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신뢰보호 침해지만 국가의 과실은 없어”
2002년 변리사시험 사태, 행소 승소…민소 패소
법령 개정에 따른 신뢰이익을 얻어 대법원에서 불합격처분취소소송에서 승소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국가기관의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특허청이 2002년 제39회 변리사시험을 절대평가로 운영하기로 했다가 제1차시험 직전에 상대평가로 법령을 개정한 것은 수험생들의 신뢰이익을 침해한 것이라며 강모(40)씨 등 388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상고심(2011다14428)에서 원고일부승소의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즉 갑작스런 시험제도 변경으로 인한 수험생들이 신뢰이익 침해가 인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정책기관의 재량적 판단에까지 손해배상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셈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 법령의 존속에 대한 당사자의 신뢰가 합리적이고 정당할 뿐 아니라 법령의 개정으로 야기되는 당사자의 손해가 극심해 새로운 법령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이 그러한 신뢰의 파괴를 정당화할 수 없다면 입법자는 경과규정을 두는 등 당사자의 신뢰를 보호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원칙을 선언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당시 특허청은 이같은 적절한 조치없이 새 법령을 그대로 시행하거나 적용하는 것은 신뢰보호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입법자가 신뢰보호 조치가 필요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관련당사자의 신뢰의 정도, 신뢰이익의 보호가치와 새 법령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형량해야 한다”며 “이에 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공무원이 입법 당시의 상황에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 어느 하나의 견해에 따라 경과규정을 두는 등의 조치없이 새 법령을 그대로 시행하거나 적용하였다면 이러한 경우에까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인 공무원의 과실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변리사시험 제도가 절대평가제에서 상대평가제로 전환되었다가 개정 전 시행령에 의해 다시 절대평가제로 전화되는 등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쳐 온 것처럼 시험제도 특성상, 수험생들의 기대와 신뢰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대법원이 이같은 특허청의 조치에 대해 처분의 위법을 인정했고 이에 따라 같은 해 특허청장은 행정소송 원고들에 대해 모두 추가합격처분을 한 사실도 있다”며 파기환송 이유를 판시했다.
1999년 7월, 당시 정부의 규제개혁위원회가 변리사 등 전문자격사의 선발인원을 확대하기 위해 일정 점수 이상의 득점자를 전원 합격시키는 자격검증시험제도로 전환하도록 의결했다.
이에 특허청은 2000년 6월 변리사법 시행령을 개정, 선발예정인원의 범위 안에서 합격자를 결정하던 종전의 ‘상대평가제’에서 일정 점수(매과목 40점, 전과목 평균 60점) 이상을 득점한 응시자를 모두 합격시키는 ‘절대평가제’로 전환하고 준비기간을 두어 2002년 1월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강씨 등은 이를 신뢰하고 시험을 준비하던 중 2002년 1월 특허청이 제1차시험을 절대평가제에서 다시 상대평가제로 법령을 개정해 5월에 1차시험을 시행해 탈락하자 “신뢰이익을 침해했다”며 불합격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2003년 2심, 2006년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특허청은 같은 해 행정소송 원고 수험생 모두를 추가합격처분을 했지만 강씨 등은 특허청의 위법행위로 인한 기회비용의 손실이 크다며 각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승소에 이어 2심도 “담당공무원인 특허청장 등은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고 그 직무의 수행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며 원고일부승소(3백만원)를 선고했지만 특허청은 부당하다며 2011년 상고했다.
이성진 기자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