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5 / ‘갑을관계’와 감정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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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5 / ‘갑을관계’와 감정평가
  • 법률저널
  • 승인 2013.05.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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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聖經)에 약자에 대한 언급이 있는 곳이면 예외 없이 ‘고아’, ‘과부’, ‘나그네’가 등장한다. 양육을 책임져 줄 부모가 없는 아이, 남성 중심 경제권이 견고한 사회에서의 미망인, 이방인에게 배타적인 문화공동체에서의 떠돌이야말로 약자를 대변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안락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주변에 이런 고아나 과부, 나그네가 있으면 반드시 돌아보아야 하고 이를 어기는 것은 그들이 섬기는 ‘신’을 저버리는 행위라고까지 엄포를 놓았으니 약자에 대한 배려는 성경(聖經)속 절대자를 따르는 이들에겐 ‘의무’로 규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치민주화‘에 이어 ‘경제민주화’에까지 사회의 관심이 모아진 건 비단 정치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다른 영역의 민주화로 논의를 확장시킬 여유가 생겼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현 경제 구조 속에 내재된 비민주적 착취 행태가 도를 넘어 정치적 비민주화를 넘는 사회적 위협으로 커질 수 있다는 사회 전반의 우려 때문이다. 권력과 위력을 이용해 약자의 이득을 편취한 ‘갑’의 위치를 점한 이들에 대한 매스컴의 집중포화는 상당 기간 이어졌는데 안타깝게도 최근 대통령의 방미 중 발생한 ‘황망한(?)’사건으로 그 열기가 식어진 건 시기적으로 참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적 민주화를 논의할 때 등장하는 ‘갑(甲)’과 ‘을(乙)’은 공생관계이면서 또한 종속관계에 놓여 있다. ‘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때 ‘갑’은 안정적인 생산 활동과 영업 활동을 영위하게 되고 ‘갑’은 그 대가로 ‘을’의 고정적인 원자재와 노동력 수요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문제는 현재 거래처인 ‘을’ 외에도 ‘을’의 역할을 언제든 대신할 수 있는 수많은 ‘을’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갑’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격상하면서 둘의 관계가 종속관계로만 경직돼 버린 것이다. ‘갑’이 이전에는 머뭇머뭇하던 부당한 요구를 이제는 ‘을’에게 서슴없이 요구함에도 ‘을’이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경제 환경이라면 충분히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감정평가 시장에서도 ‘갑을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시장의 ‘파이’는 계속 줄고 있고 평가보고서 간 품질의 차이가 외관 상 식별되지 않게 되니 업무를 유치하려는 감정평가업자는 철저히 ‘을’의 지위로 전락하게 되었다. 평가업자의 ‘간’을 보며 무리한 평가액을 내 줄 수 있는 평가 기관을 선별하려는 금융기관, 자신의 입맛대로 평가해 줄 ‘주민추천 평가사’를 공모(?)하는 대책위원회, 경제성 없는 사업계획서의 타당성을 보장해 줄 평가보고서를 찾는 개발업자는 ‘갑’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평가 보고서 간 품질의 차이가 확연하건만 최종 감정평가액만 보고 감정평가보고서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하는 수요자의 비전문성도 문제지만 뻔히 무리한 금액인 줄 알면서도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수많은 감정평가사가 존재하니 수임을 위해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자위하는 연약한 감정평가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중은행의 불공정 행태에 대해 감정평가협회 차원의 이의제기가 있었다. 은행이 담보평가를 의뢰해 평가기관이 인력과 시간을 들여 평가보고서를 납품했는데 LTV 제한, 고객신용 같은 은행 내부 문제 혹은 채무예정자의 변심 등으로 대출이 실행되지 않았다고 평가수수료는커녕 평가직원의 출장비조차 지급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대체 어느 용역 발주기관이 납품 받은 보고서가 불필요하게 되었다고 용역수수료 지급을 거부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고객이 ‘갑’이 되어 은행도 ‘을’의 지위로 전락했다고 읍소를 한다면 감정평가기관은 ‘병(丙)’ 으로 강등되었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감정평가기관과 업무 발주자 간 이런 불공정한 ‘갑을관계’까지 확대돼 공정거래가 구축된다면 평가기관은 ‘갑’의 무리한 요구에 전전긍긍하며 체력을 소진하는 대신 평가보고서의 품질을 향상시키려는 전문성 제고 방안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훈 (주)대화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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