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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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8)
  • 법률저널
  • 승인 2013.02.2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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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2013년 2월 25일 새로운 대통령에 의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난 5년의 정부가 끝이 나고 새로운 지도자에 의한 5년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부대에 새로운 술을 담기를 바라는 지지자들과 새로운 부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비판자들 사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어려운 시작을 하고 있다. 북한은 로켓을 쏘아올리고 핵실험을 통해서 외교적 부담과 국내정치적 부담을 출범 이전 정권에 던져놓았다. 북한이 싼 똥을 치우느라고 지난 10년간(2002년 2차 핵위기부터 감안하면) 아니면 지난 20년간(1993년 1차 핵위기부터 감안하면) 많은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 그래도 여전히 북한은 더 큰 것을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에 던지고 있다.
 

앞으로 5년의 국정운영이 잘되어 10년 뒤와 20년 뒤 한국의 미래상이 좀 더 밝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있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있다. 반면에 No라고 할 수 있는 요인들도 몇 가지 있다. 강직한 성품과 국가를 위한 희생정신이나 근검절약하는 개인적 성향은 리더십을 발휘하기 좋은 요인들이다. 전임정부에 대한 실망과 보수결집이 가져온 정치적지지 역시 리더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인들이다.
 

세계경제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과 중국과 일본의 갈등 사이에서 동북아가 불안정해질 수 있는 요인은 부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이러한 외부적 조건은 국내 상황에서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는 경제적 조건과 맞물려있다. 국내정치에서 진보와 보수로 갈린 정치적 상황에서 아주 작은 문제에도 쉽게 작은 불씨가 큰 화재로 갈 수 있게 점화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리더십발휘에 있어서 제약조건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지지세력이 얼마나 뒤를 받쳐줄지 모른다는 점과 박근혜 대통령의 밀봉인사가 보여주는 다른 이를 잘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도 어려운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양날의 칼들도 많이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청와대에서 아버지를 보필했던 국정경험은 대표적인 양날의 칼이다. 부녀대통령이라는 점과 여성대통령이라는 점도 어느 편으로 칼날을 들이댈지 모른다.
 

단순화해서 보면 리더십과 관련된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은 긍정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면 구조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은 부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부분이고, 개인의 경험은 양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과연 환경과 조건이라는 요소를 개인의 리더십으로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에서 희망을 보고 싶다.
 

정권이 바뀌었고 산적한 주제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지난 시간까지 다루었던 주제들 뿐 아니라 새로운 주제들도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새 정부의 초기에 주목을 받지 못하면 정책 고려에서 묻히기 십상이기 때문에 여러 매체들과 이해단체들이 중요한 이슈들을 부각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이다.
 

대통령 취임과 관련해 좀 더 가시적인 주제들이 많이 있겠지만 이번 시간에는 근원적인 문제 한 가지를 다룰 것이다. 다루려고 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가장 논쟁적이면서 수렁처럼 여겨지는 교육문제이다. 한국의 교육은 한국의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독립변수이다. 한국의 교육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한국교육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아주 높은 평가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한국교육이 정말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최근 아이들의 높아진 자살율이나 학교왕따나 학교 폭력과 교권의 상실에 관한 기사들은 표면적으로 교육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이런 표면적인 접근이 아닌 심층적 원인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세계의 석학들,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에서 제임스메디슨 대학의 마이클 세스 교수는 한국의 교육의 문제를 역사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변동과 계층의 문제로 해석을 한다. 그는 한국이 교육에 집중하는 문제는 좋은 학위가 사회적 지위를 보장할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한국이 이것에 집중하는 이유는 한국의 역사적인 변화에서 찾아진다.
  

해방이라는 사건 속에서 1940년대 이후 반상제라는 계급적 관점이 사라지면서 한국의 수직적인 신분상 위계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교육은 새로운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가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은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에서 계층이동을 자기세대에서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사회적 유동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까지 한국사회는 유동적으로 계층변화가 있어서 어제의 “그 인간”에서 오늘의 “그 분”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학벌과 학위였다.
 

과거의 교육이 자신의 능력을 검증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의 토대가 되었다면 현 시점의 교육은 이러한 “공세적인” 계층의 이동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 아니다. 마이클 세스가 지적한 대로 교육은 이제 자신의 신분과 지위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수단이 된 것이다. 한국의 부유층이 막대한 돈을 사교육시장에 투하하는 것도 결국은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가지게 된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마이클 세스가 이야기 한 것에서 중요한 부분은 한국의 사회가 이제 어느 정도 제도화가 되어가서 사회적 유동성이 떨어지고 계층이동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제도화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진입하기도 힘들지만 만약 사회계층에서 하락이라도 하면 다시 진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에 목숨을 거는 것은 아직도 마지막 사회계층상승의 엘리베이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진 이들과 자신의 자리를 수성하는 것에 모든 것을 투자를 한 이들 사이의 불꽃 튀기는 회전(會戰)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더 들여다보면 한국이 교육에 매달리는 구조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은 높은 인구밀도에 적은 부존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조건은 한국이 인적자원에 투자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구조적인 특성을 만들어낸다. 교육을 향한 무한 경쟁은 사회 엘리트라는 인적자원 그룹 안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정치학이 상정하는 ‘가치의 희소성’이 그대로 투영된 구조이다. 물론 한국의 교육이 과연 인적자원을 만들어내는데 유용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얼마 전에 알고 지내는 미국대학출신의 공대 방사에게서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꺼려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와서 교수가 되면 그 순간 공부와 연구는 끝이 난다는 것이다.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 여건이 구비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연구외의 학내외의 정치활동과 친목활동으로 연구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줄서기를 강요받으면서 연구가 아닌 정치활동을 하느니 자신은 미국에서 자기 분야의 권위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벨상을 받아보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돌려서 이야기하면 한국에 들어오면 노벨상은 먼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한국의 미래진단에 관한 중요한 것이 내포되어 있다. 완전히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인적자원들이 한국보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국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인적자원이 한국에 중요한데 국가의 기반이 되는 과학이나 기초분야의 인재들이 한국보다 외국에 있어야 노벨상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 한국교육의 현주소이다. 한국의 미래와 성장 동력은 인재들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교육에 투자하게 되는 이유 뿐 아니라 어떤 경쟁구도를 만들어서 개인들의 교육에 대한 투자가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효과를 만들어낼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다시 마이클 세스 교수 이야기로 가보면 다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그는 핀란드를 들어 한국과 비교한다. 핀란드와 한국은 정부주도적이며 강한 교육시스템을 구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핀란드는 한국과 같은 학원교육 시스템이 없다. 이것은 핀란드에서 학교교육으로 충분하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자료를 볼 때 핀란드의 교육성과는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핀란드는 주 15시간 이하의 수업으로 이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아이들의 스트레스 지수나 자살율도 높게 나타나지 않는다. 핀란드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국과의 차이가 극명해진다. 학교가 선생님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교육정책이 정부에 의해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으며 교사에게 절대적인 결정권을 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아일랜드의 세인트 패트릭 대학의 레지나 머티 교수는 아일랜드 교육제도의 운영방식을 통해서 한국교육에 조언을 한다. 아일랜드 교육과정에서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전환학년제도라는 것이다. 이 제도는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이후에 3학년에 가기 전에 1년 동안 전환학년을 보낼 수 있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학업과 관련된 학습도 하지만 사회봉사 프로그램이나 사회참여활동에 참여한다. 이 시간 동안 학생들은 교육 시스템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사회와 자신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또한 사업구상이나 언론활동 등에도 참여하여 자신의 미래상을 좀 더 구체화하기도 한다. 레지나 머티 교수는 이런 제도가 학생들의 삶에 중요한 차이를 가져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한다.
  

피터 헤르삭 교수는 한국교육의 방향성 차원에서 원론적이지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교육이라는 것은 요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요리를 만들면서 다른 이와 협력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듯이 교육 역시 “함께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배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만 자신의 지식을 누적하고 누적된 지식을 통해 다른 개인과 경쟁하는 것으로 무한 경쟁구조가 된 한국에서 교육은 함께 하기보다는 자신이 좀 더 나아지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또한 부모, 행정가, 정치인등이 교육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정책에서 “내 아이를 위한” 변화를 꾀하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아이가 고려되어야 하는 곳이 바로 교육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는 점에서 교육에서의 공동체 의식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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