, 갑은 결코 10개를 불공평하게 나누지 못한다. 갑이 한 쪽을 많이 나누어 놓으면 을이 그 쪽을 택해 버릴 경우 자신이 적게 가질 것이 두려워 처음부터 공평하게 나누게 되고, 결국 양쪽이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 갖게 된다.


또 다른 하나의 룰은 한 쪽이 나누도록 하고, 다른 한 쪽이 이를 동의하면 둘 다 자기 몫을 가질 수 있지만, 만일 다른 한 쪽이 거부하면 둘 다 자기 몫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규칙이다. 이 경우 한 쪽이 9개와 1개로 나누어 자신이 9를 갖고 상대방이 1을 갖도록 할 경우, 상대방 을은 1이라도 갖기 위해 동의할 것 같지만, 그 불공평한 분배 자체가 싫어 스스로 1을 포기함으로써 다른 쪽이 9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갑은 10개를 6대 4, 아니면 7대 3정도로 나누는 양보심을 갖게 된다. 이 두 가지 룰 중에서 앞의 룰을 적용하면 절대적 평등이 이루어지게 된다. 나누는 자가 6대 4로 나누면 선택하는 자가 6을 선택할 것이 자명하므로, 이 룰이 적용되는 영역에서는 절대적 평등이 실현될 수밖에 없다. 뒤의 룰을 적용하게 되면 상당한 평등이 이루어지게 된다.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이익을 주지 않으면 더 큰 이익을 누리는 자가 하나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해 어느 정도 이익을 나누어 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이런 분배에 관한 공평한 룰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력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학력을 지배하고 문화까지 지배하니, 계속해서 10개 중 9를 갖거나 10개 모두를 독식하는 불공평이 만연되어 있다. 앞서의 3대 기업의 51% 순이익은 결코 정의로운 사회를 상징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런 부정의가 개선되기는커녕 슈퍼갑, 아니 1% 더 강한 자들의 횡포는 점차 도를 넘어서고 있다. 조금만 강하면 약자를 깔아뭉개고, 빼앗고, 지배하려 한다. 이 사회에 넘쳐나든 그 많던 관용과 겸손은 어디로 갔나? 이런 모든 것의 뿌리에는 잘못된 정치가 있고, 그 잘못된 정치를 방조한 것이 부당한 법집행이다. 공정거래법과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사학법 등에 대한 법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국정원법과 경찰청법, 검찰청법에 대한 올바른 집행이 이루어졌다면 이렇게 썩을 대로 썩어버린 불평등을 사전에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1% 더 강한 자들의 독식욕망은 내림차순으로 점차 강화되어 가고 있다. 이 길은 종국적으로 다 죽는 길이다. 이를 차단할 특단의 국민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 더 강한 자들의 각성운동이 필요하다. 어려울 것 같지만 시작해야 한다. 소위 국정원댓글녀사건이 이제 종반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민 모 심리국책임자에 이르기까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국내정치에 관여하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그리하여 소위 댓글녀라는 하부 직원이 실행행위에 착수하고, 이를 고소하자 댓글녀는 스스로 오피스텔의 문을 잠그고 경찰의 수사에 불응하고, 이를 향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대통령후보는 젊고 약한 여성을 감금하는 등 야권이 여성인권을 침해하였다며 적반하장의 정치적 주장을 늘어놓고, 이에 대해 본격적 수사가 이루어지자 경찰고위직이 수사를 방해하고, 그 방해한 기록들이 저장되어 있는 컴퓨터를 조작하여 증거를 인멸하는 등 수사를 왜곡한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채동욱 검찰총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하고, 그 종점을 향해 수사가 진행되어 나가고 있다. 과연 어떠한 결과가 나올 것인지, 진정 한 점 의혹 없이 수사가 이루어질 것인지 반신반의하면서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시제이그룹에 대한 비자금사건수사가 점차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온 천지가 지뢰밭이다. 한 편의 글 속에서 이렇게 수많은 부정부패를 동시다발적으로 거론해야 하는 필자는 마음이 몹시 괴롭다.


앞서 언급된 모든 사건은 다 독립된 사건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건들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1% 더 강한 자들의 독식탐욕”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너보다 1%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네가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을 때 보다 많은 것을 챙겨가지겠다, 그 사이에 네가 죽어 나가자빠지든, 골병이 들든 나는 알 바 없다는 아주 “잔혹한 1% 더 강자주의사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 1% 더 강한 자 역시 자기보다 1% 더 강한 자에게 억눌리면서, 누적적으로 반복되는 1% 더 강한 자들의 절제되지 못한 탐욕의 내림차순이 이 사회를 더 이상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는 신뢰를 상실시키고 있다. 그러기에 정의사회를 우리 모두 꿈꾸고, 분노해야 한다. 분노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뭉쳐서 행동으로, 그것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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